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당나라 덕종 12년에 진의 회복을 꿈꾸던 주도(周鍍)가 군사 1만명을 이끌고 난을 일으켰다. 하지만 실패해 신라 땅에 들어와 숨어지내게 되는데 지금의 경북 청송 일대가 그 곳이다. 이들이 식량을 약탈하고 도적질을 일삼자 신라의 왕은 마일성 장군과 그 형제들에게 이를 토벌토록 명하였고 주왕산 일대에 숨어지내던 주도는 마씨 형제가 쏜 화살에 목숨을 거두고 만다. 주왕산 일대의 동굴과 협곡은 국가적 난이 일어나면 인근의 주민들이 대피하였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을 만큼 접근이 어렵고 깊은 골짜기로 유명한 곳이다. 자칭 후주천왕(後周天王)으로 불렀던 주도의 아들과 딸의 이름에서 유래된 대전사(大典寺)와 백련암(白蓮庵)이 주왕산이 간직한 설화의 일부분으로 남아 있다. 신라시대에는 석병산으로 불렸으며 말기에 이르러 주왕산으로 개명, 공식 지명이 된 것은 1937년 청송군지에 실리면서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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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월대 |
동탄에서 4시간만에 도착한 주왕산 국립공원 주차장에는 이미 많은 차들이 들어차 있다. 전국에서 몰려온 등산객들로 대전사 방향으로 오르는 길이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대추 한 번 보고 가이소" "시원한 동동주 한 잔 하고 가이소" "사과가 꿀 맛이라예, 사갖고 가이소." 길옆 상인의 호객행위와 등산객들로 북적이는 초입,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파 발걸음을 재촉한다.
매표소에서 문화재 관람료를 지불하고 난후 선두를 맡은 김희태(50) 부회장을 따라 가는데 "대전사 뒤편 기암(旗岩)이 멋있어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네요"라며 천명기(52) 운영위원이 가던 길을 멈춘다. 그래도 어쩌랴, 대전사를 뒤로 하고 주방계곡 오르는 길에 병풍처럼 늘어선 절벽, 그 오묘한 형상들을 바라보며 전진하니 주왕굴로 향하는 갈림길을 지나쳐 간다. 주왕굴은 주왕암의 안쪽 협곡에 위치해 있으며 주왕이 마장군에게 쫓겨 이곳에 숨어살다가 맞은 편 촛대봉에서 쏜 화살에 맞아 최후를 맞이한 곳이다. 주왕과 함께한 병사들이 흘린 피로 주방천을 붉게 물들인 까닭에 붉은 수달래(水丹化)가 되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주왕굴이 계곡 길에서 벗어나 있는 까닭에 일행들은 주왕의 자식들이 달구경을 하며 향수를 달랬다는 망월대에 멈춰서서 잠시 여유를 부린다. 50여m 정도 더 오르니 하늘로 솟아있는 급수대가 계곡쪽으로 기울어져 넘어질듯 아찔한 풍경을 연출한다. "급수대는 신라 37대 선덕왕이 후예가 없어서 무열왕 6대손인 상재 김주원을 38대 왕으로 중대 및 각부 대신들이 추대했었죠. 그런데 즉위 직전에 김경신이 왕위 찬탈 내란을 일으켜 김주원이 왕위를 양보하고 석병산으로 은신해 대궐을 건립한 곳으로 아래 계곡에서 물을 길어 올렸다고 전해지는 곳입니다"라는 김희태 부회장 설명에 일행들은 한 번 더 올려다 본다.
협곡으로 이어지는 길은 탐방객들의 편의를 위해 잘 정비되어있는 편이고 오르막도 적당하여 남녀노소가 어렵지않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다. 청학과 백학이 살았다는 학소대, 시루떡을 얹어놓은 형상의 시루봉, 그곳을 지나는데 학소대에 까마귀떼가 자리를 잡고 있어 필자 생각에 후세에는 오봉(烏峰)이라 하지 않을는지 궁금해진다.
