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일보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이 출범한 이후, 총 72회 기자상을 수상했다. 신문 하단, 1단짜리 사건기사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집요하게 현장을 찾으며, 미세하게 감지되는 사회의 이상현상을 예민하게 관찰했고, 사회 분위기에 역행하는 수상한 움직임을 면밀하게 쫓아 기록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그렇게 지난 80년, 경기도·인천의 ‘매일’을 신문으로 기록했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은 희미하지만 기록은 역사가 된다. 경인일보를 일컬어 경기도·인천의 역사(歷史)이자 유일무이한 기록자라 부르는 것은, 그래서 더한 설명이
인천광역시 미추홀구 용현동, 수봉산 밑자락 아리마을에는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방, ‘양지탕’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공중목욕탕으로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했고, 목욕탕이 사라진 지금은 아이들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언제든지 찾아와 웃고 떠들며 정을 나누는 사랑방이 됐습니다. 양지탕은 1982년에 문을 열었습니다. 지하는 보일러실, 1층은 여탕, 2층은 남탕, 3층은 주인집이었습니다. 건물 꼭대기 우뚝 솟아있는 벽돌 굴뚝을 보면 이곳이 목욕탕이었다는 걸 단박에 알수 있죠. 초창기만 해도 동네 주민들이 많이 찾아 북적였다고 합니다. 덕분에 굴
지난 1편에서 만난 수원 무등탕은 우리네 어머니들의 사랑방이었습니다. 몇날 몇시 어디서 만나자, 굳이 세세하게 약속을 잡지 않아도 밥 같이 먹을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곳. 속상하거나 마음 복잡한 일이 있어도 한바탕 왁자지껄 웃고 떠들고 나면 마음이 풀리는 마법같은 곳. 꼭 약속하지 않아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나를 반겨주는, 우리가 만난 수원 무등탕은 동네의 안식처이자 사랑방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제는 수원 무등탕과 같은 사랑방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 자리는 각종 온라인 사랑방이 대신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검색창에도 나오지 않는 무등탕을 처음 간 날, 이슬비가 내렸습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데 저 멀리 ‘목욕합니다’라는 입간판이 보였습니다. “아직도 이런 목욕탕이 있구나.” 저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습니다. 처음엔 분명 새하얐을 만한 나무입간판은 이제 껍질과 함께 군데군데 벗겨졌고 ‘목욕’이라는 빨간 글씨 역시 바래져 있습니다. 입간판에서부터 “여기 오래된 곳이오” 말하는 듯했습니다. 입간판이 세워진 골목길로 들어서니 ‘여성전용 무등탕’이라 적힌 유리문이 나옵니다. 유리문을 지나 한 계단 반을 오르면, 매표소가 보입니다.
10년 전 여름, 기차 여행을 하던 대학생들의 인터뷰가 최근 SNS를 뜨겁게 달궜습니다. 10년 후 같은 시각,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자는 10년 전 이들의 약속에 많은 사람이 낭만적 재회를 기대한 것이죠. 이들의 오래된 약속처럼 우리도 떠올리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또는 눈물이 나는 옛 추억 하나쯤 마음에 안고 삽니다. 레트로K 시즌3는 당신 마음에 새겨진 그리움을 찾아 떠납니다. 무언가 특별하거나 놀라운 이야기는 없습니다.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주말마다 엄마와 손잡고 갔던 동네 목욕탕, 목욕탕 평상에 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