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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메산 자락에 선 한남정맥 대원들이 잘려나간 한남정맥 구간을 바라보고 있다.
모든 산은 산등성이(마루금)로 이어져 있었다.
산과 산 사이, 움푹 팬 골짜기는 물을 품었고, 물줄기는 비탈을 따라 강과 바다로 흘러나갈 뿐, 결코 산을 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산은 물을 건너지 못했다. 옛 사람들은 이를 두고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라고 했다. 이건 상식이었다. 한남정맥 시민탐사단은 김포 가현산에서 인천 계양산까지 이어진 2번째 산행에서 선인들의 상식과 어긋난 현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잘려나간 한남정맥
지난달 26일 탐사단은 김포시 양촌면 스무네미고개 가현산 등산로 입구에서 2번째 산행을 시작했다.
"산줄기가 도시화로 인해 어떻게 훼손되고, 끊겼는지 잘 알 수 있는 구간이에요. 지금 나줘 준 지도에 펜으로 끊긴 구간을 표시해 가면서 걸어 보면 잘 알 수 있을 거예요."

인천 녹색연합 신정은(29·여) 간사가 탐사단원들에게 2만5천분의 1 지도를 나눠주며 한 말처럼 한남정맥 마루금은 수없이 잘려 있었다.진달래꽃 군락이 있는 가현산 정상과 묘각사 불이문을 지나 마주친 인천 서구 금곡동 서낭당 고개 마을은 공장 조성 공사가 한창이었다.

마을 한가운데 뚫린 시멘트 도로가 마루금 선상에 놓여 있었다. 이어 만난 방아재고개(검단고등학교 앞), 문고개(마전중학교 앞)도 아스팔트로 포장된 4차선 도로가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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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현산 서낭당 마을에 작년부터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사진은 서낭당 고갯길에 들어선 공장.
검단신도시 조성 예정지역인 이 일대에 아파트와 학교 등이 들어서면서 마루금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라졌다.사라진 마루금의 흔적을 따라 산행을 이어간 탐사대는 이날 오후 4시 계양산을 눈 앞에 두고 40m 폭의 굴포천 방수로 공사 현장에 도착했다. 그 옆에는 왕복 8차선의 공항고속도로와 2개 선로의 공항철도가 놓여있었다.

본래 이곳은 가현산~계양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과 논밭이 있던 자리다.
훗날 후손들은 '경기도 안성 칠장산에서 이어진 한남정맥이 인천 계양산에서 끝난 것으로 알 수도 있다'며 탐사단원들은 우려했다.

#개발과 환경
인천 계양구 다남동에 있는 주말농장에서 하루를 묵은 탐사단은 이튿날 오전 9시 계양산에 올랐다.

계양산 다남동과 목상동 일대는 현재 롯데건설이 18홀 규모의 골프장 건설(테마파크)을 추진하는 곳이다. 골프장 조성 예정부지 곳곳에는 골프장 건설 찬성과 반대를 주장하는 홍보판과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이 지역은 지난 30여년간 개발제한구역에 묶여 생태계가 그나마 잘 보존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

골프장 건설로 인해 이곳 주민들도 찬반 의견으로 양분됐다. 다남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한 주민은 "사람답게 살 만하면 개발 안 해도 상관없지 않겠냐"면서 "찬성측이든 반대측이든 기본적으로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동네 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오전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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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양산 소나무 숲 부근 골프장 예정부지.
목상동 소나무숲을 지나 산행을 하던 탐사단 눈 앞에 갑자기 시원하게 탁 트인 너른 땅이 펼쳐졌다. 지난 해 겨울부터 봄까지 롯데측은 그룹 회장 소유의 목상동 산 37 일대 5만여평 규모의 땅에 있던 단풍과 잡목을 모두 베어냈다. 계양구청은 뒤늦게 이를 개발제한구역관리법 위반혐의로 경찰에 고발했지만, 한 때 울창했던 숲은 그 모습을 되찾지 못했다. 이후 롯데측은 이곳에 듬성듬성 단풍과 벚나무 등을 심었지만 이마저도 3분의1은 말라 죽었다.

인천 녹색연합 장정구(34) 국장은 "당시 롯데가 골프장 조성에 앞서 잔디 조성을 위해 사전작업으로 나무를 베어냈다"면서 "롯데는 사전 허가도 없이 개발제한구역에 대한 훼손을 노골적으로 감행했다"고 꼬집었다.

계양산은 인천시는 물론이고 전국 각지에서 하루 평균 등산객 1만여명이 찾는 '도심 속 녹지'다. 인천시가 최근 정부에 승인을 요청한 개발제한구역 관리계획안에서 계양산 골프장은 제외됐다.

#'불편한 이웃'과 함께 한 산행
그는 산행 내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바쁘게 움직였다.
때론 무언가를 찾아 '옆길'로 새기도 했다.
그의 손에는 수첩과 손바닥만한 디지털 카메라가 들려 있었다.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의 주인공을 닮은 외모를 지닌 이장연(30)씨는 자신을 '불편한 이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리장'이란 인터넷 아이디로 모두 16개 사이트에서 '그린 블로그(green blog)'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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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현산 서낭당 고갯길 곳곳에는 냉장고, 침대, 스티로폼 등 각종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수더분한 외모와 달리 그의 시선은 날카로웠다.
이씨는 마루금상에 놓인 무덤과 송전탑, 흉물로 변한 산불감시탑, 야생동식물보호법에 위반되는 밀렵용 뱀그물 설치 등을 '적발'해냈다.

지난 해 말 인터넷 포털 '미디어 다음'은 계양산 골프장 반대 시위를 널리 알린 공으로 이씨에게 '다음 기자상'을 주기도 했다. 이씨는 "어떤 단체에 속하지 않은 채 보고 들은 것들을 하나씩 풀어내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면서 "개발 논리에 맞서 녹색 가치를 되살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블로그(http://blog.jinbo.net/save_nature)에 찾아가면 '리장의 한남정맥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 탐사일정
5월26일:스무네미고개 ~ 가현산 ~ 검단신도시 ~ 굴포천 방수로 ~ 다남동
27일:다남동 ~ 계양산롯데골프장 예정부지 ~ 인천공항철도 옆길 ~ 꽃메산 ~ 피고개 ~ 계양산 ~ 계양산 삼림욕장

 

■한남정맥 시민탐사단 참가자
류호경(30)씨, 심유정(39·여)씨와 아들 병관(12)이, 이장연(31)씨, 인천대학교 물리학과 장영록(44) 교수, 인천녹색연합 생태도시부 장정구(34) 국장, 신정은(29·여) 간사, 경인일보 사회부 김명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