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분단의 기억

  • 6·25 이후 현대사 족적… 동두천과 광명의 근대문화유산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20)]

    6·25 이후 현대사 족적… 동두천과 광명의 근대문화유산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20)] 지면기사

    주한미군 영향에 형성된 ‘문화유산 보고’ 경기도 파주, 임진각·캠프 그리브스 등 군사·위락시설 존재 동두천, 안흥교회·미군 7사단 기념관 사례 의미 깊어 가학광산서 관광지된 ‘광명동굴’… 美 아닌 일제 관련 화성 매향리 쿠니사격장·매향교회 미군 대표적 흔적 한국전쟁 이후 형성된 경기도 문화유산은 대부분 주한미군의 영향을 받았다. 미군이 머문 자리, 미군의 생활상이 담긴 거리, 미군과 관련한 상업활동 등으로 수십 년 동안 만들어진 흔적이 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자연스럽게 경기 북부에 미군관련 문화유산이 다수 잔존한다.

  • 잊힌 문화유산 ‘열쇠’ 찾기… 잠겼던 역사의 문이 열리다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21·끝)]

    잊힌 문화유산 ‘열쇠’ 찾기… 잠겼던 역사의 문이 열리다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21·끝)] 지면기사

    독립운동가 얼 서린 항일유적, 도내 곳곳 산재 38도선은 대표적인 6·25 전쟁 분단 문화유산 일제 수탈 도구 터널·철도, 식민지 아픔 상기 고색창연한 문화유산이라고 하기엔 멋쩍지만 50·100년 지난 뒤 후손들은 과거 그려볼 수 있어 별것 아닌듯 보이는 근현대 문화유산 재조명 이유 근현대사로 한정하면 경기도 문화유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는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이어진 분단 상황이다. 일제 강점기 지어진 교회 건물, 교회 터가 아직 경기도에 남아 있고 독립운동가들의 얼이 서린 항일유적도 도내 곳곳에 산재해 있다.

  • ‘큰별쌤’ 최태성 강사가 전해준 수원 3·1운동 의미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9)]

    ‘큰별쌤’ 최태성 강사가 전해준 수원 3·1운동 의미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9)] 지면기사

    “역사속 고독했던 패배자… 독립운동 숨은 영웅들 잊지 말자” 당시 조선서 손꼽히던 부자 남양주 이석영 독립운동에 3조 자산 소진 영양실조 숨져 안성·화성, 3·1운동 다른 지역보다 격렬 제암리 학살 비극… 스코필드 널리 알려 양평 출신 여운형, 총독부와 건준 협상 “조선 최고의 부호였지만 독립운동을 위해 재산을 모두 팔고 결국 아사한 이석영 선생을 아십니까?”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은 남양주 대부분의 땅을 소유하고 있었을 만큼 조선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다. 남양주에서 시작해서 서울 동대문에 들어와야 이석영 선생의 땅이 끝난다고

  •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8)] 광복 - 한반도 가로지르는 포천·연천 38도선 표석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8)] 광복 - 한반도 가로지르는 포천·연천 38도선 표석 지면기사

    분단의 상처, 관광자원으로… ‘핫플 38도선’ 반전 스토리 포천 영중면 표석 뒤에 대공포 두 대 놓여 평화의 상징 비둘기·철모와 총 ‘38 조형물’ 헌화공간·산책로·휴게·레저 특화시설 추진 연천 마포리 ‘중부원점’ 빛의 기둥 힘찬 표현 합수머리 공원 인근에 한반도 통일미래센터 풋살대회 등 각종 청소년 위한 프로그램도 “해방이후 북위 38도선에 한반도 최초의 분단선이 그어졌다.” 38도선은 한반도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북위 38도 위선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미국과 소련이 군사적 무력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치

  • 우리 근현대사 관통한 장벽없는 국경선 38도선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7)]

    우리 근현대사 관통한 장벽없는 국경선 38도선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7)] 지면기사

    호국 영웅들이 지킨 대한민국, 분단 아픔을 증언하다 현재 경기도 내부 존재 ‘상징적 유적’ 연천 초성리 ‘부서진 비석’ 모습 보존 인근 6·25전쟁 기념비 모여 공원형성 1977년 주한미군 철수 반대하다 전역한 싱글러브 장군 공적비도 설치돼 눈길 전쟁 그리고 분단.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두 가지 키워드를 설명하는 상징적인 유적이 경기도에 있다. 경기 북부 접경지역을 가로지르는 38도선이다. 지도 위 북위를 기준으로 남북을 가른 38도선은 북방 경계가 상승하며 경기도 안에 들어왔다. 38도선은 장벽이 없는 국경선이다. 넘어오지

