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협치꾼들… 해묵은 과제 해결할 수 있다면 적극 관여”
‘나’ 내세우기 보단 뒤에서 ‘시민 가교역할’ 충실한 살림꾼

1992년 10월10일 창립한 인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인천경실련)은 민주화 이후 움튼 인천의 시민운동 맏형이다. 2년 후인 1994년 10월 인천경실련 간사로 출발한 김송원 인천경실련 사무처장이 시민운동가로 활동한 지 올해로 꼭 30년이다.
중앙경실련은 지난달 4일 서강대 곤자가컨벤션에서 개최한 창립 35주년 기념식에서 김송원 사무처장 등 3명에게 ‘30년 시민운동가상’을 수여했다. 우리나라 1호 시민운동 단체인 경실련에서 30년을 버티며 활동한 이는 김송원 사무처장과 조광현 대구경실련 사무처장, 이광진 대전경실련 사무처장뿐이다. 이들을 시민운동가 맏형으로 부를 만하다.
# 최근 집중하는 이슈·현안
20년째 선거 공약 ‘수도권매립지 종료’
중앙당 눈치만 봐… ‘지역 정치力’ 강화
# 스스로에게 칭찬 한마디
‘정부 보조금 0%’ 원칙 지켜 자랑스러워
관리직 조직위원장 업무에 떳떳한 마음
정작 인천에서 김 처장은 시민운동가 맏형으로 불리진 않는다. 인천경실련 창립 주역은 청년 김송원에게 시민운동이 무엇인지 가르친 쟁쟁한 선배 운동가와 명망가들이다. 그러나 ‘인천경실련’ 명패를 건 사무실을 30년 동안 지킨 시민운동가는 김송원이 유일하며, 그래서 그는 맏형보다 ‘살림꾼’으로 부르는 게 맞겠다.
지난달 27일 인천 남동구 인천경실련 사무실에서 진행한 이번 인터뷰에서 김송원의 ‘시민운동가 30년’을 조명하고자 했으나, 그와 이야기를 나눌수록 ‘김송원이 몸담은 인천경실련 30년’으로 대화의 초점이 모였다. 항상 전면에 나서지 않으면서도, 전문가 집단 중심으로 꾸려진 인천경실련과 시민을 잇는 가교(架橋)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는 그의 원칙 때문인지 인터뷰 내내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 또한 김송원이란 시민운동가를 설명하는 단면 중 하나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의 30년을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 시민운동에 언제 몸담게 됐나요.
“인하대학교 물리학과 87학번으로 입학했습니다. 어릴 적 꿈이 물리학자였거든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인천YMCA 대학부 서클활동을 했는데, 거기서 활동하면서 당시 사회에 대한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결정적으로 교회에서 1980년 5월 광주 학살 비디오 속 끔찍한 국가의 폭력을 보고 받은 충격에 학생운동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대학 학생회가 아닌 소위 ‘비합조직’(비합법조직)에서 활동했고, 대학 2학년 때 학교를 나와 노동운동 등에 참여하다가 1994년 후배가 인천경실련을 소개해주면서 활동가가 됐습니다.”
■ 당시 인천경실련은 어떤 단체였나요.
“1989년 ‘시민운동’이란 단어와 개념을 도입하고 출발한 게 경실련입니다. 1990~1992년 지역경실련이 하나둘씩 태동했고, 인천경실련도 1992년 인천에서 가장 먼저 출발한 시민운동단체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인천에서 재야 인사들의 모임인 ‘목요회’나 ‘인천환경운동연합’의 전신 격인 단체가 활동하긴 했지만, 스스로 시민운동이라 표현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던 분들은 경실련을 개량주의 운동이라고도 얘기했습니다. 시민운동이 시민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기존 단체들도 시민운동을 인정하고 ‘시민단체’라 표현하는 시기가 오게 됩니다.

■ 인천경실련은 어떤 활동을 했나요.
“인천경실련 집행위원장을 지낸 박영복 전 인천시 정무부시장이 인천경실련 창립 주역입니다. 오경환 당시 천주교 인천교구 총대리 신부와 남세종 인하대 교수가 공동대표를 맡고 있었고요. 인천경실련은 1992년부터 인천대학교 시립화 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가장 큰 이슈는 1994~1995년 굴업도 핵폐기장 철회 운동이었죠. 환경운동연합, 목요회, 인천경실련이 주축이 돼 지역의 각계각층과 주민들이 다 모여 한목소리를 낸 운동이었습니다. 인천에선 과학적 분석과 대안을 갖고 합리적으로 시민운동을 이끈 첫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 핵폐기장 철회 운동을 주도했나요.
“아닙니다. 굴업도 핵폐기장 철회 운동은 인천경실련 창립 주역이자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님들이 주도했습니다. 저는 단상 아래서 실무를 맡으며 시민운동이 무엇인지 배운 시기였습니다. 오경환, 남세종, 박영복 세 명의 선배에게 배웠습니다. 먼저 오경환 신부님은 별명이 ‘오투명’일 정도로 원칙적이고 투명한 분이십니다. 남세종 교수님에게는 ‘인천’을 배웠습니다. 인천은 항만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죠. 박영복 선배님은 성명서 쓰는 법부터 시작해 ‘시민운동’을 어떻게 전개하는지를 가르쳐 준 분입니다. 지난 30년을 돌아볼 때 가장 감사한 분들입니다.”

