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55)승리 교향곡]독일 작곡가 곡으로 승리 염원한 연합군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55)승리 교향곡]독일 작곡가 곡으로 승리 염원한 연합군 지면기사

    BBC 뉴스 시그널로 베토벤 '운명' 적이 아닌 인류대표 음악가 인정먼 거리에 정확한 통신문을 전송하려면 전건을 길게 누르거나 짧게 눌러서 신호를 보내는데 이게 우리가 아는 모스부호였다. …(중략)… 짧은 신호는 '돈', 긴 신호는 '스'였다. A는 약속 신호가 짧게 한 번 길게 한 번이었고, '돈스'로 읽었다. B는 긴 신호 한 번 짧은 신호 세 번, 그러니 '스돈돈돈'. 한글 ㄱ은 돈스돈돈 식이었다. 무선놀이할 때 우리 입에서는 스돈돈돈돈 스돈스 돈돈돈 하면서 '돈'과 '스'가 무한대로 흘러나올 수밖에 없었다. - 양진채 소설집 '검은 설탕의 시간'(강 刊) 가운데 '북쪽 별을 찾아서' 중에서.사무엘 모스가 창안한 '모스부호'는 1844년 미국 워싱턴과 볼티모어 간에 연결된 전선 65㎞ 구간에서 첫 공개 전송됐다. 이후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세계를 연결했다. 우리나라에선 1885년 인천(제물포)과 서울(한성) 사이 전신업무 개시와 함께 도입됐다.우리가 '운명'이라고 부르는 베토벤 '교향곡 5번, Op 67'(1808년 초연)은 서양에선 작품의 주요조성인 'C단조' 교향곡으로 불린다. 베토벤을 수식하는 '악성(樂聖 )'이니 이 작품의 부제 '운명(運命)'은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일본인들이 만들었다. 때문에, 우리와 일본에서 주로 통용되는 '운명'은 서양에서 '승리' 교향곡으로도 잘 알려졌다. 우연이겠지만, 유명한 셋잇단음 모티브인 '딴딴딴따~'의 리듬이 승리(Victory)를 의미하는 'V'의 모스부호(돈돈돈스)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은 베토벤의 이 작품으로 승리를 다짐했다. 당시 영국 BBC 방송은 전쟁의 승리를 염원하면서 라디오 뉴스 시그널로 '운명'의 첫 소절을 사용했다. 이는 레지스탕스를 비롯해 나치의 통제 아래 있는 유럽 가정에 전파되는 희망의 신호였다. 전시(戰時)에 적국(독일) 작곡가의 음악을 방송 시그널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찬반이 영국에서 있었지만, 당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불에는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 (54) 숲]청력 잃은 베토벤에게 힘이 된 산책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 (54) 숲]청력 잃은 베토벤에게 힘이 된 산책 지면기사

    자연속 깨달음 '걸작'으로 탄생말러 '탄식의 노래' 배경으로도'슈바르츠발트'(Schwarzwald)는 독일 남서부 라인강 동쪽에 160㎞ 길이로 뻗어있는 산맥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검은 숲'이다.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 때문에 낮에도 햇빛이 들지 않아서 검은 숲으로 불린다. 도나우강의 발원지이기도 한 이 숲은 그림 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 '빨간 모자'의 배경이다. 숲에서 길 잃은 어린 남매를 향해 식욕을 불태우는 마녀가 '헨젤과 그레텔'에 등장한다. '빨간 모자'엔 할머니를 잡아먹고서 소녀까지 노리는 늑대가 나온다. 이렇듯 과거의 숲은 으스스한 장소로 인식됐다.구스타프 말러는 빈 음악원 수학 당시 '탄식의 노래'(Das Klagende Lied)를 작곡했다. 합창과 독창, 오케스트라가 어우러지는 대 편성 칸타타인 이 작품은 깊은 숲 속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가사는 말러가 직접 썼는데, 그림 형제의 동화 '노래하는 뼈', 루트비히 베슈타인의 동화, 마틴 그라이프의 시를 참조했다. 가사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백마 탄 왕자를 도저히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 여왕은 숲 속의 붉은 꽃을 찾아오는 사람과 혼례를 치르겠다고 선언한다. 소식을 접한 형제는 숲으로 꽃을 찾아 나선다. 아우가 꽃을 찾아내자 형은 아우를 죽이고 꽃을 취한다. 동생은 그렇게 버드나무 아래에 묻히고 만다. 어느 날 버드나무 곁을 지나던 음유시인은 죽은 아우의 뼈를 발견해 플루트를 만든다. 형과의 결혼식 날 그 플루트를 불었는데 살인의 전모가 노래로 흘러나왔다. 결혼식 날 왕국은 와해했다.'탄식의 노래'는 훗날 말러가 선보인 후기 낭만주의 걸작 교향곡들의 밑거름이 되며, 작곡가 특유의 염세주의의 출발점이 되는 작품이다.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비너발트'(Wienerwald)에는 베토벤 길과 동상이 함께 보존돼 있다. 이 숲 북쪽엔 휴양 도시인 하일리겐슈타트가 인접해 있는데, 베토벤은 요양차 1802년부터 이곳에 머물렀다. 수년 동안 앓은 귓병이 악화했기 때문이었다. 요양 초기, 음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53)커피]18세기 흔한 풍경 '카페 연주회'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53)커피]18세기 흔한 풍경 '카페 연주회' 지면기사

