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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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개 넘치는 장단… '한국의 얼' 두드리네 지면기사
[공연리뷰] 제31회 새얼 국악의 밤 '故손창근 옹의 유지·정신' 인사말 화두'김경아'의 사랑가·'현'의 모듬북 등 공연국민 애창곡 무대로 관객 공감대 이끌어어떤 공연은 그 공연이 주는 메시지에 더 주목하게 된다. 지난 18일 저녁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에서 '제31회 새얼 국악의 밤'이 열렸다. 공연의 막을 올리기에 앞서 주최 측인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은 지난 11일 향년 95세를 일기로 별세한 문화유산 소장가 손창근 옹의 이야기를 인사말로 꺼냈다.생전 손창근 옹은 국보인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 1447년 편찬된 한글 서적 '용비어천가' 초간본을 비롯한 유물 300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또 경기도 용인 일대 임야 662ha(약 200만평)를 산림청에, 50억원 상당의 건물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각각 기부했다. 그가 별세한 사실도 유가족이 장례를 치르고 난 뒤인 지난 17일에야 뒤늦게 알려졌다. 유가족은 '세상에 알리지 말라'는 손창근 옹의 유지에 따랐다고 한다."근래 우리나라가 큰 나라들 틈에 끼어 더 힘들게 지내고 있고,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말 한마디 못하는 그런 신세지만, (손창근 옹의) 이러한 정신이 우리 바보 같은 백성들, 시민들, 국민들 속에 뿌리가 깊이 내려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요새 정말 어려운 시절이죠. 시민이 깨어 있으면 어떤 어려움도 우리가 해낼 수 있다는 마음으로부터 결심해주길 바랍니다."관객들이 왜 국악 공연을 앞두고 지용택 이사장이 이러한 메시지를 전할까 생각하던 찰나, 이용탁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장이 지휘하는 '아, 홉 국악오케스트라'가 몽골의 광대한 평원을 표현한 '깨어난 초원'을 연주했다. 고유한 우리 기상을 연상하게 하는 활기차고 기개가 넘치는 곡 '말발굽 소리'가 이어졌다.해금앙상블 '아띠'의 3중주 '삼인행'에 이어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 벽면을 사방으로 때려대는 대북 소리가 인상적인 '아트팩토리그룹 현'의 웅장한 모듬북 합주 '대해(大海) - 북의 울림'으로 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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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27년 만의 전도연 복귀작' 연극 '벚꽃동산' 지면기사
인간 사회 허를 찌른 '삼각의 역설' 고전골격에 'K패치' 덧입혀 재미 더해삼각계단, 계급성 압축 메타포로 작용LG아트센터 서울서 내달 7일까지 무대 고전의 무게는 창작자에게도, 배우에게도 자못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이미 전 세계에서 수도 없이 무대에 올랐을 연극을 뻔하지 않게 재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스토리에 변주를 주는 것도, 배우의 관록에 기대는 것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사이먼 스톤 연출의 '벚꽃동산'은 배우 전도연의 27년 만의 연극 복귀작으로 일찌감치 유명세를 탄 작품이다. 안톤 체호프의 동명 유작(1904년 초연)을 현대에 맞게 재해석했다는 점도 기대감을 높였다. 대개 기대와 실망은 비례하지만, '벚꽃동산(2024)'은 고전을 현대적으로 매끄럽게 소화해내며 예상을 빗겨갔다. 우선 원작의 스토리는 가볍게 풀어냈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차츰 무너져가는 한 가문과 이 가문이 소유한 벚꽃동산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 이 기본 골격을 토대로 'K패치'가 이뤄졌다. 러시아의 지주 귀족은 오늘날 경영 위기에 봉착한 재벌 3세로 탈바꿈했다. 벚꽃동산에 자리한 별장 주인 재벌 3세 송도영(전도연)의 철없는 자유분방함은 막장과 실존적 방황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가며 재미를 더하는 요소다.그런가 하면 이념의 충돌과 계급성 등 다소 무거운 원작의 주제의식은 무대 디자인을 통해 시각적으로 구현됐다. 무대 디자인을 맡은 사울 킴은 바닥부터 지붕까지 계단으로 이어진 세모 형태의 현대식 벚꽃동산 별장을 만들었다. 이 공간에서 10명의 인물은 삼각형의 빗변을 따라 별장을 끊임없이 오르락내리락한다. 집주인 송도영과 그의 딸들도, 그리고 운전기사와 가정부도 모두 자유롭게 지붕 꼭대기까지 오간다. 특히 이 거대한 삼각형은 극의 기승전결과 인물의 희로애락에 담긴 미묘한 뉘앙스를 묘사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별장 앞에서는 자수성가한 사업가 황두식(박해수)과 이상주의자 변동림(남윤호)의 가치관이 부딪친다. 이들의 논쟁은 삼각형의 하단 밑변을 수평적으로 이리저리 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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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저걸 두고 어찌 가오"… 애끓는 심봉사의 절규 지면기사
