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김천 수도산(修道山·1천317m)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김천 수도산(修道山·1천317m) 지면기사

    ■ 산행지 : 경북 김천 수도산(修道山·1천317m)■ 산행일시 : 2012년 12월15일(토)■등산로심방마을 ~흰덤이산~양각산~시코봉~수도산~청암사~주차장 (6시간30분)청암사~수도암~수도산~구곡령~수도리~청암사 (6시간 30분)수도암~수도산~수도암 (1시간30분)■교통경부고속도로~김천TG~대덕면 또는 증산면 방향~평촌리~청암사#화려한 불꽃 같은 가야산에 가려진 진산(眞山)북쪽으론 덕유산이 남동쪽엔 가야산이 각각의 자태를 뽐내며 일찌감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때 그 가운데서 묵묵히 서 있는 산이 하나 있다. 매년 해인사에서 수학중인 학승들이 10시간이 넘는 포행(布行)으로 도착하는 곳이기도 한 수도산은 천년고찰 수도암과 청암사가 자리하고 있어서 산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원래의 이름은 불령산(佛靈山), 선령산(仙靈山)으로 불렸을 만큼 신령한 기운이 감도는 곳으로 신라말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정치, 문화 속에 자리한 '풍수지리도참설'(風水地理圖讖說)을 주장한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신라 헌안왕 3년(859)에 수도산자락에 청암사터를 정한 뒤 수도산을 오르던 중 지금의 수도암 터를 발견하고 기쁨에 겨워 춤을 췄다고 한다.'풍수…' 주장한 신라 도선국사수도할 수 있는 최적지 꼽아매년 학승들 포행으로 찾아산행으로만 다가가긴 아쉬워장쾌한 길위 상념에 젖어보길33살의 도선국사의 눈에 비친 수도산은 자신이 기거하며 수도할 수 있는 곳으로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해발 1천244m에 위치한 설악산 봉정암과 880m에 위치한 지리산 칠불암과 더불어 이름난 수행처가 되었으니 수도암을 창건한 뒤 "무수한 수행자가 여기서 나올 것"이라고 했던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산행으로만 접근하기엔 놓치고 가는 것이 많으므로 여유를 갖고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청암사가 산행기점김천에서 대덕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려 한참이나 걸어 들어왔던 기억속의 수도산, 인적조차 없던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 횡성 청태산(1천194m)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 횡성 청태산(1천194m) 지면기사

    ■ 산행지 : 강원 횡성 청태산(1천194m)■ 산행일시 : 2012년 11월 10~11일(1박2일)■ 등산로1코스~헬기장~정상~3코스~숲길~주차장 (4시간)2코스~헬기장~정상~3코스~숲길~주차장 (3시간 30분)■ 교통영동고속도로~둔내IC~둔내(장평)방면으로 약 1㎞~현대성우리조트 방면으로 7.7㎞ 이동~청태산 자연휴양림 입구 (둔내 IC에서 휴양림까지 10㎞, 약 15분소요)청태산 자연휴양림에는 낙엽송숲길 A·B, 활엽수숲길, 자작나무숲길, 참나무숲길 등 5개 숲길 등 숲 탐방로 5개 코스 22㎞와 데크로드 1㎞ 등 23㎞의 치유숲길, 생태연못과 야생화원, 숙박시설인 숲속의 집(11동 11실)과 산림문화휴양관(2동 29실), 운동시설인 숲속수련장 3동이 숲속에서 치유의 길을 열어놓고 있으며 30여개의 크고 작은 야영데크와 취사장, 화장실, 샤워실을 겸비한 캠핑장도 있다.솔향 취해 침엽수림 걷다보면푸른이끼 매력적인 계곡 도착태조 이성계 '청태산' 휘호 내린절경에 감탄 저절로 나오기도야영데크·샤워실 갖춘 캠핑장가족단위 여행객 머물기 좋아산림문화휴양관도 숙박 가능#수도권에서 가까운 가족 캠프장으로 유명한 청태산무작정 짐을 꾸려 떠난 것은 순전히 날씨 탓이었다. 흐렸다 개기를 반복하다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비치자 아무런 생각없이 차를 몰고 달려온 곳. 거기에 청태산이 있었다. 평소 주말이면 예약 현황판을 가득 메웠을 캠핑족 중 날씨 영향에 해약한 자리 하나를 냉큼 꿰어차곤 십분이면 족한 텐트치기를 마치고 한숨을 돌렸다. 스산한 바람이 나무 사이를 스치고 가슴속으로 들어온다.배라도 불릴 요량으로 텐트 밖으로 나선다. 어느새 산속은 짙은 어둠속으로 한없이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었다.하나 둘 존재를 밝히는 등불이 숲속 나무 사이사이로 비치고 잔잔한 말소리가 오가는 가운데 가느다란 빗방울이 텐트를 두들겨 대는 소리를 지나 취사장으로 향한다. 가족을 동반한 캠퍼들이 각종 장비와 요란한 취사도구를 들고 집합한 곳이다. 지난 여름에 태워먹고 바위에 찍혀 울퉁불퉁한데다 손잡이마저 부러진 내 코펠은 어디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봉화 청량산(870m)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봉화 청량산(870m) 지면기사