    바흐 관련된 '커피 칸타타' 인기베토벤·브람스도 직접 원두 추출 1743년에 창단한 독일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Leipzig Gewandhaus Orchester)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관현악단이다. 열두 명으로 시작한 이 단체는 개인의 저택을 순회하면서 연주회를 개최했다. 이들의 연주 소식에 주민들의 관심 또한 커졌고, 그만큼 단원과 청중이 늘었다. 더 큰 공연 공간이 필요하게 되자 이들은 카페(커피 하우스)로 옮겨 연주회를 열었다. 얼마 후 카페마저 청중을 수용하는 데 한계에 부닥쳤다. 인기 폭발에 걸맞게 더 넓은 장소가 필요했다. 1781년 직물업자들이 모여서 회의하고 그들이 만든 제품을 전시하고 보관하는 용도로 지은 건물인 게반트하우스(의복협회 회관)로 연주장을 옮겼다. 이렇게 하여 오케스트라의 명칭에 게반트하우스가 붙게 됐다.18세기 상업도시 라이프치히에선 커피가 대유행했다. 가정마다 커피를 즐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내 곳곳의 카페에선 커피를 즐기면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로 성황을 이뤘다. 카페가 사교장 역할을 하다 보니 소규모 공연도 종종 열렸다. 창단 초기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카페 연주회 또한 그 일환으로 보면 된다.6년 동안 쾨텐의 궁정악장으로 활동한 바흐는 1723년 성 토마스 교회의 음악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라이프치히에서 음악 활동을 이어갔다. 바흐는 성 토마스 교회와 성 니콜라이 교회의 일요 예배를 위한 칸타타(Cantata)를 매주 두 곡씩 작곡했다. 1729년까지 교회 칸타타가 집중적으로 작곡되는데, 소규모 칸타타들과 함께 규모가 큰 수난곡 등 종교음악의 걸작들이 이 시기에 탄생했다.세속 칸타타인 '커피 칸타타, BWV 211'도 비슷한 시기에 작곡됐다. 바흐가 이끄는 콜레기움 무지쿰의 연주로 바흐가 자주 다니던 카페에서 소개된 이 칸타타는 큰 인기를 끌었다. 풍자와 익살로 가득한 '커피 칸타타'의 가사는 프리드리히 헨리키가 썼다. 커피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딸과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극은 커피 예찬으로 마무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52)스트라디바리우스]장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제작비법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52)스트라디바리우스]장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제작비법 지면기사

