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참여 '코뿔소' 첫 공연
"불안 잊고 새삶사는 나를 발견"
말리던 가족 긍정적 변화에 흐뭇
평범한 주부였던 박완숙(54) 씨의 삶은 2011년 8월 이후 완전히 바뀌었다. 유난히 무더웠던 그해 여름, 박 씨는 유방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의사가 말한 생존율은 한자릿수. 머릿속은 백지처럼 하얘졌고 눈 앞에는 딸과 남편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죽음이란 공포가 엄습했다. 처음에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다음에는 '왜 하필 나인가' 하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순간,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의사도, 최첨단 암 치료제도 아닌 바로 그와 같은 고통을 받고 있는 암 환자들이었다.
가천대 길병원 인천지역 암센터에서 매일 같이 항암 치료를 받던 박 씨는 그 곳에서 같은 고통을 안고 사는 또래 환자들을 만나게 됐다.
1주일에 3~4차례 가는 병원에서 사귀게 된 친구들은 그에게 힘이 됐고, 그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20여 명의 암 환자 친구들과 병원 친목 모임인 '플러스'를 만들게 됐고, 플러스 회원 7명이 지난 27일 인천 남동문화예술회관에서 작은 연극 공연을 펼쳤다.
서울 성북예술창작센터는 암 환자들을 위한 '예술 치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길병원 인천지역 암센터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플러스 회원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연극을 펼치게 된 것이다.
박 씨처럼 유방암을 비롯해 위암, 혈액암 등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루마니아 출신 작가 외젠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 )가 쓴 '코뿔소'란 연극을 자신들의 삶에 맞게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이 연극은 평화로운 한 마을의 주민들이 갑자기 코뿔소로 변해가고, 주인공인 베랑제는 "모든 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해간다 해도 나만큼은 인간으로 남겠다"며 삶에 대한 의지와 애착을 나타낸다는 내용이다.
연출은 성북예술창작센터에서 일하는 전문 연극인들이 맡았다. 암 환자들은 한 달 남짓 되는 연극 준비 과정에서, 죽음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잊고, 연극 무대에서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사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은다.
박 씨와 같이 유방암을 앓고 있는 최근열(54) 씨는 "암은 완치가 없고, 평생 내가 안고 살아야 할 병인데 즐거운 마음으로 극복하고 싶다"며 "부담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연극을 준비 했고, 연극을 하는 순간만큼은 정말 행복했다"고 말했다.
이날 관객석에는 암 환자들의 가족도 많이 눈에 띄었다. 주인공 역을 맡은 조영숙 씨의 아들 임환수(34) 씨는 "아픈 엄마가 처음 연극을 한다고 했을 때 놀랐다"며 "연극을 준비하면서 긍정적으로 변해가는 엄마의 모습이 참 좋았다"고 했다.
길병원 인천지역 암센터 등 전국 암 진료 기관에서는 물리적인 수술이나 항암 치료 외에 이런 연극이나 노래 같은 예술 활동을 통해 환자들을 치유하는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박연호 가천대 길병원 인천지역 암센터 소장은 "암 진단은 모두 죽음으로 이어진다는 편견을 깨야 한다"며 "요즘에는 암 치료나 회복 과정에서 환자가 희망을 잃지 않고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한 예술치유 같은 여러 프로그램들을 병원에서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명호·홍현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