#1, 2, 3 폭포라는 무명폭과 내원동 오지마을
별다른 이름없이 숫자로만 불리는 1폭포 주변으로 병풍처럼 바위들이 둘러싸고 그 위에는 선녀탕과 구룡소가 있어 또다시 걸음을 멈춰야 했다. 한여름이면 멋진 물줄기가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만한 곳이다. 등산로에서 일부러 200여m를 찾아 들어가야 하는 2폭포는 2단에 걸쳐 떨어지는 물줄기가 볼만하여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는 곳이다. 이후 3폭포로 가는 길과 주왕산으로 오르는 갈림길에 도착해서 고민하는 필자에게 "3폭포에 먼저 갔다 왔는데 날이 가물어서 이름값도 못하고 있네요. 여름철이면 시원한 물줄기가 장관인데…"라며 윤석복(49) 등반대장이 말하자 일행들은 망설임없이 후리매기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3폭포 위는 얼마전까지 9가구가 전기 없이 살았던 내원동 마을이다. 국립공원내 수질 보호를 목적으로 2006년 6가구, 2007년에는 3가구를 이주시켜 사람이 살지않는 곳이다. 방송에도 소개되었던 동네로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증이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한국 3대 암산이 무색한 부드러운 능선
사창골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산행 기분이 들기 시작한다. 골짜기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르다보니 예전 모습처럼 흐르던 물줄기는 자취를 감춘듯 겨우 졸졸거리는 시냇물이다. 하늘을 덮은 나무들로 햇볕이 닿지않는 길을 30여분 진행해 도착한 후리매기 삼거리에서 가메봉 방향은 입산통제 구역이다. 주왕산 방향의 오르막을 쳐다보니 꽤나 힘이 들게 생겼다. 하지만 생각보다 여유로운 길이고 그다지 어렵지않게 능선에 올라설 수 있어서 보았던 것과는 다른 느낌을 주는 길이다.
후리매기 삼거리에서 40여분 정도를 오르고 난후 묘지 부근 공터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했다. 여러팀이 앉을 수 있는 넓은 곳이다.
묘지를 기점으로 능선길은 편안하게 이어진다. 길을 걷다가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과 곳곳에서 마주치게 되는데 생태계를 위해 놔두고 있다는 설명을 붙인 안내판이 서있다. 다른 산에서는 보지 못한 표지여서 실소를 자아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단에 항의를 했을까 짐작이 간다. 밑에서 보던 것과 달리 부드러운 흙길의 능선을 따라 오른 주왕산의 고스락은 넓은 공터로 주변의 조망은 기대만큼 좋지 않았다. "차라리 내원동 구경이나 할걸…." 쓸데없는 후회를 해본다. 그래도 산꼭대기라는 위안을 하며 정상석을 끌어안고 기념촬영을 마친 일행들, 대전사 방향쪽 하산 길로 내려섰다. 경사도 그다지 심하지 않고 돌투성이 길도 아니어서 부담이 없다. 30여분 정도 진행하면 관리공단에서 설치해 놓은 전망대가 어서 오라 손짓한다. 주왕산의 진면목을 두루 조망할 기회를 주는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여유를 갖고 쉬어간다. 맞은편 금은광이에서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바라보던 심현섭(43) 총무가 "세계적으로 희귀한 망개나무와 둥근잎 꿩의 비름, 노랑무늬 붓꽃 등의 식물자원이 풍부한 산인데 오늘은 산행에 몰두하다보니 귀중한 자원들을 관찰할 여유가 없었네요"라며 아쉬워하며 다시 하산길을 서둘러 대전사 경내로 들어섰다.

주왕산 정상에서 대전사까지 50분 정도 걸리지만 곳곳의 비경을 감상하느라 시간이 더 길어지는 구간이다. 대전사 경내로 들어가 추녀 뒤로 바라보는 기암이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많은 이들이 멈추어 감탄사를 쏟아낸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김연수(63) 회장이 채근담(菜根譚)의 한구절이라며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이라.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서리처럼 엄하게 하라"라고 말하니 회원들의 박수가 쏟아진다. "남에 대한 배려가 돋보이는 산악회로 영원한 우정을 만들어 가도록 모두 노력합시다"라는 천명기 운영위원의 덧붙이는 말에 회원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고…. 어느덧 동탄 신도시 불빛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한다.
■등산로
매표소→망월대→1폭포→후리매기→주왕산→대전사(4시간30분)
매표소→주왕산→후리매기→1폭포→망월대→대전사(4시간30분)
매표소→백련암→월미기→금은광이→대피소→망월대→대전사(4시간)
■교통
자가용: 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서안동 나들목→34번 국도→임하호→청송읍→주왕산
대중교통: 청송~주왕산 1일 65회 버스 운행 (20분 소요)

동탄산악회…번개산행으로 친목 가족적 분위기
창립 1주년을 맞은 새내기 산악회로 계획도시인 동탄지역의 이주자택지 상인연합회 회원들을 주축으로 결성되었으나 현재는 아파트 입주자들도 참여하고 있고 회원들이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200여명의 회원들이 가족과 같은 분위기로 송년회와 신년초 시산제를 지내며 향후 체육대회와 소년소녀가장 돕기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다. 매월 첫째주에 정기산행을 하며 셋째주에는 번개산행으로 회원의 친목을 도모한다. 산악회 임원들의 단합과 회원들의 화합이 어우러지는 산악회로 보다 많은 활동을 기대해본다. 회장:김연수(011-9889-09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