    1100여점 생산 수억~수백억대 거래'고가 = 뛰어난 음색' 견해 지배적'스트라디바리우스'는 이탈리아의 크레모나에서 태어난 악기 제작자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현악기를 말한다. 1644년에 태어났다고 전하는 스트라디바리는 1737년 세상을 뜰 때까지 1천100여 점의 현악기를 만들었다. 그중 바이올린 540점, 첼로 50점, 비올라 12점 만이 전해지는 것으로 알려진 시기도 있었지만, 세계 각지에서 추가로 200여 점이 더 스트라디바리의 제작품으로 밝혀졌다.독특한 목재 처리와 디자인으로 인해 모방할 수 없는 음색을 내는 것으로 유명한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가격은 보존 상태에 따라 수억 원에서 수백억 원에 달한다. 장인(匠人)의 죽음과 함께 제작비법도 사라져버리면서 후대 악기 제작자와 과학자들은 그만의 악기 비밀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외견상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울림통의 f형 구멍이다. 대부분 바이올린에서 이 구멍은 대칭이지만, 스트라디바리우스는 대칭이 살짝 어긋나있다. 시각적 완전함을 버리고 청각적 완벽함을 추구한 장인의 고집 때문으로 보인다.과학적 연구결과들도 적지 않게 나왔다. 그가 악기를 제작할 무렵 유럽은 '소(小)빙하기'였다. 유난히 추웠던 날씨로 인해 악기 제작에 쓰인 나무의 나이테가 촘촘하고 나뭇결의 밀도가 높아지면서 소리의 스펙트럼이 균일하고 음정 변화가 없는 악기가 나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현존하는 유명한 악기들 대부분이 1700년대 제작되었고, 중부 유럽 고원지대의 단풍나무를 쓴 점도 겹치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악기 제작을 위해 뗏목 형태로 베네치아까지 운반된 나무들은 해안에서 여러 달 동안 떠 있곤 했는데, 이 과정에서 나무에 흡수된 미네랄과 소금이 명기의 기본 토대가 됐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2014년 프랑스의 한 대학에선 연주자와 악기 전문가, 일반 청중을 초청해 수차례에 걸쳐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스트라디바리우스와 현대에 제작된 바이올린을 비교해 들려준 후 커튼을 치고 연주되는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찾는 방식이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51)거장들의 '백조의 노래']투혼으로 감동을 남긴 '마지막 연주'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51)거장들의 '백조의 노래']투혼으로 감동을 남긴 '마지막 연주' 지면기사

    오이겐 요훔·바츨라프 노이만 등'슬픔보다 평온' 청자 위로 엔딩곡심장병으로 2019년 11월 말에 타계한 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마지막 무대는 같은 달 초에 있었던 뉴욕 카네기홀이었다. 당시 얀손스는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BRSO)과 R.슈트라우스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브람스 '교향곡 4번', 앙코르로 브람스 '헝가리 춤곡 5번'을 연주했다. 이튿날에도 같은 무대에서 지휘할 예정이었으나, 건강 악화로 바실리 페트렌코가 대신 포디엄에 섰다. 뉴욕에서의 연주는 얀손스의 '백조의 노래'가 됐다. 이 연주 후 한 달이 채 안 돼 얀손스가 세상을 떠나자 BRSO 단원들은 "연주 내내 다리가 휘청거리고 팔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지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지휘하는 듯했다"고 거장의 마지막 연주를 떠올렸다.백조는 죽기 직전에 노래한다는 북유럽 전설에서 유래한 '백조의 노래'는 작가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지은 시가나 가곡 따위를 일컫는다. 슈베르트의 3대 가곡집 중 하나로, 작곡가 사후에 14곡의 가곡을 한데 모아 간행된 가곡집이 '백조의 노래'로 명명된 바 있다. 시대를 풍미한 연주자들에겐 인상깊은 '백조의 노래'가 있다. 20세기 거장들의 마지막 연주는 음반을 통해서도 접할 수 있다. 최후의 투혼이 녹아있는 이들 연주는 들을 때마다 심장을 뛰게 만든다. '브루크너의 화신'으로 불리는 독일 지휘자 오이겐 요훔은 85세였던 1987년 1월 뮌헨 필하모닉을 이끌고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지휘했다. 24세의 젊은 나이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뮌헨 필과 연주해 데뷔했던 요훔은 말년에 다시 뮌헨에서 브루크너의 마지막 교향곡을 연주한 것이다. 마지막 아다지오 악장의 거룩한 고양과 잦아드는 신비감까지, 이전 연주들을 뛰어넘은 요훔은 2개월 뒤 세상을 떠났다.체코 출신의 마에스트로 바츨라프 노이만은 체코 필하모닉과 1990년대 들어서 자신의 세 번째 말러 교향곡 전집에 도전했다. 교향곡 1번부터 6번까지 레코딩한 뒤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에서 1995년 75세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50)행성(The Planets)]홀스트의 관현악 모음곡 '우주를 담다'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50)행성(The Planets)]홀스트의 관현악 모음곡 '우주를 담다' 지면기사

