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보증금반환채권 담보’ 대출

연체이자 부담에 신용등급 하락

소송비·경매비까지 ‘삼중고’ 겪어

임차인 과실 아님에도 불공평해

회생절차 청년 많아 제도개선 절실

정민경 법무법인 명도 대표변호사
정민경 법무법인 명도 대표변호사

언제부터인가 임대차보증금은 전세든 월세든 ‘억’소리가 난다. 사회초년생은 물론 직장인들도 수‘억’원에 달하는 보증금을 준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상황을 잘 아는 은행은 보증금 대출 상품을 마련해놓고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가지는 보증금반환채권을 담보로 보증금 중 일정 금액을 대출해준다.

은행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대출할 때 여러 가지 조건을 따지는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대항력’이다. 임대차계약이 종료되었음에도 임대인이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으면 은행은 임차인의 우선변제권을 취득하여 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행은 보증금 대출계약시 임차인으로부터 보증금반환채권을 양수한다. 즉, 채권양도양수를 하는 것이다. 채권양도는 양도인과 양수인이 합의하면 되는데, 은행은 임차인으로부터 채권양도통지 권한을 위임받아 임대인에게 보증금반환채권의 양도를 통지한다. 보통 대출만기는 임대차계약 종료일이고 임대인이 임대차계약이 종료되었음에도 보증금을 반환하지 않으면 임차인은 이사를 하지 못하는 것과 별도로 대출금에 대한 연체이자까지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이상한 점이 있다. 임차인은 보증금반환채권을 은행에 양도했다. 즉, 임차인은 임대인이 은행에 보증금을 지급하지 않아 연체이자를 부담하는 구조라는 것이다. 은행은 이미 보증금반환채권을 양수했으므로 임대인에게 보증금반환을 청구하면 된다.

과거에는 은행은 보증금반환채권을 양수하더라도 우선변제권을 취득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임차권과 분리하여 보증금반환채권만 양도된 경우 채권양수인은 주택임대차보호법상의 우선변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임차인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대법원 2010년5월27일 선고 2010다10276 판결)

이 문제는 해결됐다. 2013년 8월13일에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일정 금융기관 등이 우선변제권을 취득한 임차인의 보증금반환채권을 양수한 경우 그 금액 범위에서 우선변제권을 승계한다.(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2 제7항) 여기서 말하는 일정 금융기관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대부분의 은행이 포함된다. 해당 규정을 보면 새마을금고가 빠져있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이 포함되어 있는데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이 없다. 다만, 판례가 새마을금고를 해당 규정이 적용되는 금융기관으로 해석하고 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은 특별법인데 이런 입법불비가 있어서는 안 된다.

어쨌든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이후에 보증금반환채권을 양수한 은행은 임차인의 우선변제권을 승계하므로 은행은 임대인에게 보증금의 지급을 청구하여 해당 부동산에 대한 경매절차를 진행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럼에도 여전히 은행은 임대인에게 보증금반환을 청구하는 대신 임차인으로부터 연체이자를 지급받는 선택을 한다. 임차인은 신용등급이 하락될까 노심초사하며 8% 내지 최고 12%에 달하는 연체이자까지 부담하면서 부랴부랴 임대인에 대해 보증금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그런데 이 소송도 참 이상하다. 임차인은 이미 보증금반환채권을 은행에 양도했는데 은행에 보증금을 지급하라고 임차인이 은행을 대신해서 소송을 해주는 것이다. 임차인은 수‘억’원에 달하는 대출금 연체이자 부담에 신용등급하락은 물론이고 소송과 경매 비용까지 부담하는 삼중고를 겪게 된다. 정말 ‘억’소리가 난다.

은행은 임대차기간 만료시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의3 제9항이 정하는 내용에 따라 임차인을 대위하여 임차권등기를 마치고 보증금반환채권을 양수한 양수인의 지위에서 직접 보증금반환을 청구하면 된다. 보증금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것이 임차인 과실이 아님에도 임차인이 수‘억’원에 달하는 대출금 연체이자를 부담하면서 은행을 위해 소송을 대신해주는 구조는 공평하지 않다. 전세사기가 아니어도 보증금을 반환받지 못하여 회생절차를 밟는 청년들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했을 때, 보증금 대출로 인한 임차인의 부담이 증가하지 않는 제도 운영이 절실하다.

/정민경 법무법인 명도 대표변호사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