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내린 수도산 정상에 올라서면 막힐것없이 펼쳐진 설국의 향연에 빠져들게 된다.

■ 산행지 : 경북 김천 수도산(修道

山·1천317m)

■ 산행일시 : 2012년 12월15일(토)

■등산로

심방마을 ~흰덤이산~
양각산~시코봉~수도산~
청암사~주차장 (6시간30분)

청암사~수도암~수도산~
구곡령~수도리~
청암사 (6시간 30분)

수도암~수도산~
수도암 (1시간30분)

■교통

경부고속도로~김천TG~
대덕면 또는 증산면 방향~
평촌리~청암사

#화려한 불꽃 같은 가야산에 가려진 진산(眞山)

북쪽으론 덕유산이 남동쪽엔 가야산이 각각의 자태를 뽐내며 일찌감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을 때 그 가운데서 묵묵히 서 있는 산이 하나 있다. 매년 해인사에서 수학중인 학승들이 10시간이 넘는 포행(布行)으로 도착하는 곳이기도 한 수도산은 천년고찰 수도암과 청암사가 자리하고 있어서 산이 지니고 있는 매력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다.

원래의 이름은 불령산(佛靈山), 선령산(仙靈山)으로 불렸을 만큼 신령한 기운이 감도는 곳으로 신라말에서 조선시대에 걸쳐 정치, 문화 속에 자리한 '풍수지리도참설'(風水地理圖讖說)을 주장한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신라 헌안왕 3년(859)에 수도산자락에 청암사터를 정한 뒤 수도산을 오르던 중 지금의 수도암 터를 발견하고 기쁨에 겨워 춤을 췄다고 한다.

'풍수…' 주장한 신라 도선국사
수도할 수 있는 최적지 꼽아
매년 학승들 포행으로 찾아
산행으로만 다가가긴 아쉬워
장쾌한 길위 상념에 젖어보길


33살의 도선국사의 눈에 비친 수도산은 자신이 기거하며 수도할 수 있는 곳으로 최적의 장소였던 것이다.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해발 1천244m에 위치한 설악산 봉정암과 880m에 위치한 지리산 칠불암과 더불어 이름난 수행처가 되었으니 수도암을 창건한 뒤 "무수한 수행자가 여기서 나올 것"이라고 했던 예언이 적중한 셈이다. 산행으로만 접근하기엔 놓치고 가는 것이 많으므로 여유를 갖고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청암사가 산행기점

김천에서 대덕으로 가는 버스에서 내려 한참이나 걸어 들어왔던 기억속의 수도산, 인적조차 없던 산길을 한참이나 헤매다 도착한 수도암에서 저녁 공양으로 얻어온 누룽지를 뜯어가며 옥동천 계곡길을 따라 내려오던 기억이 새롭다.

수도산을 오르기 위해 다가간 청암사는 비구니의 승가대학이 있는 곳으로 독경 소리가 청아한 산림을 가득 메우고 있다. 출입금지로 되어있는 몇 곳을 빼곤 기꺼이 시간을 내어 경내를 돌아본 후 얼음으로 가득찬 청암교를 건너 수도암으로 향하는 산길로 접어든다. 가파르지 않은 호젓한 산길이다.

작은 개울을 몇 개 더 건너고 나면 지능선으로 이어지는데 계곡 방향의 일부구간은 상수도 보호를 위해 길이 막혀있다. 대략 50분 정도면 능선에 다다르는데 청암사 경계석이 서 있다. 오가는 이 없으니 쌓인 눈에 고스란히 발자국을 남기는 재미도 쏠쏠하여 힘든 표정 없이 올라온 길이다.

얕은 언덕과도 같은 수도암 위편 능선에 서서 주변을 조망하자 멀리 가야산이 한 눈에 들어오며 수도지맥의 너른 등뼈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능선 아래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수도암에 들러 경내를 돌아본다.

#눈귀 밝은 이들이 찾아드는 천년수행도량 수도암

수도암은 동학농민운동 당시 암자의 일부가 소실된 것을 광부 3년(1899)에 포응이 재건했다. 그 뒤 6·25전쟁 당시 빨치산 소탕작전으로 일부건물을 제외하고 소실되어 1960년대까지 대적광전, 약사전, 정각암, 요사채 등 4동의 건물에서 3~4명의 스님이 수행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1969년부터 15년여 동안 조계종 종정을 지낸 법전 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크게 중수하여 지금의 가람으로 변모하게 된 곳이다. 대적광전에 들어서자 보물 제307호인 청암사수도암석조비로자나불좌상(靑巖寺修道庵石造毘盧遮那佛坐像)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앞마당엔 보물 제297호인 청암사수도암 3층 석탑이 자리하고 있고 약사전엔 보물 제296호인 청암사수도암약광전석불좌상(靑巖寺修道庵藥光殿石佛坐像)이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필자의 눈길을 끄는 것은 눈 쌓인 마당을 쓸러 나온 수좌들의 모습이다. 낡고 헌 승복에 털신을 신은 모습이 시대와 동떨어진 세계를 보는 것 같다. 자신만의 세계를 탐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먼발치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능선으로 향한다. 수도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암릉에 서서 남동쪽에 우뚝 솟은 가야산의 화려한 불꽃의 향연을 감상한다.

수도산에서 단지봉(1천327m)을 지나 가야산(1천430m)에 이르는 수도지맥은 지리산 만큼은 아니어도 장쾌한 길임에는 분명하다. 평균고도 1천200m의 고원지대에 펼쳐진 빼곡한 수림과 초원이 바윗길과 조화롭게 이어진 능선길로 많은 이들이 종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곳이다. 식수문제에서 애를 먹고 지리파악의 불편함에도 찾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으리라.

수도산 정상에 서자 주위로 막힐 것 없이 펼쳐진 설국의 향연이다. 발아래 불령동천의 자태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한여름 원시림은 오간데 없이 펼쳐진 시원스런 풍경이 압권이다.


#상념에 싸인 하산길

하산을 준비하는데 청명하던 하늘로 구름이 드리우기에 서둘러 배낭과 카메라를 챙겨들자마자 그새를 못참고 함박눈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단지봉 방향으로 내려서는데 어느 단체에선가 펑퍼짐한 능선길에서 엉뚱한 방향으로 길을 낸 흔적이 보인다. 쌓인 눈 위로 새로운 발자국을 남기는 것은 뒷사람을 위해서도 신중해야할 일이다.

무릎을 넘는 눈을 헤쳐가며 단지봉방향으로 향하다 구곡령에 이르자 사거리가 나타난다. 단지봉을 넘어 단숨에 가야산으로 향하고픈 간절함을 배낭에 넣어두고 봄나물을 채취하기 위해 주민들이 오르내리던 길을 따라 수도리로 내려선다.

하산은 옥동천을 따라 내려갈 수도 있으나 다시 산길로 접어들어 청암사로 향한다. 포행을 나온 젊은 스님으로부터 "속박의 굴레에서 벗어나 영원한 자유의 길을 찾아 나선 것"이란 출가의 변(辯)을 들으며 함께 걷는데 차디찬 바람을 안고 쏟아지는 눈 만큼이나 무수한 상념(想念)에 휩싸인다.

텅비어 있는 주차장에 들어서서 합장으로 인연을 마무리하며 김천을 향해 나오는 길에 바라본 수도산은 어느새 맑게 갠 모습이다. 모두가 한순간이란 말을 떠올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