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지: 경북 문경 황장산(黃腸山, 1077.3m)
■ 산행일시: 2012년 10월 15일(월)
곳곳 암릉·암봉
암벽가의 로망 수리봉
난공불락 요새 같은 자태
정상가는 길
산천 뒤덮은 솔향기
벌재 샘물 산행피로 날려
# 백두대간 푸른 등줄기에 위치한 황장산
경북 문경시 동로면에 위치한 황장산의 이름은 예로부터 왕실에서 대궐이나 임금의 관, 배 등을 만드는데 사용하던 황장목에서 유래한 것이다. 목질이 단단하기가 으뜸이고 결이 고운 것으로도 최고의 가치를 지닌 소나무가 많이 생산되어 조선 숙종때(1680년) 이러한 나무의 관리를 위해 벌목을 금지하였다. 또한 이 산을 봉산(封山)으로 정하고 관리 감독케 할 관리까지 파견하여 감시하였던 곳이다.
지금은 당시에 세워졌던 봉산 표석(지방문화재 227호)만이 남아 있고 황장목은 사라져 버린 상태다. 과도한 벌목의 폐해인 것이다. 한편 황장산에 대해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 산경표에는 작성산(鵲城山)이란 이름으로 표기 되어 있는데 까치집을 닮은 산세에서 유래한 것으로 산기슭에 자리한 문안골에는 고려시대에 축조된 작성(鵲城)산성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시기적으로 봤을 때 이러한 명칭의 변경은 황장목의 벌채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작성산 대신 황장봉산으로 불리다가 황장산이란 현재의 이름만 남게 된 것이리라. 한편 삼국시대에는 치열한 영토 싸움에서도 전략적 요충지의 역할을 하였다 한다.

신라가 이 산을 넘게 되면 남한강을 따라 침투할 수 있고 고구려 또한 남진을 위해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하는 지역이었기에 양보 없는 전투가 맹렬하게 이뤄진 것이다. 근대에는 빨치산들이 황장산의 험한 산세를 이용하기 위해 이곳으로 숨어 들어 토벌대와 잦은 교전을 벌였으며 인민군이 낙동강 전투에서 패한 후 퇴각하면서 수 많은 전사자를 발생케 한 작성전투가 이뤄진 곳이다.
옛 영화와 아픔을 상기하며 등반을 위해 다가서며 바라본 황장산은 곳곳에 암릉과 암봉을 거느린 채 이국적인 정취마저 느끼게 하며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서 있었다.
# 산악의 고장 문경 동로면
901번 국도는 문경읍에서 주흘산을 바라보다 하늘재와 포암산, 대미산을 잇는 백두대간을 따라 면소재지로 가다가 갈평과 중평을 지나 생달리로 접어들어서야 황장산으로 오르는 산길을 만나게 된다. 한여름의 뙤약볕 때문에 꺼려하던 산행지가 가을을 만나면서 즐거운 산행이 될 수 있도록 치장을 하고 있기에 능선 너머로 맑게 갠 하늘이 더욱 푸르고 청아하게 느껴진다.
어느샌가 차량 한 대가 다가오더니 중무장한 산꾼들을 내려 놓는다. 수리봉을 등반하기 위한 암벽팀으로 어지간한 해외원정팀 장비만큼이나 챙겨왔다. 황장산이 일반 등산객들 뿐만 아니라 암벽등반가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이유는 수리봉의 자태 때문으로 수직으로 올라선 바위를 타고 오르는 멋진 사진이 한 몫을 했다. 필자는 대간꾼들이 오르는 길을 따라가기 위해 작은 차갓재 방향을 들머리로 잡았다.
# 팔다리 고생에 마음까지 졸이는 묏등바위는 동절기 최난구간

안산다리 마을을 지나 계곡으로 접어들자 길은 완만하게 이어지며 활성광산 복구지의 카페를 지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지나 30여분을 오르니 작은 차갓재다. 우망골과 봉산표석이 있는 차갓마을로 내려설 수 있는 교통로와도 같은 곳이다. 황장산 정상을 가기 위해서는 오른편 능선을 따라야한다.
얼마 가지 않아 나타나는 울창한 침엽수림은 하늘을 덮고 있기에 약간은 어두운 길이나 등산로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푹신한데다 솔향기가 숲을 뒤덮고 있어서 거친 숨소리 대신 가슴으로 싱그러운 공기를 담아갈 수 있는 곳이다.
이후 작은 바위지대에 올라서면 대미산과 운달산, 주흘산이 연이어 시선을 끌고 북으로는 도락산의 바위들과 능선이, 동북방향으론 수리봉, 신선봉, 황장산이 물결처럼 흐르고 그 뒤로 소백산이 보인다. 거칠게 오르지 않아 좋은 능선에서 풍경까지 좋으니 절로 흥이 나는 구간이다. 하지만 정상직전의 묏동바위를 만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겨울철에 지나게 될 경우 위험부담을 안고 가야할 정도로 가파른 비탈이 연이어 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곳으로 정상에서 내려오던 등산객과 누가 먼저 오르고 내릴 것인가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던 곳이다. 정상은 예상 밖으로 싱겁다.
헬기가 앉을 너른 장소가 전부이다 보니 조망도 시원치 않다. 전형적인 육산의 형태를 띤 정상에서 다소의 실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등산객들의 푸념섞인 투정이 점심식사로 때워지는 곳이니 파리만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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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마바위 치마폭에 가려진 등산로
안내판에 표기된 바로는 벌재까지 2시간 40분이다. 필자처럼 사진 찍으며 여유부리면 3시간은 족히 걸린다는 얘기다. 일행으로 간 박영로(47·안양)씨가 "뭔 하산이 이리도 길어요…"라며 탄식한다. 그래서 필자의 옛 추억 하나를 꺼내어 들었다.
"93년도 8월에 이곳은 태풍 로빈의 영향으로 인해 비바람이 거세기가 장난이 아니었지요. 그 때문에 종주시간이 많이 걸려서 식량지원을 받기 위해 죽령까지 죽을 힘을 다해 밤잠 안자고 산행했던 곳이었어요. 무려 29시간을…." 실제로 그랬다.
억수로 쏟아지는 비와 바람을 온몸으로 맞아가며 지났던 곳이다. 그 끔찍했던 기억 덕분에 한동안 오기 꺼려했던 곳이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치마바위는 길을 잃고 헤매기 일쑤인 구간이다.
앞만 보고 가다가 갑자기 오른쪽으로 꺾이는 길을 보지 못하고 갔다가 되돌아 오는 수고스러움 때문에 동행자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곳이다. 잦은 오르내림을 반복하다 내려서는 벌재에선 샘물이 피로를 푸는 최고의 명약이다. 갈증과 피로가 한순간에 사라질 만큼 강렬한 물 맛이 일품인 벌재에 잔잔한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