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 세월호 이전 인천의 참사들


존재 이유 잘 모르거나… 접근 어려워
"추모 통한 기억, 트라우마 해소 도움"

인현동 화재참사 추모비
1999년 10월 30일 인천 중구 인현동 화재 참사 이후 화재 현장 인근에 인천학생교육문화회관과 위령비가 세워졌으며 지난해에야 유가족들의 요구로 참사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 들어서는 등 추모 공간으로 확대 조성됐다. 2024.4.17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세월호 참사(2014년 4월16일) 이전에도 인천에서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참사들이 있었다. 인천 곳곳에서 위령탑 건립과 추모제 개최 등의 방식으로 참사의 기억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있지만 한계도 있다.

1999년 발생한 인천 중구 인현동 화재는 57명이 숨진 대형 참사로 기록됐다. 그해 10월 30일 인현동 한 상가건물에서 발생한 화재로 2층에 있던 10대 중·고교생 등 57명이 숨지고 80여 명이 다쳤다. 인천시교육청은 청소년들의 문화 공간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2004년 참사 현장 인근에 학생교육문화회관을 세웠다.

당시 문화회관 뒤편에 추모비만 설치됐을 뿐 참사 내용을 기록한 안내판조차 없었다. 청소년 등 방문객들도 왜 이곳에 문화회관이 생겼는지 모를 수밖에 없었다. 20여 년이 지난 2023년에야 유가족들과 시민단체 요구로 참사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 설치됐다.

인현동 화재 참사 유족회 이재원 회장은 "문화회관 내부에 상설 추모 공간이 마련되길 원했지만, 흐지부지됐다"며 "올해가 참사 25주기인데 시민들이 참사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릴까 봐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98금양호 추모비
천안함 사건 실종자 수색 작업에 참여했다가 2010년 4월 2일 복귀 중 침몰한 어선 98금양호 희생자 9명을 기리는 위령탑이 인천 중구 역무선 부두 한편에 마련됐지만 최근에는 위령탑으로 향하는 길목이 공사로 막혀 접근이 어렵다. 2024.4.17 /조재현기자 jhc@kyeongin.com

2010년 3월26일 서해 최북단 섬인 인천 옹진군 백령도 앞바다에선 천안함 침몰 사건이 있었다. 실종자 수색 작업에 참여했다가 4월2일 인천항으로 복귀하던 어선 98금양호가 외국 화물선과 충돌해 선원 9명이 숨졌다. 이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위령탑은 이듬해 중구 역무선부두 한편에 마련됐다.

하지만 인천 시민조차 이를 잘 모른다. 최근엔 98금양호 희생자 위령탑으로 향하는 길목이 공사로 막혀 조문하기도 여의치 않다.

금양호 선장이었던 고(故) 김재후씨의 동생 김재흥씨는 "선원 유가족들이 따로 기일을 챙기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유가족 간 교류는 거의 끊긴 상태"라며 "사고 당시엔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잊히는 것은 한순간이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2011년 7월 강원도 춘천에선 산사태로 이 지역에 봉사활동을 갔던 인하대 학생 10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다. 인하대와 유가족들은 참사 10주기인 2021년까지 매년 교내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이후엔 참사 날짜를 따서 '리멤버 0727' 사회봉사장학금을 조성했다.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임명호 교수는 "세월호 등 대규모 참사의 기억은 시민에게도 희생자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트라우마로 남아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추모를 통해 참사의 기억을 반복적으로 꺼내는 것은 유가족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트라우마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시민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추모 공간을 조성하는 것은 그래서 바람직하다"고 했다.

/정운·백효은·정선아기자 100@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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