    ■ 산행지: 경북 봉화 청량산(870m)■ 산행일시: 2012년 11월 10일(토)24살 배낭여행때 묵었던 청량사텐트에 맺히던 서리·햇살 아련암봉 잇는 철제다리 보며 씁쓸#청량산… 그 아련한 추억1993년 겨울 어느날, 24살의 한 청년이 봉화에서 마지막 버스를 타고 청량산 입구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을 훌쩍 넘긴 밤이었다.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달린 후 종점에 이르러서야 가로등 불빛조차 희미한 길가에 내려섰다. 머리와 어깨로 쏟아지는 눈을 맞아가며 외로이 길을 찾아간다. 낙동강을 건너는 다리를 따르자 이내 흙길이 나온다. 이미 눈에 덮인 뒤인지라 혼자만의 발자국을 남기며 길을 걷는다. 길 옆으로 담배농사를 지었던 잔해가 보이고 아주 가끔 나타나는 연노랑 빛 백열등 하나가 길을 비추고 있다. 여전히 하염없이 내리는 눈송이와 마주할 뿐 어느 누구 하나 만나지 못한 길이다. 한참을 걸어 올랐을 즈음 익숙한 산행 안내판 하나가 눈길을 잡아끈다.청량사 방향으로 향하는 가파른 비탈길을 헤드랜턴으로 비추어 보곤 다시 큰길을 따라 걸었다. 이번엔 선학정이라는 정자가 나타난다. 이 또한 관심의 대상이 아니어서 다시 길을 따르자 변변치 않은 집터 하나가 나타났다. 녹이 슨 양철지붕 아래로 덧댄 나무판자도 낡아버린 집이 덩그러니 길가는 산객(山客)을 맞이하는 듯하여 처마 밑에 앉아 잠시 쉬었다 가기로 하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산비탈로 안내하는 작은 팻말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더니 신경조직과 세포조직이 일제히 반사적으로 산길로 이끈다. 약간의 쉼을 뒤로 하고 산속으로 들어가자 오르막이 이어지더니 완만한 경사길이 산비탈을 끼고 돈다. 어렵지 않게 절집 앞마당에 이르자 분별하기 어려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나마 탑 하나가 마당 끝에 서 있고 이어 알량한 요사채 하나와 사람 하나 겨우 들어설만한 법당이 한 눈에 들어온다.#고즈넉했던 산사(山寺)불꺼진지 오래인 법당이나 요사채에선 이렇다할 인기척도 없다. 소복이 쌓여가는 눈을 밟아가며 절집 앞마당을 제 집 돌아다니듯 다니다 졸졸 거리는 물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유일한 소음이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문경 황장산(黃腸山, 1077.3m)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문경 황장산(黃腸山, 1077.3m) 지면기사

    ■ 산행지: 경북 문경 황장산(黃腸山, 1077.3m)■ 산행일시: 2012년 10월 15일(월)곳곳 암릉·암봉암벽가의 로망 수리봉난공불락 요새 같은 자태정상가는 길산천 뒤덮은 솔향기벌재 샘물 산행피로 날려# 백두대간 푸른 등줄기에 위치한 황장산경북 문경시 동로면에 위치한 황장산의 이름은 예로부터 왕실에서 대궐이나 임금의 관, 배 등을 만드는데 사용하던 황장목에서 유래한 것이다. 목질이 단단하기가 으뜸이고 결이 고운 것으로도 최고의 가치를 지닌 소나무가 많이 생산되어 조선 숙종때(1680년) 이러한 나무의 관리를 위해 벌목을 금지하였다. 또한 이 산을 봉산(封山)으로 정하고 관리 감독케 할 관리까지 파견하여 감시하였던 곳이다. 지금은 당시에 세워졌던 봉산 표석(지방문화재 227호)만이 남아 있고 황장목은 사라져 버린 상태다. 과도한 벌목의 폐해인 것이다. 한편 황장산에 대해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 산경표에는 작성산(鵲城山)이란 이름으로 표기 되어 있는데 까치집을 닮은 산세에서 유래한 것으로 산기슭에 자리한 문안골에는 고려시대에 축조된 작성(鵲城)산성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명칭의 변경은 황장목의 벌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작성산 대신 황장봉산으로 불리다가 황장산이란 현재의 이름만 남게 된 것이리라. 한편 삼국시대에는 치열한 영토 싸움에서도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하였다 한다. 신라가 이 산을 넘게 되면 남한강을 따라 침투할 수 있고 고구려 또한 남진을 위해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하는 지역이었기에 양보 없는 전투가 맹렬하게 이뤄진 것이다. 근대에는 빨치산들이 황장산의 험한 산세를 이용하기 위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 토벌대와 잦은 교전을 벌였으며 인민군이 낙동강 전투에서 패한 후 퇴각하면서 수 많은 전사자를 발생케 한 작성전투가 이뤄진 곳이다.옛 영화와 아픔을 상기하며 등반을 위해 다가서며 바라본 황장산은 곳곳에 암릉과 암봉을 거느린 채 이국적인 정취마저 느끼게 하며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서 있었다.# 산악의 고장 문경 동로면901번 국도는 문경읍에서 주흘산을 바라보다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충북 영동 마니산(640m)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충북 영동 마니산(640m) 지면기사

    ■ 산행지 : 충북 영동 마니산(640m)■ 산행일시 : 2012년 9월 23일 (일)# 암벽이 병풍을 두른듯 위용을 자랑하는 마니산금강(錦江)을 바라보고 선 마니산은 찾는 이가 지극히 적은 까닭에 청정함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인근에는 어류산, 시루봉, 봉화산 등이 둘러싸고 있으며 암벽이 천연요새 역할을 하고 있는 까닭에 삼국시대에 동쪽으로 100여m, 남쪽으로 약 1㎞에 이르는 방대한 성벽을 쌓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성벽과도 같은 암벽의 중심에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향로봉이 서있다. 능선과 맞닿아 있지만 등산로조차 희미해진 것으로 보아 찾는 이가 그리 많지 않음을 말해준다. 마니산의 동쪽엔 성터와 고려의 31대 임금인 공민왕의 거처로 알려진 절터가 남아 있다. 홍건적의 난을 피해 들어왔을 당시에 축조된 것이라고 한다. 금강으로 문어발처럼 뻗어 내린 능선과 암벽의 위용이 하늘을 찌를듯 솟은 마니산의 산행은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청순한 아름다움이 숨겨져 있는 속살을 찾아 가는 길이다. 한겨울 산행에선 덕유산, 황악산, 민주지산, 백화산 등이 조망되는 곳이기도 하다.한국산 바나나 으름 한입에 오름길 거뜬한 원점회귀 산행이 될 터인지라 내려올 방향도 한눈에 들어온다. 한우를 키우는 농가와 주차장 사잇길로 난 산비탈에 들어서자 빽빽한 수풀이 우거진 것이 등산객들의 발길이 그다지 흔한 곳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가파르게 올라서야만 하는 길이기에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르자 하늘을 뒤덮은 넝쿨에 무언가가 달린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으름'이다. 얼마 만에 보는 것인지 반갑기 그지없는 산속 보물과도 같은 존재다.손에 닿을 듯한 높이에서 만개한 꽃처럼 한껏 벌어진 으름을 양손 가득 들고 하나씩 먹으며 산길을 오르는 재미만큼이나 즐거운 일이 또 있을까. 달달한 맛에 흠뻑 빠져 턱이 빠져라고 숨을 끌어올려도 모자랄 길을 쉽게 올라왔다. 손에 닿을듯 하던 능선에 올라서는 개심저수지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다시 오르막을 따라간다. 잠깐의 숨고르기가 끝나기가 무섭게 밧줄이 매인 바위지대가 나타난다. 그러나 위험할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전북 진안 천반산(657m)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전북 진안 천반산(657m) 지면기사