■ 이름을 내건 활동은 언제부터 인가요.
“2000년대 ‘인천항살리기시민연대’를 발족하고 항만 살리기 운동을 본격화할 때부터 입니다. 인천 신항 조성(2015년), 한국·중국 간 정기 컨테이너 항로 개설(2003년), 인천항만공사 설립(2005년)이 가장 큰 이슈였습니다. 범시민운동으로 중앙 정부에 세 가지 요구를 했고, 모두 성과를 냈습니다.인천항만공사에는 인천시장 추천 몫의 사외이사 격인 항만위원이 있었는데, 이것만으로 지역 차원에서 항만 업무에 관여하기엔 한계가 크다고 느꼈습니다.”
■ 지방 분권 운동을 시작한 계기인가요.
“맞습니다. 인천경실련은 항만 관리·운영권을 지방정부로 이양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잠시 인천을 떠났던 해경의 ‘인천 존치·환원’ 운동도 같은 맥락입니다. 또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개최 과정에서 인천시 재정 위기 논란이 있었죠. 지방정부가 온전하게 재정을 운용하기 위해선 재정 분권도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계기입니다. 최근에는 지역 정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취지로 지역 정당 설립 완화 등 제도 개선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 최근 집중하는 이슈는 무엇인가요.
“인천 발전의 발목을 잡아 온 해묵은 현안이죠. 특히 수도권쓰레기매립지 사용 종료 문제는 20년째 선거 공약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돼야 정치권이 더 좋은 공약으로 경쟁할 것 아닙니까. 해묵은 현안을 이참에 정리해야 정치권이 새로운 인천 발전을 위한 공약으로 경쟁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역 정치 강화도 과제입니다. 양당 체제에서는 지역 정치인들이 중앙당 눈치를 보느라 찍소리도 못합니다.”
■ 시정혁신단장 활동에 비판적 시각도 있네요.
“제가 인천시 시정혁신단의 단장을 맡은 것을 두고 ‘시정의 파트너인가, 감시자인가’라고 묻는 경인일보 칼럼(8월 14일자 19면 보도)이 있었고, 다른 시민단체의 비판 성명도 있었죠. 거버넌스를 한자로 얘기하면 ‘협치’입니다. 시민운동에서 굉장히 중요한 가치입니다. 시민운동은 필요에 따라서 행정하고 거버넌스를 해야 하고, 때로는 여당과 연대하고 때론 야당과도 협상해야 합니다. 전문가 집단을 보유한 인천경실련은 과거부터 지방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관여했어요.
시민운동의 한 방식이라고 본 것입니다. 시정혁신단도 자문위원회입니다. 급여를 받는 정무직이 아니죠. KBS 인천총국 설립, 인천 공공의대 설립, 인천국제공항공사 경영에 인천시가 참여하는 문제 등 제가 시정혁신단에서 제기하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거꾸로 이런 거버넌스를 최대한 활용해 ‘해묵은 현안’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 30년 외길, 스스로에게 칭찬 해준다면.
“시민단체는 정치적으로 중립지대에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해 경실련은 ‘정부 보조금 0%’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특히 ‘정부 보조금 0%’ 원칙을 지킨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30년 동안 그걸 지켜 낸 제 자신에게 자랑스럽다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제가 2022년부터 중앙 경실련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습니다. 전국 24개 지역 경실련이 활발하게 운영되도록 지원하고 관리하는 역할입니다. 지역 경실련이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있는지,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고 운영하고 있는지 등이 기본적인 관리 대상입니다. 저부터 떳떳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역할입니다.”
■김송원 사무처장은?
▲1967년 서울 출생
▲1981년 인천신흥초 졸업
▲1984년 대헌중(현 재능중) 졸업
▲1987년 인하대 사대부고 졸업
▲1987년 인하대 물리학과 입학
▲1994년 인천경실련 입사
▲2011년 인하대 명예졸업
▲2016년 경실련 지역협의회 운영위원장
▲2022년 중앙 경실련 조직위원장

/박경호기자 pkhh@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