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지: 경북 상주 속리산 문장대(1,033m)
■ 산행일시: 2011년 12월 3일(토)
# 추억의 편린(片鱗)
1989년 겨울, 두 명의 대학생이 속리산 겨울산행을 위해 길을 나섰다.
문장대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을 무렵엔 벌써 내려앉은 땅거미에 어둑해진 뒤였다. 고된 행군처럼 줄기차게 오름짓을 이어가다보니 등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고 이마에선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스무살의 청년들에게 이정도쯤은 식은 죽 먹기 인양 힘으로 밀어붙이는 산행이었다. 흠뻑 젖은 머리와 어깨 위로 함박눈이 내려도 그만이었고 등산화에 눈이 들어와도 개의치 않았다. 젊다는 것을 최고의 무기로 알았던 무모함 탓이었으리라.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며 체온이 떨어지는 것을 동시에 느끼면서 점점 환영과 몽환적인 상상속에 빠져 가던 중 천황봉에 가까스로 도착했다. 멀어져 가던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몰아치는 눈 속에서 확인이 가능한 것이라곤 정상석 뿐이었다.
4개의 소형 건전지로 버텨오던 랜턴도 빛을 서서히 잃어가고 있어서 다급해진 마음에 서둘러 하산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정표도 없는데다 길마저 눈에 덮여 어디로 가야하는지 방향도 못잡고 그만 길을 잃어버렸다.
희미한 랜턴 불빛에 보이는 발자국…. 얼마나 반가웠던지 앞서간 발자국의 주인공을 만나고자 있는 힘을 다해 내달렸다. 5분여도 안되어 발견한 사람은 하얀 농복에 지게를 진 노인이었다. 나를 향해 손짓으로 자신을 따라오지 말고 아래로 내려가라는 손동작을 한다. 정신을 차리고 그 노인이 일러준대로 굴러 떨어지듯 하산을 하고보니 허름한 농막의 불빛이 보였다. 기진맥진해 탈진한 상태로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요청하자 냉큼 들어오라 한뒤 아랫목을 내어준다. 공부하는 할아버지인데 인근에선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설명해 주신 후 그 분을 만났기에 살아온 거라며 기특해 하신다. 무슨 말인지 선뜻 이해가 되질 않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을 따질만큼 체력이 남아있질 않았기에 따스한 아랫목을 차지한 채 잠이 들었다가 다음날 아침을 맞아 기운을 차리고 그 집을 나와 도심으로 향했다.
# 20여년 만에 오른 문장대
속리산국립공원 화북분소를 지나 오송교 다리를 건넌다. 사뭇 새로운 느낌이다. 예전에는 어떤 느낌이랄 것도 없이 지나던 길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습기 짝이 없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오송폭포의 마른 물줄기를 지나 산죽밭으로 들어가는 길 또한 정겹고 반갑기까지 하다. 문장대에 오르면 어떤 마음이 들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예전만큼의 발걸음처럼 점점 서둘러지고 있었다.
조금은 촉촉이 젖은듯한 날씨속에 걷는지라 문장대에서의 조망은 안개속일 것이란 막연한 생각이었다.

한시간여를 걸었을까 생각지도 않은 눈길을 지나고 있지 않은가. 조금 더 오르자 "어라 이거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만큼 눈의 양이 많아지고 있었다. 미처 아이젠을 준비하지 못한 다른 등산객들의 난감한 표정을 뒤로 하고 발에 힘을 주어 힘들게 문장대에 오르니 눈이 제법 쌓였다. 예전의 기억만큼은 아니지만 바람도 제법 불어대는 통에 문장대 정상에선 겨우 1분여를 서있지 못했다. 관음봉·북가치·묘봉을 잇는 암봉들을 바라볼 기회도 놓치고 백두대간의 힘찬 줄기 또한 바라보지 못한 채 바람을 피해 내려선다. 문장대는 원래 큰 암봉 하나가 하늘높이 치솟아 구름속에 숨어 있다해서 운장대(雲藏臺)라 불리우던 곳이다.
조선 세조가 속리산에서 요양을 하고 있을 때 꿈속에서 어느 귀공자가 나타나 "인근의 영봉에 올라 기도를 하면 신상에 밝음이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전했다. 세조가 이 말을 듣고 운장대에 오르니 정상 부근에 삼강오륜을 명시한 책 한 권이 있었고 그 자리에서 하루를 지내며 글을 읽었다해서 지금의 문장대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문장대 아래의 휴게소는 국립공원 중에서도 소음이 심하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라는데 손님이 뜸해서인지 오늘만큼은 조용한 분위기다. 국립공원내에 있긴해도 사유지에 해당하다 보니 통제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 도(道)를 잃고 방황하다
속리산의 명칭은 최치원의 한시(韓詩)에서 유래됐다는 설(說)이 있다.
도불원인 인원도(道不遠人 人遠道) /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 사람은 도를 멀리하려 하고,
산비리속 속리산(山非離俗 俗離山) / 산은 속세를 여의치 않는데 속세는 산을 여의려 하는구나.
속리산을 송두리째 들여다 볼 기회를 놓치고 날씨에 속아 하산을 서두르면서 길가에서 마주치는 휴게소마다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이다. 노래가 섞이며 산이 들썩인다.
산을 삶속에서 위안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옳은 일이나 산 그 자체로의 순수한 자연 그대로를 받아들이려 하지않는 듯 보인다. 법주사 앞마당을 건너 상가촌으로 향하다 길가의 쓰레기를 양 손 가득 주워가는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띈다. 산이든 어디든 사람이 발을 붙이는 곳 어느 곳에서나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고 보듬으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가 보다. 삶의 다양성에서 비추어보면 이면적인 행동도 있는 법이니 무엇을 탓하고 무엇을 꾸짖을까. 그저 인생이란 여정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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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 안내
■ 등산로:화북탐방지원센터~오송폭포~문장대~냉천골휴게소~용바위골휴게소~세심정휴게소~법주사
■ 교통:경부고속도로 하행선~청원상주 고속도로 화서IC~화북면사무소~속리산 국립공원 화북분소
/송수복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