미추홀구 학산소극장, 김경아 명창 '심청 이야기' 100명만 가능한 관객참여형 공연 영화 '광대: 소리꾼' 곁들여 몰입↑"아이고, 마누라, 저걸 두고 죽단 말이요?"눈물을 쏙 뺀다. 지난 18일 저녁 인천 미추홀구 학산소극장에서 열린 소리꾼 김경아 명창의 '심청 이야기' 공연 중 곽씨부인이 숨을 거두자 심봉사가 울부짖는 대목이 나올 때 공연장 풍경이다. 갓난 아기 심청을 두고 먼저 떠난 곽씨부인, 싸늘해진 그를 붙든 심봉사의 절규에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미추홀학산문화원과 사단법인 우리소리가 주최한 이번 공연에서 김경아 명창은 판소리 '강산제 심청가' 중 곽씨부인 죽음 이야기를 불렀다. 이날 김 명창의 소리를 받은 고수이면서, 공연 해설을 맡은 조정래 영화감독은 "명창들도 너무 슬퍼서, 목이 메어 소리를 놓칠까봐 부르지 않고 넘어갈 정도로 슬픈 대목"이라고 소개했다.관객들은 중간중간 '얼씨구, 좋다'하면서 추임새와 박수를 넣다가도 김 명창의 애끓는 소리가 절정에 다다르면 숨죽여 지켜봤다. 김 명창의 심청가 공연은 관객 딱 100명을 모아 매달 셋째 주 목요일 4차례에 걸쳐 개최한다. 5월16일 심봉사와 심청의 동냥 이야기, 6월20일 심청이 인당수에 빠지는 이야기, 7월18일 심봉사 눈 뜨는 이야기가 펼쳐진다.네 번에 걸친 심청가 완창(完唱)이나, 그 말보단 김경아 명창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완청'(完聽)이란 표현을 이번에도 썼다. 부르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에 방점을 둔 표현으로, 김 명창은 이들을 '귀명창'이라고도 했다. 관객 참여형 공연은 판소리의 또 다른 매력이다.조정래 감독이 심청가를 모티브로 2020년 연출한 판소리 영화 '광대: 소리꾼'의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소리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도왔다. 광대패의 소리꾼 '심학규'가 불의의 사고로 눈이 먼 딸 '청이'와 함께 사라진 아내 '간난'을 찾는 여정을 담은 영화인데, 간난의 죽음을 심청가 속 곽씨부인의 죽음 대목과 겹쳐 보이도록 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어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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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오행으로 바라본 삶의 궤적… 인천시립무용단 '원천(○川)' 지면기사
타오르는 화(火)처럼, 가라앉는 수(水)처럼, 바로 서는 목(木)처럼… '생의 본질'을 좇는 춤사위 '화·수·금·목·토' 성질 프로젝션 맵핑흐르고 끊기는 동작 사이 추상적 표현무용수 각자 감각대로, 때론 함께 동작"다양한 볼거리로 대중성 높인 무대"무용수들은 타오르다가, 침전·유영하다, 쇠처럼 제련돼 자석처럼 단단히 붙다가, 큰 나무같이 곧게 가지를 뻗는 듯 혹은 뿌리내리는 듯 움직이고, 그렇게 가득 축적한 에너지를 대지 위에서 한바탕 발산하며 춤을 췄다.무대는 바닥과 벽면에 '화(火)·수(水)·금(金)·목(木)·토(土)' 오행 각각의 성질을 상징하는 프로젝션 맵핑이 투사돼 오행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 그 속에서 무용수들의 춤과 움직임은 정념 그 자체의 표현으로 보였다.인천시립무용단이 부평구문화재단과 공동으로 기획한 '원천(○川)'이 지난달 29~30일 부평아트센터 해누리극장에서 두 차례 공연을 마쳤다.인천시립무용단 정명훈 상임 부안무자가 창작한 '원천'은 오행을 통해 바라본 삶의 궤적과 다채롭고 복잡한 생의 본질을 좇는 작품이다. 흐르고 끊기는 춤 동작 사이 펼치는 오행의 추상적이고 유형적 모든 현상을 표현했다.군무보다는 무용수 개개인 기량을 보이기 위해 집중하는 듯 모두가 본인의 감각대로 자유로이 움직이다가 또 함께 움직였다. 서사가 존재하지 않는 이 작품에서 무용수들은 몸의 언어로 내면화한 오행의 키워드를 표출해야 했다. 주역 무용수 박재원이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연기로 삶의 여정을 통과함을 보여줬다.정명훈 부안무자는 "무용단원들의 스타성을 키우기 위해 기량을 향상하자는 생각도 작품에 담았다"며 "한국무용은 진입 장벽이 높다고 많이 생각하는데, 이 작품은 현대적 춤사위와 다양한 볼거리로 대중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원천'은 오행의 각 요소를 순차로 다룬다. 각 요소는 본질적 의미를 기반으로 시작하되 안무가의 상상을 통해 재해석되며 기존 의미와 형태가 변형, 재조합을 거친다.인간의 생애에서 고난과 역경, 실패와 성공 같은 경험은 의도와 의도하지 않음이 교차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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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숨막히는 세상 속 '소년들의 일탈' 숨겨둔 욕망 일깨울 단하나 연극 '알앤제이' 지면기사
로미오와 줄리엣 재해석 자극적인 이야기로 내재된 감정 분출'붉은 천' 펄럭이며 무대 위 미장센 매료학생 네명, 객석 누비며 에너지 쏟아이해랑예술극장서 내달 28일까지"지금은 우리의 세상이다."모두가 잠든 밤, 숨이 막힐 정도로 억압적인 분위기와 엄격한 규율 속에 발맞춰 걷던 학생들이 잠에서 깨어 어디론가 향한다. 작은 손전등을 들고 찾은 그곳에는 붉은 천과 한 권의 책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 책은 네 명의 학생들을 숨 쉬게 해줄 작은 숨구멍이 된다.올해 네 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연극 '알앤제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이자, 무대 위에 펼쳐지는 또 하나의 극이다. 두 사람의 애틋하면서도 비극적인 사랑과 이를 둘러싼 사건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결코 익숙한 느낌은 아니다. 네 명의 학생들이 현실과 역할극을 넘나들며 보여주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가 극이 진행되는 내내 몰아친다.학생들에게 '로미오와 줄리엣'은 단순한 희곡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첫눈에 서로에게 빠져버린 남녀의 사랑, 캐풀렛과 몬테규 집안의 대립,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을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과 이를 걱정하고 돕는 인물들까지. 극 안에서 살아있는 인간 군상과 네 학생들이 겪어보지 못한 새롭고 자극적인 세상에 대한 욕망들이 만나고 분출되는 창구이기도 하다. 호기심으로 시작해 어느새 역할극에 진심이 되어가는 학생들의 모습과 그 과정들이 극 사이사이에 차곡히 쌓였다. 