  • 시민곁 70년, 의정부 미군기지… 함께 살아갈 '한 길' 열리다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6)]

    시민곁 70년, 의정부 미군기지… 함께 살아갈 '한 길' 열리다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6)] 지면기사

    '캠프레드클라우드' 관통 도로 개방 1953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전쟁·냉전 유산 전형적인 경기도 소재 '전쟁 문화 유산' 모습초기 건축물·용도 시설물 현재까지 다수 남아의정부 도시경관 한축… 유기적 기능도 의미근현대사적 중요성·활용도 고려 보존 방침60여개 건물 역사적 가치로 존치 의견 전달 지난해 7월 1일은 의정부 시민에게 뜻깊은 날이었다. 70년 동안 닫혔던 도심 속 미군기지 캠프레드클라우드(CRC)의 문이 열렸다. 경민대학교 방면에서 의정부 종합운동장까지 먼 길을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운전자들은 캠프클라우드를 관통하는 2차선 도로로 고작 2분이면 반대편에 닿을 수 있다. 이 도로가 개방되기까지 70년이 걸렸다.캠프레드클라우드는 경기도 전쟁 문화 유산의 가치와 보존, 그리고 문화 유산 전승을 위한 지역의 역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도시 한가운데를 꿰찬 과거 유산이 현재를 사는 시민들에겐 무슨 의미일까란 물음에서 시작한다.의정부시 가능동, 녹양동 일대 83만6천㎢가 미군에 공여된 건 1953년 7월 3일의 일이다. 한국전쟁 중이던 당시 연합야전군사령부(CFA)가 이곳에 주둔했다. 이후 1953년부터 1972년까지는 미군 제1군단이 주둔했는데 1957년 5월 미 의회 대훈장을 받은 레드 클라우드 상병의 이름을 기려 캠프레드클라우드라는 명칭을 받았다.미 24사단 19연대 E중대 소속 레드 클라우드 상병은 한국전쟁에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캠프레드클라우드는 1971년 변화를 맞는다. '미국은 앞으로 베트남전쟁과 같은 군사적 개입은 피한다', '미국은 아시아 제국과의 조약상 약속은 지키지만, 강대국의 핵에 의한 위협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란이나 침략에 대해 아시아 각국이 스스로 협력하여 대처해야 할 것이다'란 내용을 담은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의 영향이었다.미국의 막대한 군사적 비용 지출과 베트남전으로 인한 반전 여론으로 내려진 닉슨 독트린이 캠프레드클라우드에서 미군 제1군단과 제7사단 철수로 이어졌다. 캠프레드클라우드의 탄생과 변화 모두 한국전쟁과

  • 과거와 현재 100년… 역사 잇는 공간 '안양기독보육원'[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5)]

    과거와 현재 100년… 역사 잇는 공간 '안양기독보육원'[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5)] 지면기사

    '타자 할아버지' 오긍선 박사의 '좋은집' 정신 이어받다 유년시절 보낸 이영운씨, 학교 다닌 덕에 무사히 사회 정착아이들 영농기술 가르치려 힘써 '우장춘 박사' 초빙하기도재원 마련 위해 손수 편지 써… 항상 타이프 치던 모습 기억3천명 거쳐간 곳인데 정신 깃든 공간은 낡아 용도 잃기 직전 "안양기독보육원에서 다같이 공부도 하고 기술도 배우고… 사회 나가서도 살 수 있게끔 해주는 곳이었지."6살무렵 안양기독보육원에 들어가 유년시절을 보낸 이영운(74)씨에게 보육원의 의미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중학생과 고등학생이었던 당시 보육원에서 같이 지내던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줬던 기억을 늘어놨다."나는 학교 다닐 때 줄곧 모범생이어서 더 어린 초등학생들을 앉혀놓고 공부를 가르쳐줬는데, 내가 가르쳐주니까 점수가 안나오던 애들이 시험에서 100점도 맞아오고 그래서 뿌듯했던 기억이 나. 그렇게 큰 방에서 책상 놓고 다같이 공부도 하고, 밥 시간 되면 식탁에 둘러앉아 밥도 먹고 그랬지. 당연히 춥고 배고픈 기억도 나지만 단체생활은 어딜가나 춥고 배고프고 졸린 건 똑같지 않겠어?"이영운씨는 보육원에서 공부도 하고, 기술도 배운 덕분에 성인이 되고 군대에 다녀와서 무사히 사회에 정착할 수 있었다고 했다.그는 보육원에서 받은 도움을 후배들에게 돌려주고자 기우회를 꾸려 아동복지시설 좋은집에 학용품이나 간식 등을 베풀고 있다고 한다. 좋은집은 안양기독보육원의 정신을 이어받아 해당 부지에서 운영 중인 아동복지시설이다.그가 기억하는 오긍선 박사는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꼭 영농기술만큼은 가르쳐주려 노력했었다고 한다. 특히 당시 우장춘 박사까지 보육원으로 초빙해 아이들이 신기해했던 기억도 있다고 말했다. 단순히 보육원에서 아이들에게 숙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닌, 언젠가 보육원을 나가서 혼자서도 충분히 살아나갈 수 있는 삶의 기반을 꾸려주고 싶었던 오긍선 박사의 정신이 돋보이는 구절이다.■ '보육원 타자 치는 할아버지' 오긍선 박사오긍선 박사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6·25 전쟁 당시 피난