    ■ 산행지: 전북 진안 천반산(657m)■ 산행일시: 2012년 8월 26일 (일)○… 산행 안내■ 등산로가막교 ~ 할미굴 ~ 한림대터 ~ 천반산성터 ~ 송판서굴 ~ 깃대봉 ~ 먹개골 ~ 가막교 (4시간)■ 교통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익산장수고속도로-진안IC-진안로터리-가막교 # 가벼운 걸음으로도 족한 무난한 산길비 갠 하늘과 엄청난 바람을 몰고 오는 태풍이 상륙한다는 소식에 긴장을 하며 찾은 산이 천반산이다. 비교적 맑은 날씨를 유지하는 가운데 진안 땅에 접어들어 산행 들머리로 삼은 가막교를 건넜다. 금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로 진작에 내렸던 비의 영향인지 제법 물살이 거칠다. 장수명륜학당 표지석을 따라 좌측의 농로로 가자 호익물산 건물이 눈에 띈다. 그곳에서 만나게 된 이정표를 지나 능선길로 향하는 길을 타고 15분 정도 진행하자 삼거리가 나온다. 할미굴로 가는 길이다. 할미굴은 20m 절벽 아래에 깊이 5m 정도 파인 자연석굴로 쌍굴 형태로 파여 있다. 할미굴은 조선 세종 때 예조판서를 지낸 송보산 선생이 단종이 폐위되고 세조가 즉위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후학을 가르치는 데 몰두하다가 이곳에서 북쪽으로 100여m 거리에 있는 굴속에서 은거하면서 부인과 동침을 금하기 위해 부인을 따로 이곳에 기거하도록 하였기에 불리게 된 굴이다. 전설에 따르면 송 판서가 수도하면서 쌀 한 되를 부인과 나누어 갖고 부인에게 한 끼에 쌀 세 알, 생솔잎 세 개, 굴속 석간수 세 모금만 먹도록 했는데, 부인이 그 약속을 어기고 많이 먹어 부인의 쌀이 먼저 바닥이 나자 자신의 남은 쌀을 다시 반으로 갈라 부인에게 주어 함께 수도를 마쳤다고 한다. 소소한 읽을거리가 간판으로 서 있는 굴 입구를 되돌아 나와 한림대터로 향한다. 굴참나무, 참나무가 가득한 산길로 그다지 어려운 길이 아니다. 옛 선비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던 장소라고 전해지는 한림대터에 서자 멋진 조망이 이어진다. 금강의 힘찬 물줄기와 멀리 마이산의 독특한 봉우리가 한눈에 들어오니 쉬어가기 안성맞춤인 것이다. 한편 북쪽으로는 운장산과 구봉산이 펼쳐져 있어서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충북 금산 성치산(670.4m)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충북 금산 성치산(670.4m) 지면기사

    ■ 산행지: 충북 금산 성치산(670.4m)■ 산행일시: 2012년 8월 13일(월)가철 차량들과 맞물려 길에서 보낸 시간이 아까워 월요일 아침에 산행기점으로 삼은 용덕고개로 향하였다. 주말 아침이면 어김없이 길가로 늘어섰던 관광버스의 행렬도 자취를 감추고 간혹 보이는 피서객들의 차량만이 한적한 고갯마루를 지날뿐 비개인 하늘위로 떠가는 구름처럼 한가로운 산길로 접어든다. 한 4년 전쯤엔가 걸었던 길이다. 물론 변한 것도 없고 변할 것도 없는 길이지만 그때 보지 못했던 노란 원추리꽃이 하늘을 향해 꽃잎을 벌리며 피었다. 노란 꽃잎이 파아란 하늘과 묘한 대조를 보이는 가운데 어느새 발걸음은 묘지앞을 지나면서 명덕봉을 바라보고 섰다. 하늘금이 아름답게 이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한여름의 산길에서 이미 젖어버린 모자를 벗어 놓고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한모금의 물로 목을 축이며 하늘의 푸르름을 즐겨본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산들이 어우러진 고장이라서 금산이라 불린다더니 틀린 말이 아닌가보다. ■오기된 이정표솔향기 가득한 길이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적당히 젖어 있는 등산로를 걷는다는 것은 여러모로 행복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여름 한낮의 더위가 가득한 햇살을 가려줄 그늘이 있고 시원한 물줄기가 있는 곳이라면 더할나위 없기에 부지런히 걷는다. 그러다가 가끔씩 드러나는 바윗길이 나타나는 바람에 그늘을 벗어나야 할 때면 살이 타는 듯한 고통이 엄습해온다. 고속도로에서 벗어나 국도를 타고 용덕고개로 향하면서 지나쳐온 국토대장정 순례길을 걷던 젊은 친구들 모습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산속엔 한여름이어도 지열이나 복사열이 없기에 그늘만 드리워도 비교적 시원한 편이니 상대적으로 행복한 것일까.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고 했던가. 지금의 위치에서 만족스러운 부분을 즐기지 않으면 끝없이 고통스럽기에 불평 없이 숲길을 걷는다. 용덕고개를 벗어난지 1시간 여 만에 발견한 이정표상엔 고갯마루까지 8㎞로 되어 있다. 등산로에서 또는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안내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의 표본이다.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문경 주흘산(主屹山. 1,076m)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문경 주흘산(主屹山. 1,076m) 지면기사

