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가뜩이나 심기가 불편한 한국인의 자존심을 제대로 저격했다. 지난 26일 이탈리아 명문 유벤투스와 K리그 올스타의 친선경기에서 호날두는 벤치만 지켰다. 한국 축구팬들은 팀 유벤투스보다 호날두의 경기장면을 보기 위해 6만5천여명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그러나 45분을 뛰기로 계약했다던 호날두는 전광판에만 등장했다. 그의 땀방울까지 놓치지 않겠다며 거액을 지불한 특별석 관중들은 호날두의 뒤통수만 감상했을 뿐이다.
이번 친선 경기는 호날두의 광팬뿐 아니라 축구에 관심있는 한국인 모두의 관심을 받았다. 또 극심한 경기침체에 일본과의 무역전쟁, 중·러 군용기의 영공침범, 북한의 신형 미사일 발사로 스트레스를 받던 한국 사람들이 모처럼 집중해 즐길 만한 스포츠 이벤트였다. 기대가 컸던 만큼 배신감도 진했다. 과거 메시의 방한 경기에 실망한 이후 호날두를 '우리 형'으로 호칭했던 한국 팬이다. 이제 호날두를 '날강두'로 비하하며 적개심을 보인다. 호날두는 또한 몇 시간 만에 한국 광팬을 공중분해 시켰으니, 지금쯤 후회할 지도 모르겠다.
유벤투스나 호날두가 간과한 점이 있다. 지금 한국은 매우 고단한 처지이고, 한국인은 매우 예민하다. 국제적인 팬클럽을 관리하는 명문 프로팀이라면 이 정도 사정은 감안할 수 있어야 했다. 호날두 또한 다르지 않다. 열악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유벤투스와 호날두가 한국팬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축구 팬은 물론 한국인들을 감동시켰을테고, 그들의 한국 시장은 넓어지고 단단해졌을 것이다. 지금이야 입장료 환불 요구에 그치지만, 호날두를 광고모델로 한 제품들로 불똥이 튈지 모를 일이다. 호날두는 공 대신 한국에서 날개를 달 수 있는 기회를 차버렸다.
'호날두 노쇼' 후유증은 호날두가 자초한 일이다. 다만 이번 일로 우리 사회의 분노지수가 임계점에 달한 건 아닌가 해서 걱정이다. 분노가 꽉 찬 사회는 출구와 대상을 찾는다. 분노는 맹목적이다. 출구가 열리면 걷잡을 수 없이 솟구치고 대상이 되면 변명할 새 없이 매장된다.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기획사나 프로축구연맹은 안보이고 호날두만 표적이 됐다. 전례없는 경제, 외교, 안보 위기가 심각하다. 분노는 배설일 뿐 대응이 아니다. 냉철한 국가 이성과 합리적인 국민 지성이 필요한 시간이다.
/윤인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