때로는 다음 대사가 적힌 페이지를 찢어버리거나, 들려오는 수업 종소리에 또다시 의자에 앉아 학교에서 주입한 내용들을 중얼거리는 등 극을 이어나가지 못하게 하는 현실의 순간들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이따금 그들 안에 내재돼 있던 폭력적인 모습들도 드러난다. 그럴 때마다 이 현실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책으로 또 마음으로 전하는 진심들이 손을 잡고 이들을 다시 극 속으로 이끈다.작품은 무대를 영리하게 쓴다. 가운데 주 무대를 두고 배우들이 객석 사이를 누비는데, 때로는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객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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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위기 뿐이던 레스토랑 몽블랑, 단합으로 되살린 희망의 불씨… 뮤지컬 '마음을 움직이는 요리사' 지면기사
수원시립공연단 시연 관내 공공기관·중기 대상소통·리더십 중요성 일깨워"몽블랑의 음식은 싸구려다. 조잡한 삼류 영화처럼…. 맛은 최악."맛있는 음식과 최상의 서비스를 자랑하던 국내 최고의 레스토랑 몽블랑.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드높은 명성에도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한다. 주방장의 위상은 꺾이고, 직원들의 사기는 날로 떨어져 간다. 설상가상, 음식 평론가에게 최악의 평가를 받으면서 폐업 위기가 코앞까지 들이닥친다. 낭떠러지에 몰린 몽블랑의 직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지난 6일 수원시 정조테마공연장에서 시연된 2024 수원시립공연단 찾아가는 예술무대 '마음을 움직이는 요리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는 어느 레스토랑의 고군분투를 그린 뮤지컬이다.뮤지컬 배경은 레스토랑이지만, 그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사회 내 무수한 조직이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를 대변하고 있다. "라떼는 말이야…." 옛 영광에 심취해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영자, 매너리즘에 빠진 독선적인 리더,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업무 시간을 때우는 직원. 타성에 젖은 조직원들이 모인 집단은 몰아치는 파도 앞의 모래성처럼 순식간에 무너져내릴 수밖에 없다.도무지 출구가 없어 보이는 상황을 조금씩 바꿔나가는 건 직원들 간의 끈끈한 동료애와 변화한 리더십. 레스토랑 몽블랑의 직원들은 저마다 갖고 있던 초심을 떠올리며 의기투합한다. 특히 모래알처럼 흩어졌던 직원들의 사기를 북돋운 건 리더, 주방장의 결심이었다. 무기력증에 허덕이던 리더는 옛 기억을 원동력으로 삼아 직원들과 어려운 도전에 나서고, 도약에 성공한다.실패를 극복하고 새 출발을 시작한 어느 레스토랑의 이야기는 기업의 구성원인 개개인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조직 내 위기 극복과 화합의 과정을 담은 수원시립공연단의 이번 공연이 수원시 관내 기업들을 주요 관객으로 삼은 이유다.기획 의도에 대해 권호성 수원시립예술공연단 예술감독은 "이번 공연은 소통을 통한 협력이 조직을 어떻게 탈바꿈하는지, 또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드라마"라며 "수원시 관내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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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의 기운 휘몰아친 강렬한 연주… 새해 파티 분위기 '물씬' 지면기사
[공연리뷰] 인천시향 신년음악회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 출발소프라노 임선혜·테너 최원휘 한무대관현악과 협연 '사물광대' 공연 백미인천시립교향악단이 2024년 청룡의 해를 맞이하는 신년음악회로 새해의 문을 활짝 열었다.인천시립교향악단 제419회 정기연주회로 지난 19일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에서 열린 신년음악회는 인천시향 이병욱 예술감독이 지휘하는 베르디 오페라 '운명의 힘' 서곡으로 힘차게 출발했다.공연 전반부는 유럽의 자존심인 고음악의 정상에 우뚝 선 동양인이자 고음악계 최고의 프리마돈나로 불리는 소프라노 임선혜와 뉴욕타임스 등에서 호평받으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테너 최원휘와의 협연으로 꾸몄다.임선혜는 서정적 음색으로 들리브 '카디스의 처녀들'을 부르며 직접 캐스터네츠를 치고 풍부한 연기력으로 분위기를 돋우었다. 최원휘는 도니제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과 멕시코 작곡가 라라의 '그라나다'를 불렀다. 임선혜·최원휘가 로맨틱 코미디처럼 남녀의 심리를 번갈아 노래한 '사랑의 묘약' 중 '한 마디만, 오 아디나'와 이어진 앙코르곡은 관객들에게 유쾌함을 선사했다.후반부 첫 곡 강준일의 사물놀이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곡 '마당'은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였다. 박안지(꽹과리), 신찬선(장구), 김한복(징·꽹과리), 장현진(북)으로 구성된 사물놀이 연주단체 '사물광대'와 함께한 연주했다.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한국 전통 타악기의 사물놀이 리듬과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어우러지면서 주거니 받거니 대화하듯 협주했다. 강렬한 연주였다.신명이 절정에 다다른 사물놀이의 시간엔 지휘자인 이병욱 예술감독조차 빠져든 듯 사물광대 연주자들을 바라봤고, 관객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이 순간만큼은 오케스트라가 사물놀이에 잠시 주인공 자리를 내준 듯했다.청룡의 기운이 휩쓸고 간 무대 이후엔 신년음악회의 익숙한 레퍼토리가 이어졌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천둥과 번개 폴카 Op 324'와 '사냥 폴카 Op 373', 인천시향 단원들의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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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세상에 던져진 '달의 아이' 잃어버린 건, 기억일까 나일까… 뮤지컬 '문스토리' 지면기사