    # 날아오르는 한 마리의 학을 닮은 주흘산문경 사람들이 '학이 날개를 펼치듯 문경시를 감싸고 있는듯한 형세'라며 입을 모으던 산으로 특히 동남면의 절벽은 위용이 대단하여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듯 솟아있다. 백두대간(白頭大幹)에서 빗겨 서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는 산이 바로 주흘산이다. 산행의 시작은 새들도 쉬어간다는 새재로 가는 길과 닿아있다. 한강과 낙동강 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에서 가장 높고 험한 고개였으며 문화와 경제의 뚜렷한 구분과 국방상으로 긴요한 위치이기도 했던 이곳은 임진왜란을 겪고난 후에 주흘관·조곡관·조령관의 3개 관문을 두어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이렇듯 영남에서 한양으로 가는 가장 중요했던 길이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산책로가 됐다.  # 공민왕의 피란과 보은의 혜국사 봄이면 꽃으로 치장을 하고 야생화가 만발한 산길에서 우보(牛步)의 낙(樂)을 누릴 수 있으련만 더운 가슴을 식히기 위해서 사뭇 다른 느낌의 더딘 걸음을 걷는다. 오랫동안 가물어서였을까. 계곡을 따라 오르는 동안 경쾌하게 흐르는 물줄기가 반갑기만 하다. 그렇게 800여m를 오르면 시원스레 물줄기가 떨어지는 '여궁폭포'를 만나게 된다. 수량이 늘어서인지 여느 때보다 더 힘찬 기운을 뽐내고 있다. 산길을 조금 더 오르면 혜국사를 만나게 된다. 혜국사는 신라 문성왕때(846년) 보조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는데 당시의 이름은 '법흥사'였다고 한다. 고려말에 홍건적이 두 번의 난을 일으켰는데 두 번째 침입때 개경이 함락을 당하는 국란을 겪게 된다. 당시 공민왕은 난을 피해 남쪽으로 피신하다가 영남으로 가는 길목인 험난한 문경새재를 넘어 법흥사에 잠시 몸을 의탁하며 임시로 대궐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이후 개성으로 돌아간 공민왕은 법흥사에 그간의 보답으로 재물을 하사했다. 법흥사는 이러한 재물로 가람을 중수하고 국왕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의미인 혜국사(惠國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 산중 삶의 근거지가 되었던 대궐터혜국사에서 10여분 거리의 안적암을 지나면 샘터가 있는 대궐터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엔 고려 태조 왕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기 안성 서운산(瑞雲山,547.4m)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기 안성 서운산(瑞雲山,547.4m) 지면기사

    ■ 산행지: 경기 안성 서운산(瑞雲山,547.4m)■ 산행일시: 2012년 6월 26일 (화)○ 산행 안내■ 등산로석남사~서운산 정상~서운산성~은적암~청룡사 (3시간)중앙CC~서운산 정상~서운산성~은적암~청룡사 (3시간30분)청룡사~좌성사~서운산 정상~은적암~청룡사 (2시간30분)청룡사~은적암~헬기장~서운산 정상~좌성사 (2시간)■ 교통자가용:1. 경부고속도로 안성IC~안성 57번 지방도~서운면 산평교 삼거리~34번 국도~청룡저수지~청룡사2. 서해안 고속도로~서평택 IC~안성시외버스터미널 안성시청 앞 원형로터리~진천방면~옥천교~원오교~개산초등학교~마둔저수지~석남사3. 중부고속도로 진천IC~진천·성환 방면 34번 국도~청룡사4. 중부고속도로 진천IC~진천·성환 방면 34번 국도~백곡초등교 직전 313번 지방도~배티고개~석남사대중교통: ▲안성~청룡사: 시외버스터미널에서 06:25, 07:35, 08:55, 11:05, 12:25, 13:45, 15:55, 17:15, 18:35, 20:35, 21:55 출발하는 백성운수 시내버스 이용. 소요시간 30분, 1천300원. 백성운수(031-673-3456) ▲석남사 입구~안성: 장죽리에서 1일 14회 운행(06:30~21:50) 100번 시내버스 이용. 소요시간 30분, 요금 1천200원. 여름 한 낮의 날씨다. 너무나도 메마른 대지는 양동이로 들이붓는 물이라도 벌컥대며 마실 기세다. 저수지 물도 바닥을 드러내어 애달픈 농부 마음이 타들어간다. 필자가 찾은 당일에도 안성의 저수지들은 바짝 말라 쩍쩍 갈라져 있거나 바닥에 한껏 초지를 형성하고 있다.전주와 대구 그리고 안성을 일컬어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는 곳이라 하였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던 장터가 열리던 곳이었다. 올망졸망 야트막한 산들이 구릉지대를 형성하고 많은 물을 가두어 농사 짓기에도 안성맞춤이었던 이 곳도 가뭄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산세에 비해 유난히도 많은 절터와 보물 청룡사(靑龍寺) 앞마당에 들어서니 6월의 초록빛이 그대로 내려와 법당에 머물고 있다. 맑은 기운을 고스란히 받아 반짝이듯 영롱한 기운의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기 포천 왕방산(737m)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기 포천 왕방산(737m) 지면기사

    ■ 산행지: 경기 포천 왕방산(737m)■ 산행일시: 2012년 6월9일(토)#임금이 머물던 자리가 산이름왕방산은 광주산맥으로부터 서쪽으로 뻗어나간 천보산맥의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포천시와 동두천, 양주군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신라 헌강왕 3년(872)께 도선국사가 이곳에 머무르고 있을 때 절의 창건과 함께 왕이 친히 방문해 격려해주었다. 이때 산 이름을 '왕방산(王訪山)'이라 하고 절 이름은 '왕산사(王山寺)'라 했다고 봉선사 본말약지는 전하고 있다. 또 포천군읍지(抱川郡邑誌), 견성지(堅城誌) 기록에 의하면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이 산에서 무예를 익히고 사냥을 했으며, 왕위에 오른 후에도 단오와 추석에 강무(講武·임금이 참관하는 무예시범)를 했다하여 왕방산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태조 이성계가 왕위를 아들에게 물려주고 함흥에 살다가 한양으로 돌아오던 중 왕자의 난 소식을 듣고 비통한 마음을 달래고자 이 산을 찾았다는 다른 유래도 전해지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얘기도 있다.이와 관련 함흥에서 두문불출하던 이성계를 아들 이방원의 명령으로 모시러 갔던 대신들이 돌아오지 않는 일이 잦아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이 생겼다고 전해진다.하지만 이는 함경도 안변지역 동북면에서 안변부사인 조사의가 1만 여진족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태종이 지역토호세력의 규합을 막기위해 상호군 박순을 파견, 수령들을 회유하였지만 실패해 죽음을 당한 게 후세에 잘못 알려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이성계의 묵시적 동의 내지 가담에 따른 결과라는 주장도 있음).#태조 이성계와 왕방산왕방산 서북방향에 위치한 소요산은 태조가 머물던 행궁이 있던 곳으로 함경도 안변지역으로 떠난 후 한양으로 돌아오지 않고 머물다가 성석린의 환도요청을 받고 한양으로 오던 중 추운겨울임에도 고집스럽게 찾아들어가 한양을 지척에 두고 태종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억누르고 삭이던 곳이기도 하다.이때 태종은 아버지 태조가 상왕(上王)으로서 정무에 소외된 것을 위로하기 위해 일부 정승을 소요산으로 보내 상왕의 결재를 받도록 조치하였고, 자신이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충북 괴산 청화산(970m)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충북 괴산 청화산(970m) 지면기사

