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얼 서린 항일유적, 도내 곳곳 산재

38도선은 대표적인 6·25 전쟁 분단 문화유산

일제 수탈 도구 터널·철도, 식민지 아픔 상기

 

고색창연한 문화유산이라고 하기엔 멋쩍지만

50·100년 지난 뒤 후손들은 과거 그려볼 수 있어

별것 아닌듯 보이는 근현대 문화유산 재조명 이유

근현대사로 한정하면 경기도 문화유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이어진 분단 상황이다.

일제 강점기 지어진 교회 건물, 교회 터가 아직 경기도에 남아 있고 독립운동가들의 얼이 서린 항일유적도 도내 곳곳에 산재해 있다.

연천군 청산면 초성리 38도선 표석. 2024.11.18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연천군 청산면 초성리 38도선 표석. 2024.11.18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전쟁으로 촉발된 분단 상황은 특히 경기도에 큰 상흔을 남겼다.

피부에 주욱 그어진 칼날의 상처처럼 여전히 남아 있는 38도선이 바로 대표적인 전쟁 분단 문화유산이다.

지난 4월부터 이달까지 경기도 곳곳에 남겨진 근현대 문화유산의 현장을 찾았다. 경기도에서 강원도까지 연결된 대전차방호벽을 시작으로 일제 강점기 지어진 ‘고양 쌍굴’, 옛 경기도청의 방공호와 임진각 방공호, 선말산과 부용산 방공호, 경원선의 흔적, 연천 폐터널을 전반기 동안 둘러봤다.

고양 쌍굴의 상굴은 현재 자동차가 통행하는 1차로 터널로 활용된다. /신지영 기자 sjy@kyeongin.com
고양 쌍굴의 상굴은 현재 자동차가 통행하는 1차로 터널로 활용된다. /신지영 기자 sjy@kyeongin.com

일제 수탈의 도구로 기능한 터널(쌍굴)과 철도를 바라보며 조국의 근대화에 짙게 드리운 식민지의 현실을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옛 경기도청, 임진각, 평택 선말산·부용산 방공호는 공공기관과 마을 근처까지 접근한 전쟁의 공포를 환기시켰다. 생존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공호는 그 군사적 목적을 상실한 뒤 전쟁의 위협을 증언해주는 문화유산이 됐다.

광복절을 즈음해 기획기사의 중간 지점을 돌며 경기도의 항일 유적을 찾았다. 독립운동가의 집터와 묘소는 치열한 삶의 처음과 끝을 차분히 돌아볼 수 있는 문화유적이었다.

독립운동가 심상각 선생의 파주 생가에는 안내판이 남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고, 도시개발로 사라진 수원의 독립운동가 김세환 선생 집터에도 역시 안내판이 남아 있다. 2016년 경기도가 항일유적 실태조사를 벌여 생가 위치를 확인하고 도내 17곳의 집터에 안내판을 설치했다.

생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잡은 심 선생의 묘소와 독립운동가이자 지식인 장준하 선생의 묘소가 마련된 장준하공원에서 다시 한 번 국가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다.

일제가 건설한 안양 박달교의 남측 난간/신지영 기자sjy@kyeongin.com
일제가 건설한 안양 박달교의 남측 난간/신지영 기자sjy@kyeongin.com

하반기 들어 안양 박달교, 교외선 일영역·대정역을 살펴봤다. 박달교는 일제가 안양과 안산을 잇는 도로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현재까지 일제 조선군 경리부가 그린 도로 건설 설계도와 박달교 설계도가 존재한다.

박달교는 단지 일제 강점기 만들어진 오래된 교각이어서 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다. 이 교각을 확장한 건 한국이 아니라 일제 철수 이후 병참기지였던 박달교 기지에 들어선 미군이었다. 일제는 박달교를 목조로 축조했고 미군은 중화기가 다닐 수 있는 콘크리트 교각으로 증설했다. 군부대 지척에 위치한 박달교를 현재는 한국군이 사용한다.