"과거의 달에 아이들이 많이 살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높은 건물,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불빛, 수많은 사람. 복잡한 서울 도심에서 퀭한 모습으로 질주하는 택시기사 '이헌'은 전직 만화가다. 그는 한 남자를 차로 치고 당황스러움에 자신의 단칸방으로 그를 옮긴다. 그곳에서 눈을 뜬 남자는 자신을 달에서 왔다고 소개한다. 그의 이름은 '용'. 그때 그 집을 찾아온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단짝친구 '이찬영'이다. 찬영은 마침내 여자가 되어 '린'이란 이름으로 이헌 앞에 다시 나타났다. 그렇게 그들은 어색한 동거를 시작한다. 그리고 며칠 뒤 이헌은 만화 잡지사 기자인 '오수연'을 만나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는데, 7년 전 중단됐던 이헌의 만화 '문스토리'가 웹툰으로 다시 연재되고 있다는 것. 이헌의 삶은 이때부터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된다. 언뜻 보면 개성있는 네 인물이 가지고 있는 연결고리가 그리 단단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극이 전개될수록 이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로 엮여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흥미로워진다.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 사실을 잊고 지내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또 자신이 누구인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어디를 향해 걸어가야 할지를 늘 떠올리며 살아가는 것도 결코 쉽지는 않다. 작품은 이 네 인물의 관계를 통해 내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주인공과 달에서 온 손님·옛친구·기자… 넷의 묘한 인연숨은 '자아' 찾아가는 과정 그려… 관객에게 '공감·위로'극은 지난 2021년 팬데믹 상황에서 처음 무대에 올랐다. 돌이켜 보면 서로가 단절되고 고립됐던 그 시기는 모두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었다. 그럴 때일수록 '잘하고 있다', '잘할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주는 작품들은 마음을 어루만져 주곤 했다. '문스토리'라는 극이 가진 장점 또한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 '용'이 지구로 와 어지러움을 느끼는 것도, 달에서 온 아이들을 찾을 때 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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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세번째 시즌으로 돌아온 뮤지컬 '벤허' 지면기사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이 굽이치는 삶 속에서 흘렀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생이란 수많은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처럼 느껴진다. 뮤지컬 '벤허'가 올해 세 번째 시즌으로 돌아와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1세기 초반의 로마를 배경으로 한 '벤허'는 루 윌러스가 1880년 발표한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유다 벤허'의 삶을 그려낸 작품이다. 연출의 변화와 넘버의 추가로 극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는 창작진의 말처럼, 시각적인 화려함과 쉴 틈 없이 전개되는 서사는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해 보였다. 1세기 로마 배경… 친구의 배신으로 노예가 된 '벤허'바닷속 헤엄·군함난파 등 특수영상 무대 활용 돋보여화려한 전차 경주 장면 · 앙상블 호흡 주목 무대 양 끝에 만들어진 돌계단부터 석상, 거대한 콜로세움은 물론 집과 노예시장, 무덤, 골고다 등 작품은 장면마다 로마 곳곳의 모습을 만들어 냈다. 특히 벤허가 탄 군함이 해적과의 전투 중에 난파되고, 바다에 빠진 사령관 퀸터스의 목숨을 구해주는 장면은 시각적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무대 위 배에서 뛰어내린 벤허가 퀸터스를 구하기 위해 바닷속을 헤엄쳐 들어가는 모습이 홀로그램 속에서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구현됐는데, 실제 무대세트가 주는 현실감과 또 다른 차원의 현실감을 전하는 특수영상의 영리한 활용이 돋보였다. 극에서 배우들이 보여주는 안무는 그들의 계급과 지위, 상황과 감정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노예가 끌려가는 장면, 검투사 훈련을 받는 장면, 연희장에서 군무를 추는 장면을 포함해 극의 시작부터 끝까지 잘 짜여진 동작들로 채워져 있었다. 모두 남자배우들로 구성된 '벤허'의 앙상블은 오랜 시간 연습을 해온 만큼 군더더기 없이 무대를 선보였다. 이들은 유대인과 로마군·해적과 로마군의 전투와 고통받는 노예의 처참한 삶 등 여러 역할을 소화해내며 서사에 탄탄함을 더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작품 속에서 크게 나타난 갈등의 요소는 벤허의 삶 그 자체이며, 그 소용돌이의 중심에는 친구 메셀라가 있다. 메셀라는 숱한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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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베테랑 배우들의 묵직한 메시지, 연극 '오펀스' '올드 위키드 송' 지면기사
