30년간 성과 많았지만 아쉬운 현실도 마주
제도 존립 아닌 시민 위해 과감한 변화 필요
“자치단체도 영업해야 ” 직원들에게 강조도
구호·비전 대신 낡은 관행 탈피가 혁신 시작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어느덧 30년. 긴 세월 동안 지방정부는 시민 곁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려 노력해 왔고, 그만큼 많은 성과도 쌓아왔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의 지방자치는 낡은 제도와 관행 속에서 진정한 자립과 혁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현실도 함께 마주하고 있다. 지방자치가 단순히 제도로서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삶’을 바꾸는 힘이 되기 위해서는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나는 젊은 시절 기업을 경영했던 사람이다. 지금도 예산 집행안을 접하면 ‘가성비’부터 따져보는 습관이 남아 있다. 혈세는 시민의 땀으로 모인 돈이고 그 돈이 허투루 쓰여서는 안 된다는 철학 때문이다. 연수구에서는 조달에 의존하던 관행을 벗어나 가급적 경쟁 입찰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으로 물품을 구입하려고 하고 있다. 실제로 데스크탑 교체 같은 사안부터 이 방식을 적용해 예산을 크게 절감했고 이는 조직문화 전반에 ‘효율과 책임’이라는 기조를 심어주는 계기가 되었다.
“자치단체도 영업을 해야 산다.” 내가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말이다. 아무리 훌륭한 기획과 아이디어가 있어도 외부 재원을 끌어오지 못하면 한계가 뚜렷하다. 그래서 연수구 공직자들은 ‘행정의 영업인’으로서 발로 뛰며 설득하고, 제안하고, 경쟁한다. 그 결과가 바로 ‘행복마을 가꿈사업’ 선정이다. 선학동과 옥련동 두 지역이 시비 54억원을 확보했고 이는 우리 직원들이 주민과 머리를 맞대고 시청과 소통하며 일군 값진 성과다.
승기천과 송도국제도시를 자전거·보행자 전용 교량으로 잇는 ‘송도워터프런트~승기천 자전거도로 사업’ 역시 같은 맥락이다. 자전거를 타고 아암대로 횡단보도를 건너야 했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우리는 총연장 27㎞에 달하는 자전거도로를 연결하는 전용 교량 계획을 세웠다. 인천시와의 적극적인 협의 끝에 사업비 150억원 중 120억원을 시비로 확보했고, 이는 원도심과 신도심을 잇는 ‘상생의 교량’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송도국제도시도서관 건립 사업도 당초 시비 30%와 구비 70%의 매칭 비율로 짜여 있었지만 공무원들의 끈질긴 설득 작업 끝에 시비 70%, 구비 30%로 비율 조정을 이끌어 114억원의 재정을 추가로 확보했다.
구비로 사업을 진행하던 것을 전액 인천시의 예산으로 바꿔 진행한 사업도 있다. 송도8공구 복합문화센터 건립 사업은 사업비 141억원을 전액 구비로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끈질긴 협의로 사업비 전액을 인천시로부터 지원받게 됐다. 연수구청소년수련관 건립사업도 당초에는 시비 30%로 진행됐는데 공무원의 적극 행정으로 분담금 비율을 50%까지 끌어올렸다. 이렇게 민선 8기는 적극적인 사업 분담률 조정 노력을 통해 인천시 보조금 총 515억원을 추가로 확보하는 등 영업력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는 현재 8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구의회에 제출했다. 이 중 대부분은 국비와 시비를 확보한 것이다. 중앙부처와 시청을 끊임없이 찾아가 설득하고 설명하며 1천200여 명 공직자가 밤잠을 줄여가며 일군 성과다. 하지만 때로는 이러한 노력조차 정치라는 벽에 가로막히기도 한다. ‘연수한마음공원’ 조성 예산 전액이 인천시의회에서 삭감된 것은 정치적 논리와 현실의 괴리를 상징하는 사례다. 연수구 출신 시의원이 5명이나 있었음에도 이를 막지 못한 현실은 뼈아프다. 나는 이 문제를 수차례 공개 석상에서 언급했고, 앞으로도 말할 것이다. 혁신을 말하는 사람은 쓴소리를 감수해야 한다. 나를 아끼는 이들은 “정치인은 표를 먹고 사는 사람인데 왜 굳이 자초하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오늘의 쓴소리가 내일의 연수구를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때론 고개를 숙여 예산을 끌어오고 때론 목소리를 높여 부당함을 지적해야 하는 것이 자치단체장의 책무라고 믿는다.
지방자치 30년. 연수구가 걸어온 길은 곧 지방자치가 걸어온 길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구호나 거창한 비전이 아니다. 바로 공직사회의 혁신이다. 낡은 관행을 과감히 벗어던지고, 책임 있는 행정, 일 잘하는 조직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진짜 지방자치는 그 혁신의 끝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이재호 인천 연수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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