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살인’ 이전 스토킹·폭행 동반

 

미추홀구 이혼아내 살해 등 잇달아

이별 외 명품 사서, 편 안들어 앙심

반려견 던지고 집앞까지 쫓는 기행

소수 접근금지 명령에도 무용지물

남편이나 애인 등 이른바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여성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국제사회는 이를 여성혐오 범죄, ‘페미사이드’(Femicide·여성살해)로 규정하고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우리나라는 이러한 범죄 유형을 지칭하는 용어조차도 정립하지 못한 상태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지난 21일 50대 남성이 사실혼 관계에 있는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앞서 1일에도 경기 시흥시에서 이혼한 전 아내를 찾아가 죽인 5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히는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벌이는 흉악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 그래픽 참조

인천 한 공원에서 사실혼 관계인 5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하고 달아났다가 경찰특공대와 대치하던 중 검거된 50대 남성 A씨가 2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2025.4.24 /연합뉴스
인천 한 공원에서 사실혼 관계인 5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하고 달아났다가 경찰특공대와 대치하던 중 검거된 50대 남성 A씨가 24일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인천 미추홀구 인천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2025.4.24 /연합뉴스

28일 경인일보가 인천지법에서 최근 3년간(2022.4.28~2025.4.28) 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총 70건(판결문 열람 제한 제외)을 전수 분석한 결과, 21건(30%)은 전·현 남편, 애인 등 친밀한 관계에 있는 남성이 여성을 상대로 저지른 범행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절반(10건)은 가해자가 ‘살인’, ‘살인미수’ 범행 전 폭행·스토킹 등 ‘선행범죄’를 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피해자를 지속적으로 폭행하거나, 피해자와 헤어진 후에도 집 앞까지 쫓아가며 스토킹했다. 피해자가 기르던 강아지를 집어던지는 등 동물을 학대하는 방식으로 괴롭히기도 했다. 3건은 가정폭력·스토킹 범죄로 가해자가 법원으로부터 피해자에 대한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았지만 무용지물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가정·교제 폭력과 스토킹 등은 친밀한 관계의 남성이 여성을 살해하기 전에 저지르는 대표적인 선행범죄”라며 “국가가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했더라면 무고한 여성이 목숨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에게 접근 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만으론 피해자를 보호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범행(살인·살인미수·살인예비) 동기를 분석해 보면 아내나 애인이 이별을 요구하자 앙심을 품은 사건이 9건으로 가장 많았다. 판결문을 보면 가해자들은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누구에게도 안 준다’, ‘(헤어지자는 말에) 왜 갑자기 나를 무시하느냐’고 말하며 범행을 저질렀다. ‘명품 가방을 사서’, ‘새 옷을 구입해서’, ‘지인과 다퉜는데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아서’ 등 여성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범행을 저지른 남성들도 있었다.

김효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원은 “가해 남성들은 여성을 자유로운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존재로 여겼기 때문에 여성이 자신의 의사 반하는 행동을 할 때 강한 분노를 느끼는 것”이라며 “부부·애인 사이에서도 남성이 여성을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권력관계가 발생한 것으로, 이는 엄연한 여성혐오 범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정선아기자 sun@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