    ■ 우복동천(牛腹洞天)을 품에 안은 백두대간 청화산택리지의 저자인 이중환이 조선 최고의 명승지로 꼽았던 곳이 청화산 자락에 있다. 그는 자신의 호 조차도 청화산인(靑華山人)이라 칭하고 청화산 자락으로 들어와 살았다. 일명 '우복동천'이라 칭하는 곳인데 우복은 소의 배 안을 닮아서 사람이 살기 편안하며 동천은 산과 내가 둘러있어 경치가 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곳을 찾아 많은 이들이 전국 팔도를 유람하며 자신들의 힘겨운 삶의 위안을 찾고자 했다. 민초들의 삶은 여간 고달픈 것이 아니었다. 부귀영화를 쫓는 삶이 아니라 처절하게 삶을 영위하기 위한, 생존을 위한 노력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 몰락한 양반 가문의 자제들도 우복동을 찾으려는 시도가 있었던 것을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다산산문집' '우복동가(牛腹洞歌)'라는 시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다. 속리산 동편에 항아리같은 산이 있어옛날부터 그 속에 우복동이 감추어져 있었다네산봉우리는 둘러싸고 골짝물이 천겹 백겹 굽이치고여민 옷섶 겹친 주름 터진 곳도 없네출입문은 대롱만큼 작은 구멍 하나라네송아지가 배를 땅에 붙여야 겨우 들어갈 정도라네…(중략)종이위에 누에 깔리듯 인구가 너무 많아 나무하고 밭 일구고 발 안닿은 곳 없으니남아 있는 빈 산지가 어디에 있을겐가아아 우복동이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아마도 다산은 우복동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현실적인 측면에서 주변 문제들부터 돌아보고 해결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또한 "근세에 고가(故家) 후예로서 먼 지방으로 영락(零落)되어 와서 사는 사람들은 영달(榮達)할 뜻은 없이 오직 먹고 살아가는 일에만 힘쓰고 있다. 심한 경우는 새처럼 높이 날아가고 짐승처럼 멀리 달아나려고 하여 우복동(牛腹洞)만 찾고 있는데, 한번 그 속으로 들어가면 자손들이 노루나 토끼가 되어버리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며 다산이 제생에게 주는 말에도 우복동이 기술되어 있다. 유토피아 우복동을 향한 백성들의 마음을 이미 헤아리고도 남았을 다산은 오히려 현실개혁으로 마무리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 영월 마대산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 영월 마대산 지면기사

    ■ 산행지: 강원 영월 마대산 (1,052m)■ 산행일시: 2012년 5월 6일(일)○ 산행 안내■ 등산로노루목 ~ 김삿갓생가 ~ 주능선안부 ~ 정상 ~ 처녀봉 ~ 선낙골 (4시간30분) 노루목 ~ 김삿갓생가 ~ 주능선안부 ~ 정상 ~ 안부 ~ 김삿갓 생가 (3시간)■ 교통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서제천IC ~ 5번 국도 ~ 제천 ~ 영월방향 38번 국도 ~ 와석리 ~ 민화박물관 ~ 김삿갓 묘#방랑시인 김삿갓의 자취를 찾아 가는 길박물관과 생가를 보존하고 있어 2009년까지 하동면으로 불리던 동네가 김삿갓면으로 개칭이 됐다. 김삿갓으로 알려진 김병연(金炳淵·1807~1863년)의 묘가 있기 때문인데 이제는 그럴싸한 관광지로 변모했다.사면으로 둘러싸인 산들로 인해 늦게 해가 들고 일찍 어두워지는 강원도 산골 오지마을, 첩첩산중에 자릴 잡은 김삿갓 묘는 전설 같은 그의 행적과 맞닿아 있다. 마대산은 이러한 김삿갓의 흔적들이 있는 곳으로, 백두대간 선달산의 고치령과 마항치 사이에 자리한 형제봉의 가지쯤에 해당하는 지맥으로 보면 된다. 이러한 산자락 동쪽에 위치한 김삿갓 유적지에는 시비(詩碑)공원을 비롯해 묘지, 생가, 박물관 등이 자리하고 있어 등산객 뿐만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도 많이 찾고 있다. 더군다나 한여름이면 김삿갓 계곡을 찾아 더위를 피하려는 피서객들까지 가세해 산골오지 마을이 사람들로 북적이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한다.#한뼘 만한 하늘이 보이는 깊숙한 산골의 유적지 공원을 지나 산길을 따라 걷는 길은 산책코스에 가깝다.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걷기 적당한 길을 20여분간 걷다보면 작은 계곡이 합수되는 지점에 위치한 폭포 앞에서 한걸음 쉬어갈 수 있다. 5월의 햇살이 한여름 땡볕처럼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이 필자만이 아니라는듯 벌써부터 하나둘 자리를 잡는다. 시흥에서 온 박흥석(56)씨가 "삿갓은 이럴때 쓰라고 있는게 아닌가 싶네요. 얼굴을 가릴게 아니라 햇빛부터 피하고 봐야지…"라며 하늘을 올려다 본다.다시 발품을 20여분 팔아 도착한 곳은 외딴 농가가 있는 곳으로 합수점인데 이곳에서 200여 m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충북 제천 저승봉(596m)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충북 제천 저승봉(596m) 지면기사