  • 안양 양명고교 현대식 건물 사이 한 석축건물의 정체는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4)]

    안양 양명고교 현대식 건물 사이 한 석축건물의 정체는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4)] 지면기사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4)] 광복 - 안양 양명고교 현대식 건물 사이 '안양기독보육원' 일제강점기·한국전쟁 기간 고아 보살펴과거 교직원 사택 용도 사용… 현재 방치폭격 폐허 복구 미군 관계자 참여 가능성오긍선 박사 설립 역사적 가치 충분하지만학생들 의미 알지 못해 문화재 지위 위협안양시 양명고등학교 건물들 옆 한 귀퉁이에 낯선 석축 건물이 덩그러니 놓여져 있다. 비닐로 감싸진 지붕에 크기와 모양이 제각기인 돌이 박혀있는 벽면, 벽면 사이 솟아있는 굴뚝까지. 요즘엔 흔히 찾아보기 어려운 형식의 건물이다.이 건물은 1953년께 지어진 '안양기독보육원 의무실'이다. 지난 4일 찾은 안양 양명고등학교에서 이 건물을 찾아내긴 어렵지 않았다. 테니스장과 음악실을 지나치자 나온 부지에 누가 봐도 역사성을 지닌 건물이라고 추정할 만큼 뜬금없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식 건물들 옆으로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의무실 건물만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의무실 건물은 지난해까지는 학교 직원의 사택으로 쓰이다가 현재는 용도를 잃어버린 상태다. 건물 외관을 자세히 살펴보니 세월의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지붕을 받쳐주는 목자재 곳곳에 빈틈이 보였다. 이곳의 역사적 가치를 알려주는 유일한 흔적은 건물 입구 쪽 창문 밑에 박혀있는 정초석이다.정초석 또한 세월을 맞아 대부분의 글자가 지워진 상태다. 정초석에 있는 희미한 글자는 'IN HONOR OF MAJ HUGH T. TORRANCE OWO GUY T. HAWHEE'인 것으로 추정('MAJ'와 'OWO'는 명확하지 않은 글자)된다. 인물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안양기독보육원의 설립자인 오긍선 박사가 미군과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미군관계자가 시공에 참여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의무실 건물은 두 개의 건물이 복도로 연결되는 구조다. 각각 진료실, 입원실 용도로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중 입원실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의 내부엔 3개의 방과 화장실, 주방으로 쓰인 흔적이 남아있

  • 300만 조선인 희생 서린 근대화 '빛과 그림자'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3)]

    300만 조선인 희생 서린 근대화 '빛과 그림자'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3)] 지면기사

