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정구역 명칭 변경으로 새지명 부여 신중 기해야
‘굴포천 복원’ 도심주거환경 회복 큰 역할 기대
도시들은 자꾸만 미로를 닮아 가고 있다. 구불구불한 길들은 없애거나 직선화하고, 다양한 모양과 표정의 가옥들을 허물고 비슷비슷한 주택으로 바뀌었다가 점점 기하학적인 공간으로 바꾸는 것이 최종 목표인 것처럼 말이다. 홀로 길찾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도시의 곳곳에 서있는 마천루가 위치를 대략 가늠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늘 볼 수 있는 것도 산정에서 내려다 볼 때 외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매트릭스같은 도시에서 믿을 것이라곤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의 지도 앱이다. 위치파악시스템(GPS)없이 생활할 수 없는 도시인들의 황량한 영혼, 손상된 정위(正位) 감각을 회복할 길은 없는 것일까.
정위감각이란 생명체들의 생명활동의 필수적인 능력이다. 식물의 뿌리는 아래로 향하고 가지는 태양을 향한다. 철새들은 수백, 수천 킬로의 하늘을 착오없이 오가면서 한해를 보낸다. 연어처럼 강에서 태어난 회귀어종들은 자신이 태어난 강으로 되돌아와 알을 낳고 일생을 마친다. 이런 신비한 능력을 정위 본능과 관련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사람들도 나침반이나 지도 없이도 감각을 통해 지각되는 환경 단서와 지리적·공간적 특징을 활용하여 적절하게 방향정위(orientation)를 하는 능력을 본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도시화 과정과 별도로 지명부여나 주소체계도 정위감각을 뒤흔든 원인이다. 대도시의 행정구역 명칭도 주요한 환경 단서와 지표 중의 하나이며 방위개념이 포함된 지명은 직관적인 방향 정보이다. 서울의 경우 도시 확장이 이루어졌지만 중구, 동대문구, 서대문구, 성북구 등의 행정구역 명칭은 이동자의 정위에 여전히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는 지명이라 할 수 있겠다. 정치적 중심을 정부청사가 있는 광화문 일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도시가 확장되거나 행정중심지가 이동할 경우 방위식 지명은 방향정보의 기능을 잃어버려 혼란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전통적으로 한국인들은 생활공간에 알맞은 이름을 부여하여 사용해왔다. 지명 속에는 해당 지역의 경관이나 자연적 특성이 나타나 있을 뿐 아니라, 거주민들의 생활상, 지역에 대한 생각이나 희망과 같은 사회적 특징도 담겨 있어서 지역의 역사나 문화적 변화상이 투영된 문화유산의 성격이 다분하기 때문에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잘못 명명된 땅이름, 특히 행정구역 명칭의 변경은 상당히 어렵기 때문에 새로운 지명을 부여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평소에 지역별로 지명조사를 실시하여 오류나 문제가 있는 명칭을 미리 확인하고 대안명칭 및 개선 기본 방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유서깊은 전통지명과 어감이 좋은 순우리말 고유지명을 선별하여 권장지명 목록을 작성해둔다면 지명 오류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도시별로 추진하고 있는 재생사업 과정 속에서, 버려두었던 언덕이나 개천의 기능을 복원시키고 잊혀진 땅이름들을 되찾고, 잘못된 지명을 바로잡는다면 시민들의 정위감각을 회복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점에서 본다면 최근 인천시 부평구가 굴포천 유역 일대를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 전략은 주목할 만하다. 이미 굴포천의 일부는 복원되어 시민휴식과 문화활동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만약 굴포천 유역 재생이 계획대로 추진되어 상류까지 복원된다면 부평구의 도심주거환경과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부평의 장소성을 회복하는 데에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창수 객원논설위원·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