    ■ 산행지: 충북 제천 저승봉(596m)■ 산행일시: 2012년 3월 25일(일)# 금수산 자락에 숨은 영롱한 보석과도 같은 암릉작성산(鵲成山·848m)과 동산(東山·896m), 금수산(錦繡山·1천16m)을 이루는 산줄기가 단양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갑오고개를 두고 서편으로 뻗어나간 능선에 신선봉(845m)과 저승봉(미인봉·596m), 조가리봉(562m)이란 이름이 붙은 봉우리들이 늘어서 있다. 월악산 국립공원 내에 속한 산들의 유형이 그렇고 청풍호반을 끼고 도는 능선들의 형태 또한 크게 다르지 않듯 이 능선의 특징 또한 유사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한편으로는 충북 괴산의 악휘봉과 닮은 면도 보인다. 산 자체가 위험천만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는 암봉이란 뜻이다.특히 신선봉에서 저승봉에 이르는 구간은 각별한 주의가 요망되는 곳으로 한겨울의 적설기 등반에 적합하지 않은 곳이다. 그러나 능선의 좌우에 위치한 능강계곡과 학현계곡은 피서지로도 각광을 받는 곳이기에 한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저승봉은 과거 멧돼지가 많아 돼지'저(猪)'자를 사용한 이름이 붙었다고 하며 저승봉 북쪽 학현리로 난 계곡을 저승골이라고도 한다. 현지 사람들은 저승봉이라는 이름 대신 '미인봉'이라고 부르기를 원하며 미인봉이라 쓰인 정상석이 있다.# 산 아래 아지랑이 산 위에서 눈보라로…동네 길을 따라 굽이굽이 올라선 버스가 내리막에서 비틀댄다. 봄날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던 버스가 도착한 학현리 마을에 발을 디뎠다. 이틀전 내린 눈이 고스란히 쌓인 모습에 아차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젠을 차에 두고 온 것이다. 스패츠도 놓고 왔는데 다행히 장갑은 챙겨왔다. '괜찮겠지…'하며 벌써부터 산에 오르기 시작하는 일행을 따라 서둘러 발걸음을 옮긴다. 하나 몇 걸음 가지 않아 만만치 않은 경험을 하게 될거란 생각이 들었다. 낯익은 초록의 생명체가 참나무 가지 끝에 걸린 모습을 보다가 넘어지더니 이내 넘어지는 횟수가 늘어만 간다. 발의 디딤이 불안정하니 한걸음 전진할 때마다 힘이 들어가고 점차로 더딘 걸음을 걷는다. 인천에서 답사차 산을 찾았다는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영주, 충북 단양 소백산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영주, 충북 단양 소백산 지면기사

    ■ 산행지 : 경북 영주, 충북 단양 소백산(1,440m)■ 산행일시 : 2012년 3월 10일(토)# 겨울 찬바람과 눈보라가 절정을 이루는 소백산4월부터 피어나기 시작하는 야생화가 지천이며 5월말이면 철쭉꽃의 장관이 절정을 이루고 한여름이면 여기저기로 뻗어나간 물줄기를 찾아와 더위를 식히던 소백산은 차라리 겨울이 더욱더 매력적이다. 능선으로 다가가는 발걸음은 그다지 무겁지 않다. 어의곡이든 희방사 방향이든 일단 오름을 시작한 이상 그다지 힘들 것 없는 무던한 길이다. 산행이 순조롭지 않거든 운동 부족을 이유로 들어야지 산 자체가 힘들다고 탓할 것은 못된다는 이야기다.소백산은 20여㎞ 유순하게 이어진 능선과 긴계곡처럼 여운이 긴 산이다. 이것이 다녀오고 나서도 할 말이 많은 이유다.겨울 소백산행은 여지없이 북풍한설의 칼바람에 맞서게 된다. 세상천지에 어디서 그러한 바람을 맛볼 수 있을까?앞사람의 등짝이라도 도움이 될까 다가서 보지만 언감생심(焉敢生心) 속절없이 몰아치는 눈보라 앞에서 그저 입을 다물고 서둘러 추위를 피해 달아날 궁리만 할 뿐이다. 춥다 그리고 또 춥다. 한겨울의 소백산은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야만 겨울산의 멋진 풍광을 선사해 준다. 그리고 그 감동은 긴 여운을 남기기에 두고두고 회자될 것이다.# 독살이 하던 옛모습처럼 고즈넉한 희방사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시간의 지명 논쟁은 쉽사리 끝나 보이지 않는다. 영주시 의회를 통과한 '소백산면'이란 지명때문에 불화가 생긴 것이다. 산 하나를 두고 오랜 세월 이웃으로 지내던 곳이 지명때문에 싸움질을 시작하게 된 것인데 가만히 속내를 들여다 보면 영월의 '김삿갓면'을 벤치마킹하려한 것으로 보인다. 유명세를 등에 업고 경제적인 이득을 보기 위한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다. 그저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산골 동네면 족한 것을 그리도 성을 내며 싸워야 하는지…. 속리산면이 속리산이 아니듯 추풍령면도 추풍령이 아니다. 공연한 싸움일랑 말고 그저 예전의 모습처럼 지내길 바랄 뿐이다. 봄비가 겨우내 드리웠던 우중충함을 거두어 가려한다. 하지만 꿋꿋하게 겨울을 간직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 횡성 운무산(980m)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 횡성 운무산(980m) 지면기사

    ■ 산행지: 강원 횡성 운무산(980m)■ 산행일시: 2012년 2월 26일(일)# 구름과 안개에 숨은 운무산겨울가뭄 탓에 쌓인 눈의 색마저 검게 변색돼가고 있다. 얼마나 가물었을까. 봄철 농사에 지장이 있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이 앞선다. 이런 때일수록 산불을 조심해야 된다. 산을 찾는 사람들 모두 안전과 산불예방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산행 전 산불예방을 위해 산림청 홈페이지를 통해 입산금지 구역을 확인한 후 계획을 세우도록 하자.강원도 횡성군과 홍천군에 걸친 운무산은 한강기맥에 속해 있다. 백두대간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뻗어나온 이 산맥은 계방산을 지나 청량봉에 이르러 경기도 방향으로 줄기를 이어간다. 운무산은 그 가운데 위치한 산으로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잦은 안개로 인해 신비감이 가득하다. 능선 곳곳 어른 키를 넘는 철쭉나무로 인해 봄이면 아름다운 색으로 치장한다. 여름이면 숨겨놓은 비경의 계곡을 여럿 거느린 탓에 입소문으로만 찾아온 피서객들로도 성시를 이룬다. 능선 곳곳 거느린 기암과 절벽은 마치 설악의 어느 한 곳을 옮겨놓은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다. 그러나 등산로가 나있지 않은 까닭에 눈으로만 감상하는 데 만족해야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겨울설경의 절정을 이룬 능선길국도변에 위치한 속실리 마을회관에서 산아래 마을 안길로 들어선다. 폭이 좁은 도로를 타고 들어가면 제일 먼저 시골마을의 아기자기함과 정겨움이 느껴지는 나무팻말이 눈에 띈다. 일기예보에서 한파를 동반한 폭설이 영동지방을 강타한다고 하더니 이른 아침부터 눈발이 날리며 도로에 쌓였다. 계곡 깊은 곳까지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데 산행기점으로 삼은 운무산장마저 진입하기 어려운 지경이라 마을버스 종점 공터에 주차하고 산에 오르기로 한다. 능현사 방향 시멘트로 포장된 길가로 동네 아이들이 계곡에서 눈썰매를 지치고 어른들은 얼음을 깨고 천렵에 나섰다. 산골마을 몇 안 되는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을 뒤로 한 채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선다. 한숨을 돌리며 산아래를 굽어보니 제법 올라온 듯하다. 능현사 주방에서 물동냥을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 충남 서산 팔봉산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 충남 서산 팔봉산 지면기사