    광복 - 북한강의 첫 전력시설 가평 청평댐 수상관광 레저 핵심지에 담긴 아픈 역사일본 전범기업 주도했던 프로젝트 일환1945년 해방 이후 전기생산 주요 인프라연인원 300만명 동원 공식 사망자만 43명철도가 그렇듯 전력시설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편리함과 환경오염 같은 현대 문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 땅 위에 처음 철도가 놓였던 일, 처음 전기를 생산했던 일을 말한다.전범기업 하자마구미(間組)가 만든 고양 쌍굴. 서울로 운반할 석탄을 옮길 요량으로 만든 이 터널을 공사하며 지역민 500여명이 숨졌다. 지금도 고양 쌍굴 근처 화전동 공동묘지에서 이들을 기리는 위령비를 찾아볼 수 있다. 차량기지인 경성조차장에서 출발한 열차는 쌍굴을 통해 경성으로 이동했고 경의선을 따라 물자를 옮겼다.경성~개성~평양~신의주로 이어진 경의선은 한반도 주요 도시의 근대화를 이끈 열차였다. 이처럼 철도는 근대화에 공헌한 중요한 인프라지만 건설의 목표는 '수탈'이었고 건설 과정에서 조선인들이 숨져갔다. 전력시설도 마찬가지였다.하자마구미는 압록강에 수풍발전소를 만들었고, 또 다른 전범기업 카지마구미(鹿島組)는 가평에 청평댐을 지었다. 청평댐이 건설되기 전 북한강은 춘천과 인천까지 수상으로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였다고 한다. 유려한 풍광을 자랑하던 북한강 뱃길에 댐이 들어서게 된 건 전쟁의 영향 때문이었다. 중일전쟁(1937~1945) 초기 인천 군수공장에 댈 전력이 급해진 데다 경인 지역 공업화·도시화로 일제는 수도권에 인접해 있고 산세가 가파른 북한강에 댐을 짓기로 했다.일본인들이 주축이 된 한강수력전기 주식회사가 설립됐고, 공사는 카지마구미가 맡았다. 1939년 8월 착공해 1943년 10월 준공(1·2호기)된 청평댐은 1945년 해방과 함께 한국의 주요 인프라가 된다. 전기생산시설인 수력발전댐 대부분이 수력자원이 풍부한 북한의 압록강, 두만강, 장진강 등에 설치된 탓에 한국에선 청평댐과 화천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1948년 북한의 단전 조치로 전력 수급이 어려워진 게 대표적인 예시였다. 여기에 청평댐은

  • '잊힌 선로' 교외선, 80년 기다림 끝에 다시 경기북부 달린다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2)]

    '잊힌 선로' 교외선, 80년 기다림 끝에 다시 경기북부 달린다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12)] 지면기사

    2004년 여객운송 중단됐던 일영역 부활 고양~양주 연결… 일제 강점기 추진물자 수송 목적 계획·분단으로 단절1961년 개통된 이후 관광 목적 강화주요 승객 대학생 'MT 문화 메카로'현재 폐허처럼 변했지만 과거엔 붐벼연말 재개통 목표 '새로운 추억' 기대고양~양주를 잇는 교외선은 '고양 쌍굴'(4월 30일자 5면 보도=시간 관통한 '고양 쌍굴'… '역사가 들려주는' 조용한 증언 [전쟁과 분단의 기억 시즌2·(2)])과 같은 목적으로 계획됐다. 쌍굴이 경성수색조차장과 경의선을 연결하기 위한 터널로 만들어졌다면 교외선은 경의선으로 수송되는 물자를 서울 시내로 곧장 들이지 않고 서울 동북부로 우회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획된 노선이다.철도가 근대화의 상징이자 수탈을 위한 도구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물자 수송이라는 교외선의 주목적은 해방과 분단 국면에서 변화를 맞는다.노선은 일제 강점기인 1944년부터 추진됐지만, 분단으로 단절되며 활용이 어렵게 된 것이다. 교외선의 한쪽 끝인 고양은 신의주부터 내려오는 경의선과 연결되고 동쪽 끝인 의정부는 경원선과 연결돼 국토 중앙에서 이어지도록 계획한 것이었으나 신의주-원산 모두 분단으로 오갈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렸다.1944년 2월 착공, 1945년 8월 공사가 중지된 교외선의 운명은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1961년 7월 10일 능곡~가릉역 구간이 열리며 교외선이 개통됐다. 미군부대 우회 목적으로 사용된 임시역 가릉역이 1963년 8월 20일 폐지되고 의정부역으로 연결되면서 교외선은 20년 만에 비로소 본 모습을 찾게 된다.다만 애초 물자 수송에서 관광으로 목적 자체가 크게 바뀌었다. 교외선이 단순하게 고양~의정부를 이었던 것이 아니라 서울역, 왕십리역과 연계되며 서울의 관광수요를 경기북부로 이전하는 효과를 낳아서였다. 교외선은 서쪽에서 출발해 시계 방향으로 도는 '서회선'과 동쪽에서 출발해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동회선'으로 움직였다. 서회선은 서울역~능곡역~의정부역~성북역~왕십리역~서울역순으로 운행했고 동회선은 서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