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막바지 장맛비가 내리던 지난 7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6시께 우리 단체의 J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주말을 이용해서 강원도 속초에 내려갔다가 갑작스런 가슴 통증으로 쓰러져 강릉의 한 병원 응급실에 있으며, 생사를 가늠키 어려운 정도의 위중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헬기를 통하든 또 다른 방법을 취하든 신속하게 서울의 큰 병원으로 이송해야 한다는 급박한 내용이었다. 연락을 받은 나는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모 기관으로부터 다행히 도와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강릉지역 기상악화로 헬기 이착륙 자체가 어렵다는 연락이 더해졌다. 어쩔 수 없이 하룻밤을 지낸 후 응급 이송차량으로 서울의 모대학 병원에 이송됐다.
그러나 결국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뇌사상태에서 마흔둘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아들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게 된 어머니는 그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결국 실신하여 가족의 등에 업혀서 응급실로 옮겨졌다. 아버지 또한 북받쳐오르는 감정을 억제하면서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고, 눈시울은 붉게 충혈되어 가슴으로 흐느끼는 듯 했다.
며느리와 어린 손자, 손녀들은 더 이상 볼 수 없는 아빠를 목이 쉬도록 크게 부르면서 울부짖는 모습에 뭐라 형언하기 힘든 가슴 저밈을 느꼈다.
산 사람은 먼저 세상을 하직한 이를 다음 생의 좋은 곳으로 모시는 왕생극락(往生極樂)의 예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J사장님은 장례 절차에 따라 빈소가 차려지면서 급작스럽게 부음을 받고 찾아온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위치가 됐다.
빈소를 지키는 그 모습에서 참으로 인생무상을 느끼게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꾸려 살아가고 있었는데 한순간에 이승과 저승으로 생을 달리하는 오늘의 이런 상황이 올 줄은 사람의 한계로서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J사장님 아들이 남다른 학구열로 주경야독해 그간 공부해 온 분야의 논문이 통과, 이달이면 본인은 물론 가족들 모두가 학수고대하던 박사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었다. 고생고생하여 공부한 결과물이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는 것에 참으로 영광의 순간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갖게 한다.
세상에 어느 자식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부모님께 효성이 지극한 아들이었고, 2세 경영인으로 회사 부사장직을 맡아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아들일진대 먼저 세상을 떠나보낸 심정은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될 수없을 것 같다.
불교의 금강경(金剛經)에서는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 응작여시관(應作如是觀)'이라 했다. "인연으로 지어진 일체 모든 것은 꿈이나 환상과 같으며, 물거품이나 그림자 같고 이슬방울이나 번갯불 같나니 응당 이같이 살펴야 하느니라'라는 뜻이다. 세상만물이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래도 조물주로부터 생명을 잉태받은 우리네 인간은 살아있는 날까지 각자에게 주어진 천륜의 도리를 다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