세월과 인생의 경험이 켜켜이 쌓인 이들이 전하는 이야기는 때때로 깊은 감동과 울림을 준다.연극 '오펀스'와 '올드 위키드 송'은 모두 관록을 갖춘 베테랑 배우들이 하나의 길을 밝혀주는 등불처럼 등장한다. 극의 무게 중심을 잡아주면서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주는 이들과 연기력을 갖춘 젊은 배우들의 조화는 극의 균형과 완성도에서도 강한 힘을 발휘한다.그들이 함께 나누는 대사와 눈빛, 행동들을 곱씹으며 마음 깊숙한 곳의 따뜻함을 느껴볼 수 있는 두 작품을 소개한다.감동과 성장의 '오펀스' 낡은 커튼, 헤진 소파, 계단에 쳐진 거미줄, 쌓여있는 마요네즈 통…. 온기는 찾아보기 어려운 집에 살고 있는 트릿과 필립 형제는 세상에 남겨진 고아이다. 폭력적이지만 누구보다 동생에 대한 책임감을 갖고 살아온 트릿은 어린 시절 동생이 죽을뻔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필립이 집 안에서 색이 칠해진 칸으로만 건너다니고, 창밖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틀 안에 갇힌 삶을 사는 이유이다. 좀도둑 생활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는 트릿은 어느 날 큰돈을 벌어볼 요량으로 술에 취한 중년의 갱스터 해롤드를 집으로 데려온다. 자신이 고아원에서 자랐음을 털어놓은 해롤드는 트릿을 '앵벌이 키즈'라고 부르며 그 집의 자발적(?) 인질이 된다. 그리고 그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높은 급여가 포함된 일자리를 제안한다. 좀도둑 생활로 생계 잇는 두 형제중년 갱스터와 함께 지내며 삶의 변화숨겨둔 고독 괜찮다며 토닥이는 듯그와의 희한한 동거는 형제의 삶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좋은 가구와 고급스러운 오브제, 깨끗해진 집, 명품 옷을 걸친 형제의 얼굴에는 어느새 그늘이 사라졌다. 필립은 형이 사다 주던 마요네즈가 더는 자기 입맛에 맞지 않게 됐다고 얘기하고, 해롤드의 격려와 함께 조금씩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트릿 역시 해롤드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이 과정에서 해롤드가 형제를 바꿔나가는 대화의 방식이 특히 인상적이다. 신발끈을 묶지 못하는 필립에게 로퍼를 선물하거나, 요리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도 외국어를 할 줄 알게 됐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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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인천시립교향악단 '음악으로 떠나는 유럽여행' 지면기사
정한결 객원 지휘… 부담 없는 곡 선곡어린이 동반 가족 등 다양한 사람 발길"클래식 몰라도 즐길수 있는 기회 좋아"'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쉽지 않은 요즘, 인천시립교향악단은 음악으로나마 여행을 떠나보자고 제안했고 관객들 또한 크게 호응했다.지난 9일 인천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인천시립교향악단의 기획 연주회 '음악으로 떠나는 유럽여행'은 해외여행을 갈 수 없는 시민들의 답답함을 달래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연주회였다.인천시립교향악단의 이날 공연은 젊은 지휘자 정한결의 객원 지휘로 진행됐다. 공연장을 찾은 시민들은 1시간여 동안 인천시립교향악단의 연주를 들으며 스위스·이탈리아(로시니 '빌헬름 텔 서곡'), 오스트리아(요한 슈트라우스 2세 '빈 기질'), 덴마크·노르웨이(그리그 '피아노 협주곡 a단조 Op 16' 중 1악장), 프랑스(포레 '펠레아스와 멜리장드 모음곡 Op 80' 중 제3곡 시칠리엔느), 러시아(차이콥스키 '1812년 서곡'), 체코(드보르자크 '슬라브 무곡 8번')까지 짧지만 알찬 유럽여행이자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기분 좋게 다녀올 수 있었다.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편안한 마음으로 공연 시간을 즐길 수 있도록 마련한 공연이다 보니 귀에 익숙하며, 감상에 부담스럽지 않은 곡들로 지루하지 않게 구성된 연주회였다.티셔츠를 맞춰 입고 공연장을 찾은 한 대학생 커플은 "제목에 이끌려 연주회를 찾아왔다"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해외여행을 가는 마음으로, 그동안의 답답함을 털어내고 즐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어린이와 함께 온 가족도 많았다. 이날 공연의 포디엄에 선 정한결의 지휘 동작을 인상 깊게 봤는지 공연장을 빠져나오는 내내 지휘의 동작을 재현하는 어린이의 모습도 보였다.두 딸과 함께 공연장을 찾았다는 어머니 이은지(41·인천 남동구)씨는 "어린이들이 클래식을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공연은 챙겨서 찾아온다"면서 "클래식 음악을 잘 몰라도 즐길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씨의 딸 예서(9)양은 "악기가 많아서 좋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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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21세기 작곡가 시리즈' 지면기사
