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는 살만해야 누리는 것 인식
청년세대도 부모들과 똑같이 생각
그런 풍토 속에선 삶 만족 어려워
자유롭게 선택한 활동 ‘여백’ 제안
타인과 비교말고 나다움 찾아보자

필자가 스포츠레저학과에 대해 말하면 처음 뵙는 분들이 이런 질문을 자주 하신다. 여가시간에 무엇을 주로 하세요? 여가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좋은 건가요? 이 질문에서 ‘여가’는 무슨 뜻일까? 여가(餘暇)는 남겨진 틈새 즉, 중요하게 여기는 어떤 것들 사이에 남겨진 틈새이다. 현대인에게 중요한 것은 보통 ‘일’이다. 그래서 국어사전에서 여가는 일이 없어 남는 ‘시간’이다. 그리고 ‘국민여가활성화기본법’은 여가를 자유시간 동안 행하는 강제되지 아니한 ‘활동’이라고 한다.
한편 영어 ‘레저(leisure)’는 국어 ‘여가’보다 더 다양한 뜻을 가진다. 레저는 일하고 남는 시간이거나 일하고 남는 시간에 하는 자유로운 활동을 뜻한다. 여가심리학자 존 누링거(John Neulinger)는 레저란 시간이나 활동이 아니고, 자신이 어떤 활동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활동 자체에서 즐거움과 만족감을 느끼는 심리적 상태라고 보았다.
그런데 경제학자 토마스 베블렌(Thomas Veblen)은 저서 ‘유한계급론(leisure class)’에서 레저를 ‘상류층의 과시적 소비’라고 보고 상류층 여가생활의 비생산성이 사회 진보를 막는다고 비판하였다.
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이후 산업화를 이루면서 근면하게 일하는 ‘근로’ 문화가 형성되었고, 여가는 살만 해야 누릴 수 있는 것이라고 보는 풍토가 퍼져나갔다. 최근 국가 경제력이 1960~70년대보다 훨씬 나아졌어도 베블렌과 같은 여가 인식이 여전히 나타난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가 2016년에 발표한 ‘글로벌 7개국 대학생 가치관 비교’에 따르면 자신이 생각하는 여가문화활동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답한 한국 응답자 비율이 40.5%, 미국 32.2%, 일본 28.8%, 독일 22.8%, 브라질 14.8%, 인도 13%, 중국 12.2%로 나타나, 한국 응답자 비율이 다른 국가에 비해 훨씬 높다. 이것을 보면 한국 청년도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 세대처럼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여가생활이 가능하다고 보는 인식을 여전히 보여준다.
그런데 베블렌과 같은 여가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여가생활을 통해 삶의 만족감이나 행복감을 누리기가 어려워진다. 여가를 경제적 여유가 있을 때 하는 소비활동이라고만 생각한다면 여가생활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SNS로 여행이나 맛집 탐방 같은 취미활동을 사진으로 찍어서 게시하는 문화가 발달하면서 베블렌과 같은 여가 인식이 MZ세대에게 계속 나타나게 된다. 베블렌식의 여가 인식에서 벗어나서 자발적이며 자유롭게 선택한 여가활동을 그 자체로 즐기고 만족하는 여가로 인식하기 위해서 여가라는 용어 대신에 ‘여백(餘白)’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2020 도쿄올림픽대회에서 아트 디렉터였던 야먀자키 세이타로는 그의 저서 ‘여백 사고, 나다움으로 이끄는 삶의 기술’에서 여백이 단순히 무언가를 쓰고 ‘남겨진’ 공간이 아니라고 하였다. 여백은 ‘무언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만드는 공간’ 또는 ‘정말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 일부러 남겨둔 시간이나 힘’이자 ‘모든 것이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 넘치는 공간’을 뜻한다.
마치 한옥 툇마루처럼 여백은 내 안의 소중한 중심(코어)과 외부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으로서 공간적 여유뿐만 아니라 시간적이고 심적인 여유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사람이 그저 ‘힘내자’ ‘더 노력하자’만 생각하고 여백 없이 촘촘한 일정으로 살아가면 쉽게 지친다.
그래서 그는 의도적으로 여백을 만들어서 자신이 좋아하는 것, 자신다운 것, 창의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5월 연휴에 모두가 긴 휴가를 보내지 못할 수 있다. 그래도 의도적으로 여백을 만들어 자신이 좋아하는 것, 즐거운 것을 상기하며 타인의 여가생활과 비교하지 말고 나다움을 찾아보자.
/이현서 아주대 스포츠레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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