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암 박두성’, ‘이승훈 베드로’, ‘윤영하 소령’, ‘최기선’, ‘우현 고유섭’, ‘류현진’
여섯 인물의 공통점은 ‘인천’이다. 모두 인천에서 태어났거나 활동했다. 또 다른 공통점은 각자의 이름이 부여된 ‘명예도로’가 있다는 점이다.
‘명예도로’는 주소로 사용되는 법정도로명과 다르게 주소로 사용되지 않지만 지역사회 헌신도, 공익성 등을 고려해 법정도로명과 병기할 수 있는 도로를 말한다. 지자체가 명예도로를 부여하는데, 주로 해당 지역에서 태어난 인물이나 지역과 관련된 기관이나 단체 이름 등이 붙는다.
인천 내 명예도로는 모두 12개다. 인물뿐 아니라 ‘해양경찰’같은 기관도 포함돼 있다. 명예도로는 해당 지역이 가지고 있는 역사와 특징을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경인일보는 인천 지역 명예도로에 걸린 이름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자세히 살펴본다. 인천이라는 도시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점자 새긴 마음, 도로에 새겼다
훈맹정음 창안 ‘시각장애인 등불’
봉소리~상용리 2.1㎞에 부여
맹아협회 조직·회람지 발행
역사공원 등 곳곳에 발자취

첫 번째 주인공은 가장 최근 명예도로로 지정된 ‘송암박두성로’다.
인천 강화군은 지난 10월 7일 교동면 봉소리에서 상용리까지 해안도로 약 2.1㎞ 구간을 명예도로로 부여했다. 강화군 내 최초의 명예도로다.

강화군은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창안한 송암 박두성 선생(1888~1963)의 업적을 기려 명예도로로 지정했다.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으로 불리는 박두성 선생은 강화군 교동면 상용리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다. 교사였던 박두성 선생은 1913년 특수교육기관이었던 ‘제생원’의 맹아부(현 국립서울맹학교)로 발령을 받으며 시각장애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 시각장애인들은 일본식 점자로 글을 읽고 배워야만 했다. 제자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던 박두성 선생은 1920년 일제의 감시를 피해 한글 점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오랜 연구 끝에 1926년 11월 4일에 우리나라 최초 6점식 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이 반포됐다. 이 날은 ‘한글 점자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점자법 개정으로 법정 기념일로 지정됐고, 올해 인천에서는 연수구 국립문자박물관과 미추홀구 송암점자도서관에서 각각 기념 행사가 열렸다.


박두성 선생은 한글 체계를 그대로 따와 점자를 만들었다. 6개 점을 조합해 초성 자음 13자, 받침 자음 14자, 모음 21자 등으로 구성했다. 점자 읽기와 쓰기 속도를 높이고 문장의 길이를 줄이기 위해 자주 사용하는 약자와 약어도 별도로 표기하기로 정했다.

훈맹정음은 지난 2020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인천 미추홀구 송암점자도서관 내 박두성 기념관에는 훈맹정음을 만들 당시 사용했던 한글 점자 타자기, 한글점자 설명서 등 관련 유물이 전시돼 있다.
1936년 인천영화학교 교장으로 부임한 박두성 선생은 1963년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인천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한 일생을 보냈다. 1940년엔 조선맹아사업협회를 조직하고, 시각장애인 회람지 ‘촉불’(1945)을 발행했다.

인천 곳곳에는 그의 발자취가 남아있다.
강화군은 그의 업적을 기려 그의 생가가 있던 복원해 역사공원으로 조성했고, 이 역사공원은 내년 문을 연다. 송암박두성로를 따라 가다보면 역사공원(교동면 상용리 513)도 방문할 수 있다.
박두성 선생이 훈맹정음 반포 후 인천으로 돌아와 터를 잡은 인천 중구 율목동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인천 남동구 수산동에는 박두성 선생의 묘가 자리해 있다.
/백효은기자 100@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