다양한 장르 접합… 한국전통음악 최선두반복·파괴 넘나든 곡, 정형 깨뜨리며 압도미래는 어떻게 오는 것인가. 지난 13일 오후 8시, 수원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열린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레퍼토리 시즌 2020 '21세기 작곡가 시리즈' 공연이 끝나자마자 이 질문이 날아들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예술감독 원일이 연출하고 부지휘자인 장태평이 연주한 이날 공연은 짧았다. 한 시간 남짓 이어진 공연은 양지선의 곡 '아_에_이_오_우', 라예송의 곡 '먼 바당 작은 테우 위 Ⅱ', 아직(AZIK)의 공연창작·연주곡 '평온 속에서 눈을 뜰 때', 장영규의 곡 '수제천', 윤은화의 곡 '국악관현악을 위한 사이클'로 이어졌다. 몇 개의 단을 쌓아 계단처럼 배치한 무대 위에서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는 동양고주파를 비롯한 다른 연주자들과 함께 다섯 곡을 소화했다. 가장 궁금한 것은 얼마나 새롭고 도전적인지였다. 전통 음악의 생성 원리이자 고유한 창작음악 개념을 동시대의 예술과의 만남에 창의적으로 적용하며 현대가 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음악 행위를 하겠다는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포부 때문이었다. 지금 한국전통음악계는 그 어느 때보다 용솟음친다. 새로운 팀들이 등장하고 전례 없던 시도가 이어진다. 대중음악과 만나고 다른 장르와 접합한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 역시 그 길의 최선두에 있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21세기 작곡가 시리즈는 그 도전의 일환이다.무대를 연 곡은 양지선의 '아_에_이_오_우'. 2007년에 작곡해 2008년 네덜란드 Orkest Ereprijs가 초연한 작품을 개작했는데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와 아홉 명의 소리꾼이 협연했다. 단순한 구조의 음과 리듬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상승하는 방식이었다. 음악을 구성하는 최소한의 요소만 남기고 모두 지워버린 다음 알짜들을 들이미는 것 같은 고집스러운 집요함이 돋보였다. 라예송의 '먼 바당 작은 테우 위' 역시 단순명료했다.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거나 단숨에 비수를 꽂듯 순식간에 치고 빠지는 곡은 군더더기 없이 명징했다. 소품처럼 느껴졌던 곡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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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新, 시나위' 지면기사
'이음소리' '장백이 유이문안' '아직'…작품 6편은 '공동체 음악만들기'의 결과연주자들 개성과 역량 마음껏 드러나경기도립국악단이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로 이름을 바꾸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금은 의아했다. '시나위'와 '오케스트라'는 공존하기 어려운 음악개념이기 때문이다. 시나위는 연주자 개인의 감각적 즉흥 음악성 구현과 합주를 통한 이의 조화를 추구하는 음악이다. 그러나 오케스트라는 작곡가의 이성적 창작원리로 만들어진 작품을 연주자 집단이 이상적 소리로 재현하는 음악이다. 창작국악을 연주하는 국악오케스트라가 시나위를 추구한다는 모순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궁금증이었다.시나위는 굿판의 음악이라는 원초적 종교성과 더불어 고유한 음악적 존재양식을 갖는다. 시나위는 개인의 음악적 역량 구현과 합주를 통한 조화이다. 시나위 연주자들은 함께 어우러져 즉각적인 합주를 할 수 있는 뛰어난 음악적 역량과 서로 간의 음악적 협업이 가능한 공동체 정신을 공유한 집단에 속한다. 시나위의 즉흥성은 악기라는 매개물을 통해 개인의 삶을 통한 음악 만들기의 창조적 역량이 발휘되는 장이다. 그리고 합주를 통하여 개인의 음악적 다양성이 하나로 융합되는 시공간이 시나위이다. 경기시나위오케스트라의 '신(新), 시나위' 공연을 보면서 시나위의 전통적 개념과 미래적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6편의 작품은 음악감독이 '창작'한 작품이 아니라 음악감독과 연주자들이 함께 모색한 '공동체 음악 만들기'의 결과였다. 그러다보니 연주자들의 개성과 음악적 역량이 맘껏 드러날 수 있었다.이런 점에서 개인의 솔로 연주를 부각시키면서도 시나위적 합주의 조화를 추구한 'DO-시나위'의 무대는 시나위의 기본정신에 부합하는 음악이었다. '시나브로 위'의 '무위(無爲)시나위'는 시나위의 종교성과 음악성을 잘 표현했다. '고뇌-무상-자유'의 불교적 테마가 법고춤, 싱잉볼(singing bowl), 생황 등의 불교음악적 요소와 어우러진 시나위의 조화는 무교와 불교의 불가분의 관계를 음악적으로 녹여냈다. 악기의 반복적인 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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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인천시립극단 창작극 프로젝트 '거대한 뿌리' 지면기사
굴절된 현대사속 김수영의 삶 그려혁명·쿠데타 등 고통의 시절 공감예리한 풍자 탁월 박근형 객원연출이범우 등 배우들 호연에 관객 갈채인천시립극단이 정기적으로 진행 중인 '창작극 프로젝트'의 네 번째 결과물로 관객과 만난 '거대한 뿌리'가 지난 8일 막을 내렸다. 8월 31일부터 인천문화예술회관 소공연장에서 시작된 공연의 마지막 무대였다.김수영(1921~1968)이 쓴 시의 제목이기도 한 '거대한 뿌리'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노래한 김 시인의 삶을 그렸다. 인천시립극단은 극작가 겸 연출가인 박근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객원연출로 초빙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가 담긴 창작극을 완성했다. 예리한 현실풍자와 조롱으로 충격을 던지며 한국사회 문제들을 날카롭게 진단해 왔던 박근형 연출과 인천시립극단의 만남은 공연 전부터 연극팬들의 관심을 끌었다.이 작품은 1968년 6월 15일 늦은 밤 교통사고를 당한 시인이 사경을 헤매는 몇 시간 동안을 담았다. 적십자병원 중환자실에 누운 그는 세상을 떠나기 까지 굴곡진 인생을 되돌아본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던 시기와 해방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 시작된 미 군정과 한국전쟁, 거제도 포로수용소의 경험,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시작된 현대사를 거쳐 마지막까지 그를 붙들고 있던 것은 4·19혁명의 정신이었다. 작품은 시인 김수영의 삶과 예술을 생생하게 압축해 표현했다. 그와 함께 굴절된 대한민국의 현대사도 무대 위에서 흥미롭게 펼쳐졌다. 