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위 달’ 실체의 반영이란 뜻 자주 사용
대통령의 비유는 의미론적으로 가치 없어
선거부정 음모론 망상을 이용 쿠데타 획책
실패후 달그림자라며 범행 부인 수단으로

‘호수 위의 달 그림자’는 탄핵 정국이 남긴 말이다. 이 말은 2월4일 헌법재판소 제5차 변론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남긴 말이다. 당시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증언이 끝나자, 대통령은 정치인 체포나 국회의원 강제 연행을 지시한 적도 없고, 그런 일이 일어난 적도 없다고 부인하면서 국회나 사법기구가 “호수 위에 뜬 달 그림자 같은 것을 쫓는 느낌을 받았다”고 진술했다. 탄핵심판과 내란죄 수사 자체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윤 대통령이 수방사 요원들에게 “문을 부수고라도 본회의장에 진입하여 4명이 1명씩 국회의원을 업어 나와라”는 식으로 명령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또 다른 특전사 지휘관들도 비슷한 취지의 진술을 했음에도 대통령은 이를 정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계엄 선포후 자신의 명령으로 특전사 707특임대를 포함한 특수전사령부 대원 1천139명이 계엄군으로 투입되었으며 수방사 요원 211명, 방첩사 요원 200여 명이 국회와 선관위에 배치되었다는 사실도 없던 일이라는 것이다. 계엄령이 선포되긴 했으나 국회에서 해제되었으니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논리였다.
‘호수 위의 달 그림자’는 허상을 의미할 수 있지만, 문학적으로는 실체의 반영이라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된다. 시선 이태백이 물에 비친 달빛을 붙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태백이 달빛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로 물에 비친 달빛은 허상이 아니라 시인이 간절히 추구했던 미적 형상이었다. 이와 비슷한 고사로 ‘급월고사(汲月故事)’가 있다. 산속에 살던 한 원숭이가 물을 마시러 우물에 왔다가 샘물에 비친 달을 보고 밤새 물을 퍼냈지만 결국 달을 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이런 고사들은 허상을 좇는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동시에, 실패나 난관에도 굴하지 않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학자의 결연한 의지를 상징하기도 한다. 한국 미술사 연구와 미학 연구를 개척한 고유섭 선생도 급월당(汲月堂)이나 급월학인(汲月學人)이라는 아호도 즐겨 사용했다. 물에 비친 달을 쫓는 원숭이처럼, 비록 손에 잡히지 않아도 진리를 향해 한결같이 정진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세종이 지은 악장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에서 달 그림자가 나온다. 달빛이 세상의 모든 강물에 비친다는 뜻으로 강물은 중생을, 달빛은 부처를 상징한다. 물에 비친 달빛은 허상이 아니라 부처와 진리의 현상이다. 이 비유는 ‘진리는 하나이나 모든 세계에 다르게 드러난다’는 일다상섭(一多相攝)으로 요약된다. 나중 주희를 비롯한 북송 성리학자들이 우주의 본체인 태극이 만물을 낳는다는 이일분수(理一分殊)의 원리를 비유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달과 달 그림자는 본질과 현상의 관계를 설명하는 비유로 사용돼 온 것이다.
대통령의 ‘달그림자’ 비유는 논리적으로 허위진술일 뿐더러 의미론적으로도 가치가 없는 말이다. 더 큰 문제는 사실과 가상 사이를 오가는 심리 구조이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추진의 주요 이유 중의 하나로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제기하는 주장을 제시했고, 내란 혐의로 체포된 이후에도 선관위의 가짜 투표지 발견이나 전산 시스템 문제를 맹렬히 비난했다. 이런 태도가 대통령이 선거부정 음모론자나 극우 유튜브에 심취한 결과라고 하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 선관위를 점거한 계엄군의 행동은 부정선거 음모를 규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정선거음모론을 믿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알리바이용이나 음모론자들을 의식한 행동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선거부정 음모론이 허위임을 알고서도 쿠데타를 위해 이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선거음모론과 같은 망상을 이용하여 쿠데타를 획책하고 쿠데타가 실패하자 ‘달 그림자’의 비유를 들어 쿠데타는 실체가 없는 망상이라며 범행을 부인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다. 대통령의 ‘달 그림자’는 이래저래 저급한 비유법 사례로 남을 것이다. 요절한 등려군의 아름다운 노래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네’(月亮代表我的心)를 들으며 귀를 씻어야겠다.
/김창수 인하대 초빙교수·객원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