    점성술 매료 '화성' 등 7곡 발표'목성' 뉴스 시그널 등으로 유명 20세기를 대표하는 첼리스트인 파블로 카잘스는 제자들에게 평소 입버릇처럼 "하늘의 별을 보라"고 말했다. 카잘스는 별의 신비로운 모습과 반짝임에서 받은 음악적 영감을 제자들에게 전해주려 했다. 스스로 빛을 발하는 천체인 별을 표현한 건 아니지만, 아름다운 행성을 노래한 작품이 있다. 영국 작곡가 거스테이브 홀스트(1874~1934)의 관현악 모음곡 '행성, Op 32'이다. 홀스트는 1913년 런던에서 출판된 '천궁도란 무엇인가?'를 읽고 점성술에 매료됐다. 각 행성에 담긴 점성술의 의미에서 착안해 1914년 작곡을 시작한 홀스트는 2년 만에 '행성'을 완성했다. 작곡 당시 발견되지 않았던 명왕성과 우리가 사는 지구를 제외한 일곱 개의 행성을 담았다. 화성(전쟁의 전령), 금성(평화의 전령), 수성(날개 단 전령), 목성(쾌락의 전령), 토성(노년의 전령), 천왕성(마법사), 해왕성(신비주의자) 순으로 배치했다. 각 행성엔 점성술이 부여하는 의미를 녹여냈다.놀라운 건 홀스트가 첫 곡인 '화성-전쟁의 전령'을 완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점이다. 1918년 세계대전 종전 직전에 '행성' 전곡이 초연되자 사람들은 점성술에 빠진 홀스트가 전쟁을 예견한 것으로 짐작했다. 그러나 홀스트는 작곡 당시 세계대전을 생각하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2006년 영국의 홀스트재단은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음악을 담당한 한스 짐머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다. 짐머가 이 영화를 위해 쓴 '전투'라는 곡이 '화성-전쟁의 전령'을 표절했다는 이유에서다. 짐머는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두 곡을 들어보면 주제(전쟁)와 분위기가 흡사하다. 짐머가 홀스트의 작품을 참고했을 개연성은 충분해 보인다. 일곱 곡 중 가장 사랑받는 곡은 제4곡 '목성-쾌락의 전령'이다. 장엄하면서 유쾌한 이 곡의 도입부는 1980년대 MBC 뉴스데스크의 시그널 음악을 비롯해 우주나 천문 관련 방송의 배경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9)펜데레츠키를 추모하다]'한국 교향곡' 쓴 폴란드 음악 대통령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9)펜데레츠키를 추모하다]'한국 교향곡' 쓴 폴란드 음악 대통령 지면기사

    현악기 52가지 '음향작곡' 유명1992년 내한 KBS 교향악단 지휘 1960년 27세의 폴란드 작곡가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1933~2020)는 쉰두 개의 현악기로 연주되는 '8분37초'를 발표했다. 이 작품은 불길한 트레몰로(음이나 화음을 빨리 규칙적으로 되풀이하는 주법)로 시작해 음산한 비행음, 원자폭탄 투하 직후의 섬광을 그려내는 듯한 강렬한 음향, 악기의 몸통을 때리면서 나오는 부산스런 소음 등을 8분여 동안 표출했다. 4분의 1음으로 나뉜 음들을 악기들이 한꺼번에 내는 불협화음을 통해 지옥 같은 광경과 핵폭풍이 휩쓸고 간 후의 처연한 적막감 등을 표출한 거였다.펜데레츠키는 곧바로 작품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제목을 '52인의 현악 주자를 위한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가(哀歌)'로 정정했다. 우리에겐 광복을 안긴 사건이었지만, 인류 전체로 봤을 때 원자폭탄 투하로 전쟁의 종결을 알린 비인간적인 측면을 부각한 작품이었다. '음향작곡(Klangkomposition)'의 대표격인 이 작품은 20세기에 쓰인 가장 위대한 음악으로도 거론된다.펜데레츠키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고향인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지병으로 86년의 생을 마감했다.'폴란드의 음악 대통령'으로도 불린 펜데레츠키는 모더니즘 음악 작곡가 중에서는 드물게 대중적 인기도 누렸다. 강렬한 주제들을 음악으로 구현했기 때문이었다. '애가'를 비롯해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의 아픔을 다룬 '누가 수난곡' 등 사회성 짙은 작품들로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1970년대 이후 '음향작곡' 어법을 버린 펜데레츠키는 낭만적 색채를 지닌 작품을 쓰면서 "아방가르드(avant-garde)를 배신했다"는 비판도 받았다.동유럽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이들 국가와 우리나라가 수교하면서 펜데레츠키와 우리의 인연도 시작됐다. 1991년 우리 문화부는 펜데레츠키에게 광복의 의미를 담은 작품을 부탁했다. 이 세계적 작곡가가 일본을 위한 곡('애가')을 만들었다면 당연히 한국을 위한 곡도 써야 한다고 여겼던 거였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8)차이콥스키의 죽음]거장을 죽인 콜레라, 혹은 동성애 혐오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8)차이콥스키의 죽음]거장을 죽인 콜레라, 혹은 동성애 혐오 지면기사