지나간 역사가 아니라 현재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세대간, 지역간의 진통과 청산되지 못한 그릇된 역사를 떠올리게 만들었다.극에서 김수영은 "죽음을 눈 앞에 둔 지금 생각해보면 모든 게 다 부질 없는 세월이었다. 그러나 3·15 부정선거에 맞서 시위를 하던 김주열 학생이 최루탄이 눈에 박힌 채 마산 앞 바다에 떠오르자 시대와 반역의 세월에 분노하며 울분을 토했던 1960년은 내 인생에 가장 뜨거웠던 인생의 황금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돌아본다.그 후 김수영은 현실과 정치를 직시하는 적극적인 태도로 문학을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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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경기도문화의전당 '2019 단원창작 프로젝트-턴어라운드' 지면기사
"그날도 아침 8시에 일어나기 힘든 몸 상태였다."한 여인이 대사를 읊으며 무대에 등장한다. 꿈과 현실을 오가는 내레이션을 늘어놓는다. 그런데 관객들은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그 의미를 이해한다. 여인을 둘러싼 다른 여자들이 일렬로 서서 줄곧 따라다니며, 동작을 만들기 때문이다. 마치 주인공의 심리를 몸으로 묘사하듯이.연극인지 무용인지 구분이 안가는 이 작품은 경기도립무용단의 단원 김혜연이 만든 '상태가 형태'다. 지난 달 30~31일 경기도문화의전당 소극장에서 열린 '2019 단원창작 프로젝트-턴어라운드'에서 김용범·이주애 단원도 각각 안무작을 선보였다. 춤언어의 경계를 파괴한 신선한 도전들이었다. '턴어라운드'는 단원에게 안무의 기회를 주었다는 점 외에도, 한국전통춤을 춤언어로 사용하는 무용단에서 실험적인 작품을 선보인 것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몇가지 질문들이 떠올랐다. 무용단원의 본업은 춤을 잘 추는데 있는데, 왜 안무를 했을까. 피아니스트에게 작곡을 맡긴 격이니 무리한 기획은 아니었을까. 답은 한마디로, 아니다. 춤을 만들어본 무용수는 표현에 있어서 그 깊이를 더 한다. 한편 안무가가 직접 춤을 출 줄 안다는 것은 엄청난 무기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아서 단원에게는 꼭 필요한 기회고, 무용단으로서는 꼭 수행해야하는 과제이다. 훌륭한 무용수는 넘쳐나는데, 정작 연출과 제작을 모두 아울러 고민할 줄 아는 안무가가 부족한 우리의 현실속에서 안무가 양성을 위한 필수 프로젝트다. 비록 초연에서 완성작을 기대하기 어렵더라도 미래의 레퍼토리를 개발한다는 차원에서 마음껏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세계적인 안무가의 대부분은 무용수 출신이다. 단원들에게 주어진 작은 일탈이 훗날 커다란 부메랑이 되어 멋지게 돌아올 것이다. /장인주 무용평론가장인주 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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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독일 드레스덴 필하모닉 인천 콘서트 지면기사
교향곡등 명쾌한 표현 이끌며 오케스트라 앙상블과 하나된 '마지막 무대''현의 여제' 피셔 현란함·부드러움… 다양한 활 놀림 협연 '커튼콜' 잇따라 독일 남동부의 명문 오케스트라인 드레스덴 필하모닉. 드레스덴 필과 8년을 함께 한 수석 지휘자 미하엘 잔데를링의 고별 무대가 7일 오후 아트센터 인천(ACI) 콘서트홀에서 개최됐다.잔데를링은 이번 공연을 앞두고 "7월 한국 공연을 마지막으로, 20년 동안 쉴 틈 없이 달려온 음악 인생의 휴식기이자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슈베르트 '교향곡 8번, 미완성'과 베토벤 '교향곡 5번, 운명',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협연·율리아 피셔)을 선보인 잔데를링과 드레스덴 필은 자신들의 매력을 유감없이 발산하며 공연장을 찾은 인천의 음악팬들을 열광시켰다. 드레스덴 필은 특유의 중후한 사운드를 뽐냈다. '미완성 교향곡' 1악장 저현의 피아니시모에 의한 개시 이후 1주제의 제시까지 유장한 현의 선율에 기반을 둔 균형감 잡힌 악기군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 잔데를링은 적절하게 설정한 템포에 특유의 맨 손 지휘로 표정을 입혔다. 지휘자의 지시에 오케스트라의 반응도 매우 빠르고 정확했다. 이날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끌어올리기 충분했다.'운명 교향곡' 첫 악장은 빽빽한 악상으로 인해 지휘자의 개성이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 잔데를링은 유명한 '운명의 동기'에서부터 음의 여운을 최대한 차단했다. 전개부에선 묵직한 저현에 목관의 아기자기한 어우러짐을 통해 곡의 구조를 선명하게 해주었으며, 듣는 재미도 배가시켰다. 2악장에서도 서정성을 강조한 많은 연주들과 거리를 뒀다. 1악장의 변형된 4음 모티브가 3악장의 시작을 알렸다. 지휘자의 뛰어난 음 배분과 크레센도의 가감은 빼어난 오케스트라의 앙상블과 일체됐다. 특히 4악장을 암시하는 금관의 팡파르와 더블 베이스의 정확한 운지는 작품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종지없이 현의 트레몰로로 이어지는 4악장. 금관의 포효와 어우러진 오케스트라는 베토벤의 뜨겁고 힘찬 웅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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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대한민국연극제 참가 극단 십년후의 '냄비' 지면기사