    #거친 숨 몰아쉬며 달려온 바다 끝 용틀임바다를 바라보며 선 자리에 불꽃과도 같이 타오르는 열정으로 빚어진 바위 덩어리가 한데 모였다. 꽃을 피우고 힘을 과시하듯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힘찬 바위들에게서 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충남 서산에 위치한 팔봉산은 아기자기한 산행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금북정맥 금강산(361m)에서 분기한 지능선에 속하여 있다. 갖가지 모양을 지닌 바위들이 능선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산자락 아래로는 임도를 따라 조성된 둘레길이 있고, 1봉부터 3봉까지의 암봉을 오른 후 기우제터와 운암사지를 거쳐 오는 원점회귀 산행을 하여도 팔봉산의 매력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 9개의 봉우리를 따라 모두 오른다 해도 3시간이 걸리지 않을 만큼 짧지만 여운만큼은 강렬하게 남는다. 보다 긴 산행을 원할 경우 8봉과 접한 금강산과 연계하면 5시간 정도의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비릿한 바다내음 가득한 바윗길 서해안 고속도로 서산IC를 벗어난 버스가 들어선 곳은 팔봉산자락에 위치한 양길리 주차장이다. 산행을 시작하기도 마치기도 하는 곳이니 어지간히 붐비는 곳이라 생각하였지만 비교적 잘 정비된 탓이라 많은 인파에도 여유롭다. 시산제를 준비하는 산악회들의 분주한 모습을 뒤로 하고 1봉으로 향하는 길과 1봉과 2봉 사이의 안부를 통해 오르는 갈림길에서 잠시 고민을 해본다. 하지만 1봉의 전망을 빼놓을 수 없다는 말에 1봉으로 바로 오르는 길을 택한다. 자연스럽게 바위와 밀접해지는 능선길로 향하는 길에서 진작부터 암반에 붙는 착화감이 좋다. 15분 정도를 걸어서 능선으로 붙는 첫 번째 관문에 도착을 하니 벌써부터 서해의 가로림만이 눈에 들어온다. 육지의 깊숙한 곳까지 파고든 바다가 가로림만으로 간척사업에서 간신히 벗어난 바다를 팔봉산 능선에서 고스란히 눈에 담아 둘 수가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앞으로 지나갈 봉우리들이 보여줄 비경에 기대를 거는 것이 이상할 리 없다. 하지만 그저 밀려갔다 밀려오기를 반복하는 가로림만의 바다는 조력발전소 건립 문제를 두고 현지 주민들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며 분쟁을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 횡성 덕고산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 횡성 덕고산 지면기사

    ■ 산행지: 강원 횡성 덕고산(德高山·1,135m) ~ 봉복산(鳳腹山·1,022m)■ 산행일시: 2012년 1월 8일(일)# 때 묻지 않은 청정오지의 산한여름이라면 신대계곡의 시원한 물줄기에 더위라도 씻겨 보련만 온통 얼어붙은 탓에 찾아가는 길도 녹록지 않다. 스키 시즌을 맞은 강원도에서의 주말 산행은 참으로 각오해야 할 것들이 많은데 오지로의 산행은 그러한 걱정들을 벗어던질 만한 매력을 안겨주기에 달콤한 유혹에 빠져든다. 봉복산과 덕고산은 오염되지 않은 청정 산행지로 대중교통 접근성은 떨어진다. 덕분에 그다지 많이 찾지 않는 탓에 보존환경이 좋은 편이다. 한여름엔 신대계곡의 청량감에 더위를 씻을 수 있고 겨울엔 심설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곳이지만 표고차가 큰 편에 속하므로 준비운동은 필수로 하여야 한다. 산줄기는 백두대간을 기점으로 하여 오대산에서 계방산을 지나 덕고산(德高山·1천135m)과 봉복산(鳳腹山·1천22m)을 만나게 되는데, 한강기맥에 속하며 영월지맥에 해당하는 태기산과는 성골을 사이에 두고 있다. 산행은 원점회귀하는 코스가 가장 무난하다. # 공허한 바람만 가득한 쓸쓸한 주차장얼음으로 뒤덮인 신대계곡을 따라 산의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니 이곳 또한 개발의 바람 앞에 노출되어 펜션들이 들어차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상류에 해당하는 곳까지는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도로가에 설치된 등산 안내판을 따라 주차장으로 찾아갔으나 대형버스도 이용하기 좋도록 해 놓은 주차장이 승용차조차 들어설 수 없도록 조치를 해두었으니 드넓은 주차장엔 바람만이 가득하다. 다시 차를 몰아 펜션 갈림길인 삼거리 빈 공간에 주차를 하고 길의 오른편 표식기들을 따라 걷는다. 출발한 지 3분쯤, 거리에 위치한 안내판의 방향이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만큼 계곡방향으로 틀어져 있다. 좋은 길을 놔두고 왜 이러나 싶어 살펴보니 차가 다닐 만한 길은 개인 소유지이므로 출입이 불가한 것이다. 안내판 방향인 철조망을 따라 계곡방향으로 나아가니 작은 컨테이너 있는 곳에서 다시 길이 갈라진다. 계곡을 건너서 봉복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도 양구 사명산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강원도 양구 사명산 지면기사