    코로나 19의 확산세가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이에 전염병을 소재로 한 책과 영화가 새롭게 조명되고, 많은 칼럼에선 전염병 관련 옛이야기를 소환하고 있다.음악계에도 전염병 관련 이야기가 여럿 있다. 19세기의 콜레라는 '근대적' 질병이었다. 런던을 비롯한 유럽 도시들의 팽창 속도와 비교해 상하수도 시설이 따라주지 못했고, 오염된 물을 마신 사람들이 콜레라에 걸렸다.무역이 발달하고 교통망이 확대되면서 2차, 3차 감염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1820년 전후, 1800년대 유럽에선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콜레라가 유행했다.당시 콜레라로 죽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로 '러시아 낭만주의'를 완성한 작곡가 차이콥스키(1840~1893)를 꼽는다.1893년 2월, 교향곡 6번 '비창'의 작곡을 시작한 차이콥스키는 그해 9월에 작품을 완성했다. 10월 지휘대에 올라 이 작품을 초연한 차이콥스키는 9일 후 세상을 떠났다. 러시아 황실에선 차이콥스키가 죽기 며칠 전 식당에서 끓이지 않은 물을 마시고서 콜레라에 걸렸으며, 끝내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차이콥스키가 타계하고 12일 뒤 개최된 두 번째 '비창'의 공연에서 청중은 꺼지듯 사라지는 작품의 마지막 음형과 함께 작곡가의 마지막을 떠올리며 함께 눈물지었다. 작곡가의 염세적 세계관과 개인적 슬픔이 집약된 '비창'을 사람들은 '자살 교향곡'이라고도 불렀다. 이와 함께 대작곡가의 죽음에 의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특히 지인들은 콜레라로 죽었다고 하면서도 소독이나 검역이 없었던 점을 의심했다. 차이콥스키의 시신 앞에 6만명에 이르는 참배객이 다녀갔지만 제지하지 않았다는 거였다.차이콥스키에겐 비밀이 있었다. 그는 당시 윤리기준에서 용납될 수 없었던 동성애자였다. 동성애 성향을 감추기 위해 여 제자와 결혼을 하지만, 며칠 만에 집에서 뛰쳐나왔다. 여러 차례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해결되지 않았다. 차이콥스키는 아버지의 강권으로 법률학교를 나왔으며, 법무부 서기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음악에 전념했는데, 비밀을 알아챈 법률학교 동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7)윤이상]아시아 최초 유럽 음악계 인정받은 작곡가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7)윤이상]아시아 최초 유럽 음악계 인정받은 작곡가 지면기사

