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예술가들의 골목수리팀
마을 가꾸는 공공예술 실험하다

구도심 골목 안 삶의 공간에서 예술가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텃밭·화단을 꾸미거나 평상을 만들어 준다면, 그것도 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갑자기 엉뚱해 보이는 질문을 하는 건, 실제로 실행에 나서 본 팀이 있기 때문입니다. 2024년 배다리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결성된 ‘골목출동수리팀 Up Road’입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인천 동구의 예술가들이 지난 봄부터 이번 달까지 배다리 마을 곳곳의 골목과 집에서 주민이 부르는 데로 ‘출동’해 말 그대로 ‘수리’를 해주는 프로젝트입니다.
지난 15일 오후 배다리 인천문화양조장 2층 발효실에서 열린 골목출동수리팀 결과 보고회에 다녀왔습니다. 이번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던 마을 사람들과 동구청 관계자들, 동구의회 장수진 의원,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를 이끈 예술가들이 모였습니다.
우선 골목출동수리팀 Up Road의 팀원을 소개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주최·주관한 스페이스 빔 민운기 대표가 예술감독(기획·총진행)을 맡았고요. 사진작가 김준성, 조각가 김회준, 목공작가 백현일과 이대원이 팀원으로 참여했습니다.
채현자 스페이스 빔 사무팀장이 총괄 지원을, 곽은비 아키비스트가 행정 지원을 도왔습니다. 이대원 작가의 ‘목공소꿉’, 백현일 작가의 ‘행복공작소’, 김회준 작가의 ‘스페이스 이공’, ‘가온화’, ‘웅아트스튜디오’가 협력 업체로 참여했고요.
배다리 골목출동수리팀은 사전 답사와 주민 요청 등을 바탕으로 쓰레기 청소와 정비, 텃밭상자 제작·설치, 빗물 저금통 제작·설치, 경사로 발판 제작·설치, 벤치와 평상 제작·설치, 화초 심기 등 다양한 ‘미션’을 수행했습니다. 4월(실제 작업 착수는 5월)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총 58건을 작업했습니다. 스페이스 빔이 공개한 작업 현장 위치도를 보면 알 수 있듯, 안 가본 골목이 거의 없군요.

출동! 배다리 예술가들
철로변 육교 밑, 쇠뿔센터 옆 담장, 한전시설 뒤 쪽, 모 빌라 담장 근처 등 사각지대에 수년 동안 쌓였던 쓰레기가 어마어마했다고 합니다. 오래된 골목 집들의 담장과 담장 사이 애매한 공간을 보면 쓰레기로 가득 찬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죠. 그런 공간으로 골목출동수리팀이 출동했습니다. 포클레인과 트럭을 동원해야 할 때도 있었다고 하네요.
아파트에선 볼 수 없는 풍경이나, 구도심 주택가에선 자투리 땅을 최대한 활용해 텃밭이나 화단을 가꾸곤 하죠. 골목출동수리팀은 수년 동안 방치돼 낡았거나 허물어진 화단, 텃밭 등도 새것처럼 고쳤는데요. 텃밭에 쓸 ‘빗물 저금통’을 제작해 설치해준 집도 있습니다. 목공, 조각 등의 작업을 하는 작가들의 손재주가 실용성에 디자인까지 더했네요.

Before : 골목출동수리팀이 배다리 마을의 한 주택 담장의 좁은 틈에 수년 동안 쌓인 쓰레기를 치워 수거하고 있다. /스페이스 빔 제공

After : 골목출동수리팀이 쓰레기를 치운 후 다시 쓰레기가 쌓이지 않도록 담장 사이에 문을 설치했다. /스페이스 빔 제공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이 다니는 집 앞이나 골목길에 경사로 발판을 제작해 설치하기도 했고, 특히 어르신들이 추락할 위험이 있는 골목의 높은 계단에 가드레일을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고마운 주민들은 작업 중인 팀원들에게 박카스나 믹스커피를 건네기도 했답니다.
프로젝트 예술감독인 민운기 대표는 “배다리에 터를 잡고 17년 동안 지내며 오가는 골목길에서 행정의 손길도 미처 닿지 못하는 취약한 부분을 눈여겨보곤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것을 풀어보는 방식으로 이번 프로젝트를 생각했고요. 마을에 필요한 것이 초점을 맞추고, 미적인 것을 가미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출동팀은 골목 곳곳을 누비면서 소유주가 불명확하거나 소수 인력으로 손대기 어려운 방치된 공가·폐가를 많이 발견하기도 했는데, 이런 곳들을 ‘수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고 합니다.
이것도 예술이 될까요?
좋습니다. 그런데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이 있네요. 이 프로젝트를 ‘공공예술’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사실 ‘예술’만큼 정의하기 어려운 영역도 없죠. 공공예술도 아주 여러 갈래의 담론이 있을 겁니다. 보통 구도심에서 공공예술이라 하면 대표적으로 골목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거나 마을에 멋들어진 조형물을 설치하는 것으로 알고 있죠. 때론 벽화 등 구도심 공공예술이 유명세를 타고 수많은 외지인이 몰려 마을을 점령하기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그 결과를 좋아하는지는 별개의 문제가 되곤 합니다.

Before : 배다리 마을의 한 빌라 옆 각종 폐기물이 지저분하고 위험하게 쌓여 있다. /스페이스 빔 제공

After : 골목출동수리팀이 빌라 옆 폐기물을 처리하고, 미관 개선 차원에서 마감했다. /스페이스 빔 제공
배다리 골목출동수리팀은 마을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팀에 참여한 작가들은 “공공예술이 아니라 공공근로 같았다”고 우스갯소리도 했습니다. 공공예술 맞나요? 민운기 대표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예술은 실용적인 것과는 거리가 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예술과 생활이 결합되는 추세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예술 활동을 하자는 게 스페이스 빔의 지향이기도 하고요. ‘예술 형식’을 띠더라도 전혀 공공적이지 않은 경우가 있죠. 사적 소유의 미술품 같은 것이요. 그런가 하면 기존 예술 형식과는 다르지만, 공공성을 확보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번 프로젝트도 하나하나 작업 결과물로만 판단하기 보다는 큰 틀에서 어떠한 효과를 드러내는지를 두고 볼 필요가 있어요. 그 자체가 공공 디자인적 요소와 결합하기도 했고요. 생활 환경이 개선됨으로써 유용성·안전성·쾌적성·친환경성이 증가하고, 그 결과 마을 살이에 대한 애착도와 만족도가 높아지고, 공동체성이 회복됩니다. 궁극적으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죠.
아파트 개발이 아니더라도 기존 마을의 정주 환경 개선으로 살기 좋고 매력 있는, 남들이 부러워 하는 마을 만들기를 하는 것이 곧 공공예술 아닐까요.”
과연 듣고 나니 그렇게도 생각됩니다. 저도 이번 프로젝트 결과 보고회에 참석하면서 ‘예술의 정의’나 ‘예술의 공공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여름 폭염 속에서도 꿋꿋하게 공공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