    ■ 산행지: 강원도 양구 사명산(四明山·1천198m)■ 산행일시: 2011년 12월 16일 (금)# 한층 가까워진 오지산행지춘천을 거쳐 양구로 가야하는 길이 고속도로 덕분에 한층 빨라졌다. 예전보다 더 빨리 다가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는 것은 바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반가운 소식일 수밖에 없다.사명산을 처음 만난 것은 최영미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마지막 구절인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를 입에 달고 살던 서른살의 나이였다. 10여년이 지난 즈음에 다시 찾는다는 설렘에 들뜬 마음으로 산행기점으로 정한 추곡약수터로 향한다. 양구 사명산은 금강산에서 시작되는 도솔지맥(兜率枝脈)의 여러 봉우리 중 하나다.도솔지맥은 백두대간이 금강산 아래로 남진하며 매자봉(1천144m)을 기점으로 나뉘는데 내륙방향으로 흐르는 산줄기로 민간인이 지날 수 있는 최북단에 위치한 도솔산(1천148m)~대암산(1천304m)~봉화산(875m)을 거쳐 사명산(1천198.6m)을 지난 후 죽엽산(859m)과 추곡령, 종류산(811.1m)~부용산(882m)~오봉산(779m)~수리봉(656m)을 지나면 북한강과 소양강 합수점이 있는 우두산(133m)에서 끝을 맺는 능선이다.# 명약이 따로 없는 효험 좋은 추곡약수터춘천을 지나고 배후령을 넘어설때 쯤 고갯마루 오른편의 오봉산으로 향하는 등산객들의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보다 쉽게 산을 오르기 위해서 택하는 코스로 가장 선호하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필자의 소견은 피해야할 코스이기도 하다. 오르막 없는 능선길에서 마냥 내려서기만 하는 산행코스는 관절의 손상을 가중시키고 위험도만 증가시키기 때문이다.심폐기능과 근력의 향상을 위해서는 반대로 산행을 하여야 한다. 겨울철엔 특히 위험도가 증가하므로 피해야 할 구간임에도 많은 이들이 능선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심장이 오그라들 지경이다.겨울철은 산행코스 선정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다치고 나서 하소연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추곡약수터는 춘천서 양구로 이어지는 46번 국도를 이용해 춘천시 북면 추곡리를 찾아가면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상주 속리산 문장대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경북 상주 속리산 문장대 지면기사

    ■ 산행지: 경북 상주 속리산 문장대(1,033m) ■ 산행일시: 2011년 12월 3일(토)# 추억의 편린(片鱗)1989년 겨울, 두 명의 대학생이 속리산 겨울산행을 위해 길을 나섰다. 문장대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을 무렵엔 벌써 내려앉은 땅거미에 어둑해진 뒤였다. 고된 행군처럼 줄기차게 오름짓을 이어가다보니 등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고 이마에선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스무살의 청년들에게 이정도쯤은 식은 죽 먹기 인양 힘으로 밀어붙이는 산행이었다. 흠뻑 젖은 머리와 어깨 위로 함박눈이 내려도 그만이었고 등산화에 눈이 들어와도 개의치 않았다. 젊다는 것을 최고의 무기로 알았던 무모함 탓이었으리라.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며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동시에 느끼면서 점점 환영과 몽환적인 상상속에 빠져 가던 중 천황봉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멀어져 가던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몰아치는 눈 속에서 확인이 가능한 것이라곤 정상석 뿐이었다. 4개의 소형 건전지로 버텨오던 랜턴도 빛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어서 다급해진 마음에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정표도 없는데다 길마저 눈에 덮여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도 못잡고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희미한 랜턴 불빛에 보이는 발자국…. 얼마나 반가웠던지 앞서간 발자국의 주인공을 만나고자 있는 힘을 다해 내달렸다. 5분여도 안되어 발견한 사람은 하얀 농복에 지게를 진 노인이었다. 나를 향해 손짓으로 자신을 따라오지 말고 아래로 내려가라는 손동작을 한다. 정신을 차리고 그 노인이 일러준대로 굴러 떨어지듯 하산을 하고보니 허름한 농막의 불빛이 보였다. 기진맥진해 탈진한 상태로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하자 냉큼 들어오라 한뒤 아랫목을 내어준다. 공부하는 할아버지인데 인근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해 주신 후 그 분을 만났기에 살아온 거라며 기특해 하신다.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따질만큼 체력이 남아있질 않았기에 따스한 아랫목을 차지한 채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을 맞아 기운을 차리고 그 집을 나와 도심으로

  •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전남 장흥 천관산

    [송수복과 떠나는 즐거운 산행]전남 장흥 천관산 지면기사

    ■ 산행지: 전남 장흥 천관산(723m)■ 산행일시: 2011년 11월 20일(일)# 호남 5대 명산 천관산에서 느껴보는 가을의 끝자락천관산은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1시간 30여분이면 정상에 닿아 노약자와 어린이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가족공원과도 같은 느낌의 산으로, 북으로는 광주의 무등산을 비롯해 영암의 월출산과 인근의 제암산이 보이며 남쪽으로 남해의 다도해와 멀리 제주도의 한라산까지 한 눈에 들어오는 조망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1998년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전망대와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천관산자연휴양림에서의 야영은 그 운치를 더해준다. 가을이면 어김없이 수많은 등산객들이 빼곡히 줄지어 오를 만큼 북적이는 탓에 산과 마을을 잇는 산길마다 울긋불긋 오색 향연의 축제가 벌어져 넓디 넓은 주차장도 몸살을 앓는다. 정상부엔 전국에서 손에 꼽힐 규모의 억새평원이 펼쳐지고 봉우리마다 기암이 자리하고 있어서 볼거리를 더해 준다. 매년 가을 열리는 억새축제를 피해 다소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나름의 매력으로도 충분히 가 볼만한 산으로 서울 세종로 광화문 한복판에 설치된 도로원표(道路元標)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정동(正東)은 정동진(正東津)이고, 정북(正北)이 가장 춥다는 중강진(中江鎭)이다. 그리고 정남진(正南津)인 장흥(長興) 땅에 솟은 천관산은 기암과 억새와 다도해의 푸른 바다를 품고 있어서 3박자를 갖춘 산이라 할 수 있겠다. 신산(神山)이라고도 불리던 천관산은 지제산(支提山) 또는 천풍산(天風山)이라고도 하였는데, 첩첩이 쌓인 기암괴석이 천자의 면류관 형상을 하고 있는 데다가 천관보살이 살았다 하여 천관산(天冠山)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호남정맥의 끝자락에 속하는 천관산에는 6개 동천(洞天)과 44개 영봉(靈峰) 그리고 36개 석대(石臺)가 있고, 옛날에는 89암자가 있어 28명의 대사를 배출했으며, 금강산 다음의 명산이었다고 천관산기(天冠山記)는 기록하고 있다.# 절경의 기암과 어우러진 억새평원축제는 끝이 났고 사람들은 떠났다. 휑한 주차장에 덩그러니 놓인 몇 대의 버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