    간첩으로 몰린 동백림 사건 겪어정치·사회적 표현 150여편 남겨 윤이상(1917~1995)은 아시아 출신으로는 유럽 음악계의 인정을 받은 첫 작곡가였다. 그는 서양 모더니즘 음악기법을 바탕으로 동아시아적 이미지를 구현한 최초의 인물이었다.해방 이후 부산과 통영에서 음악교사로 있었던 윤이상은 1957년 유럽으로 떠났다. 1966년 독일 도나우에싱엔 음악제에서 초연된 대편성 관현악을 위한 '예악(Reak·禮樂)'은 윤이상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줬다. 윤이상은 1960년대 들어서 펜데레츠키와 리게티 등이 추구한 음향작곡(Klangkomposition) 기법을 바탕으로 하되 우리 전통음악에서 유래한 여러 요소들, 즉 미분음과 비브라토(농현), 장식음 등이 가미된 독특한 음향 세계를 선보이며 서양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1967년엔 '동백림(동베를린) 사건'을 겪었다. 박정희 정권은 1963년 북한에 다녀온 윤이상을 간첩으로 지목해 강제로 데려왔다. 북한에서 옛 친구를 만나고, 평남 강서군의 강서대묘에 있는 고구려의 사신도를 보고 돌아온 윤이상에게 징역 10년이 최종 선고됐다. 윤이상은 옥중에서도 작곡을 이어갔다. 사신도를 보고 받은 영감을 실내악곡 '영상(Images)'에 담아냈다. 1968년 탄생한 이 작품에서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는 하나이자 넷으로 어우러지며 다채롭고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작곡가는 후일에 "고구려 무덤을 지키는 청룡, 백호, 주작, 현무는 어둠 속에서 강렬한 색채로 빛났고, 넷이면서 동시에 하나로 어우러져 있었다"고 회상했다.세계 음악계의 구명운동에 힘입어 2년 만에 감옥에서 나온 윤이상은 이후 정치·사회적 경험들을 명확한 음악 언어로 구사했다. 윤이상은 1972년 뮌헨올림픽 개막 축하작이었던 오페라 '심청'을 비롯해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교향시 '광주여 영원하라',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 분신한 사람들의 넋을 추모한 '화염에 휩싸인 천사와 에필로그', 북한국립교향악단이 초연한 칸타타 '나의 땅 나의 민족이여' 등 1

  •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6)음악의 성인(聖人)]"브루크너 음악에는 신이 살아있다"

    [김영준의 재밌는 클래식·(46)음악의 성인(聖人)]"브루크너 음악에는 신이 살아있다" 지면기사

    교향곡 3번 말러 기립박수 일화거대 성당·장대한 우주 연상시켜 음악사에서 '3B'는 성이 B로 시작하는 작곡가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 등 3인을 지칭한다. 베토벤과 말러 사이의 가장 중요한 교향곡 작곡가로 평가되는 안톤 브루크너(1824~1896)를 브람스 대신 포함하기도 한다.오스트리아 린츠 인근의 안스펠덴에서 태어난 브루크너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어린 시절 그는 부모님과 성 플로리안 성당에 종종 갔다. 높이 솟은 탑과 아름다운 그림으로 장식된 바로크 건축양식의 성당과 웅장한 오르간(1771년에 제작된 이 명품 오르간은 현재 '브루크너 오르간'으로 불린다)은 어린 브루크너에게 종교적으로나 음악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13세에 이 성당의 성가대원이 되었고, 24세에 오르가니스트로 임명되는 등 성 플로리안 성당에서 보낸 17년은 브루크너 음악의 근간이 형성된 시기였다. 31세에 빈 음악원 교수였던 지몬 제히터를 찾아가 6년 동안 작곡을 배운 후 나름의 스타일을 갖춘 첫 작품('미사 D단조')을 40세에 발표했다. 슈만과 바그너, 브람스 등의 첫 걸작이 20대에 나온 것과 비교하면 크게 늦었다.44세에 '교향곡 1번'을 발표한 브루크너는 5년 후인 1873년엔 '교향곡 3번'을 완성해 바그너에게 헌정했다. 그러나 거대한 규모와 곡의 난해함으로 인해 당대 오케스트라들은 연주를 거부했다. 1877년에 이르러서야 작곡가가 직접 빈 필하모닉을 지휘해 초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공연장의 청중은 하나둘 빠져나갔고, 연주가 끝났을 땐 20여명 만이 남았다고 한다. 굴욕의 순간에 17세의 청년 음악도였던 말러가 기립 박수로 작곡가에게 존경을 표시한 일화는 유명하다.1884년 '교향곡 7번'으로 대성공을 거둔 브루크너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 중 하나로 평가받는 '8번'을 완성했으며, 이어지는 걸작인 '교향곡 9번'의 마지막 악장을 끝내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거대한 성당과 장대한 우주를 연상시키는 악상과 숭고한 아다지오 악장, 압도적인 피날레 악장 등을 갖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