일본-미국-한국으로 사용 주체가 바뀌며 목조에서 콘크리트로 재료도 변화한 박달교는 근 100여년 한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교외선은 경기도민에게 MT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실은 일제 강점기에 추진된 노선이다. 경의선으로 수송되는 물자를 서울 시내로 곧장 들이지 않고 서울 동북부로 우회 운송하기 위한 교외선이 산업화 시기 서울 소재 학교에 다니는 대학생의 소풍 목적으로 교외로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교외선 일영역 모습. 교외선은 단선 철도로 운영됐다. 2004년 여객 운송이 중단됐고 2014년 폐선된 뒤 올해 연말 재개통을 앞뒀다. /신지영 기자 sjy@kyeongin.com
교외선 일영역 모습. 교외선은 단선 철도로 운영됐다. 2004년 여객 운송이 중단됐고 2014년 폐선된 뒤 올해 연말 재개통을 앞뒀다. /신지영 기자 sjy@kyeongin.com

경기도는 교외선을 재개통한다. 서울로 이동하는 도로와 철도 여럿이 개설됐으나 경기 북부 도시들 사이를 왕복하는 도로와 철도는 빈약한 탓에 경기 북부 도시를 오가는 교외선 재개통의 요구가 거셌다. 물자 수송 목적의 교외선은 여가 활용으로 한 차례 주 이용 목적이 바뀌었고 이제는 경기 북부 도시의 소통을 위한 수단으로 변모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화유산의 가치와 성격도 변한다.

가평 청평댐, 안양 양명고교의 기독보육원도 일제 강점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다. 오랫동안 유지되고 있는 청평댐은 규모와 튼튼함에 놀라고 이것이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댐이라는 데서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 문화유산이다. 대규모 토목공사에 많은 조선인이 희생됐다는 사실이 명징하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시기 고아를 돌보았던 안양 기독보육원 건물을 통해선 당시의 건축양식과 역사적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해방 이후 북위 38도선엔 분단선이 그어졌다. ‘38도선’이다. 38도선은 강원도 양양, 인제, 화천, 춘천을 지나고 경기도에서는 가평, 포천, 연천, 파주를 지나는데 38도선에는 표석이 남아 있다.

38도선 표석은 포천이 5개로 가장 많다. 과거엔 북과 남을 가르는 경계였지만 휴전선이 확정된 이후엔 경기도민이 사는 삶의 공간이 됐다. 우리 지자체에 과거의 국경선이 남아 있다는 것은 생경한 일이다. 38도선 주변으로 도로가 나며 휴게소가 생기기도 했고 공원이 조성되기도 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이제 관광차원에서 국경선을 쳐다보고 옛 시대를 그려본다.

포천시 영중면에 위치한 38도선 표석. 2024.12.2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포천시 영중면에 위치한 38도선 표석. 2024.12.2 /이영선기자 zero@kyeongin.com

이처럼 경기도엔 전쟁과 분단 관련한 문화유산, 그리고 그 이전 시대를 살았던 조선인의 흔적이 담긴 항일 유적들이 많다. 이들 문화유산 모두가 등록문화재인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주변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유산이 지닌 가치가 잊힌 채 명맥만 유지되고 있었다.

과거는 현재의 나를 있게 하는 토대가 된다. 조선시대가 발에서부터 두번째로 먼 발판 정도된다면, 근현대사 그러니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은 우리 발밑에 직접 닿은 발판이다. 그래서 경기도 근현대문화유산은 고색창연한 문화유산이라고 하기엔 멋쩍다. 하지만 50년 후, 100년 후 이 땅에 살아갈 후손들은 바로 이 유산을 통해 저 먼 시절을 그려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는 근현대 문화유산을 돌아보고 가치를 재조명하는 일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다.

/신지영·이영지·이영선기자 sjy@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