인천 대표로 경연무대 펼쳐군인·운전사·배우·기자…정치·언론등 다양한 인물들월드컵 보러 주점에 오는데사회 모순·혼란 극복해야만미래가 있음을 에둘러 표현제37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인천 대표로 참가한 극단 십년후의 경연 무대가 16일 오후 4시와 7시30분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졌다.극단 십년후는 올해 연극제 무대에 한국 근대사의 사건들을 모아서 마치 잡탕 찌개처럼 끓여낸 '냄비'(김명화 작, 송용일 연출)를 올렸다. 오후 7시30분 공연에 맞춰 찾은 공연장의 무대는 찌개를 주 메뉴로 하는 주점 '냄비'로 꾸며졌다. 이 곳은 서울에서 1시간 여 정도 거리의 경기도 어느 미군 부대 근처 변두리 술집이다. 원형 식탁 5개와 의자들이 있다. 무대 좌우에는 큰 나무가 있으며, 주점의 뒤 배경에도 여러 그루의 나무가 보인다. 주점의 앞쪽 무대는 어두운 숲을 지나 주점으로 오고 가는 길로 설정됐다. 시간적 배경은 월드컵이 한창인 때이다.등장 인물은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노인과 미군 부대에서 근무하는 젊은 군인들, 변두리 극장의 연출가와 배우, 문화부 기자, 스파르타 학원 강사와 선거 후보자, 지역구 국회의원의 운전기사와 군수의 측근 등으로 다채롭다.정치, 교육, 언론, 문화 분야를 의미하는 인물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주점 '냄비'(우리 사회)에서 술을 마시며 시끄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주점으로 향하던 여배우는 길에서 한 소녀를 만난다.등장인물(혹은 그의 지인)들은 1949년 좌익세력에 대한 통제와 회유를 목적으로 조직된 국민보도연맹, 2002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압사당했던 여중생 2명, 1987년 구로구청 부정선거 항의 점거 농성사건 등과 연관돼 있다.작품은 현재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모습과 함께 수십 년이 지났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주점에서 나누는 대화로 불러낸다. 이 또한 월드컵이라는 스포츠 이벤트에 묻힐 수 있는 상황이다.작품은 작은 사건들이 모여서 큰 사건으로 마무리되는 구조다. 술을 마시며 월드컵을 보기 위해 주점을 찾았다가 떠든다고 핀잔을 듣고 쫓겨난 젊은 군인 중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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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선우예권 첫 전국 리사이틀 투어 '나의 클라라' 수원 공연 지면기사
노투르노 바장조등 슈만 작품 조명다양한 사랑의 감정 차분히 풀어내브람스 곡에선 '기교·격렬함' 선사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그가 등장하자 객석에서는 박수갈채가 쏟아져 나왔다.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자 객석의 시선은 그의 손가락에 집중됐다. 차분하게 연주되는 그의 음표는 자유롭게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그려냈다. 사랑을 노래하기도 하고, 아픔과 애통함을 그리기도 했다. 흑백의 건반 위, 그의 열 손가락이 그려낸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는 관객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물했다.지난 18일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의 첫 전국 리사이틀 투어 '나의 클라라'가 수원SK아트리움 대공연장에서 열렸다. 이날 선우예권은 앙코르 무대까지 포함한 110분 동안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이며 국내 음악 팬을 사로잡았다. 클라라 슈만을 조명하는 색다른 레퍼토리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그는 특유의 차분함으로 곡을 풀어나갔고, 관객들은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그는 가장 먼저 클라라 슈만이 1836년에 작곡한 '노투르노 바장조'를 연주했다. 기존 클래식 무대에서 접하기 힘든 클라라 슈만의 곡을 조명한다는 점에서 관객의 이목이 선우예권의 손에 집중됐다. 그는 악장에 흐르는 슬프고 애절한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손가락으로 섬세한 감정을 그려내며 곡을 이끌어나갔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없는 괴로움 속에서 작곡가가 담아낸 슬픔에 젖은 멜로디를 깊이 있게 표현했다. 이어 그는 클라라의 남편이었던 로베르트 슈만이 아내에 대한 사랑을 정열적 선율로 표현한 '판타지 다장조'를 연주하며 관객의 귀를 사로잡았다. 대부분 슈만의 작품에는 곡의 아름다움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 이를 끄집어내기 힘들다는 평이 있지만, 선우예권은 구조와 형식보다 '사랑'의 감정에 중점을 둔 작곡가의 내면 세계를 섬세하게 읽어내며, 사랑을 갈구하는 아픔과 쓰라림, 애통함을 연주했다. 마지막은 브람스 '피아노 소나타 3번 바단조'였다. 브람스가 슈만과 머물던 1853년 완성한 이 작품은 까다로운 기교와 격렬한 연주가 매력적인 곡이다. 앞서 특별한 강약 없이 연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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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인천시립교향악단 올해 첫 정기연주회 지면기사
채재일, 모차르트 클라리넷 협주곡 풍부한 선율 매료교향곡 5번 적극적 기조로 다가선 1악장 설득력 얻어거대한 작품 '묘미' 알리려는 이병욱 감독 의도 해석다소 과장되게 전해진 부분도 있지만 '환호' 이끌어내인천시립교향악단(예술감독·이병욱)의 올해 첫 정기연주회가 지난 5일 저녁 아트센터 인천에서 개최됐다. 3·1 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초에 있었던 인천시립예술단의 합동 공연으로 인해 예년보다 다소 늦어진 인천시향의 이번 연주회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있을 2019 교향악축제 무대를 대비한 것이기도 했다. 이번 공연의 메인인 말러 '교향곡 5번'으로 교향악축제 무대를 장식할 예정이며, 아트센터 인천을 택한 것도 서울 공연을 앞두고 자신들에게 익숙한 문화예술회관이 아닌 다른 무대에서 청중과 만나려는 것이었다.이병욱 감독의 지휘봉이 움직이자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 K.622'가 시작됐다. 인천시향의 정돈된 현의 선율이 공연장을 메웠다. 국내 정상급 클라리넷 주자 채재일이 연주하는 1악장 1주제 또한 적절한 타이밍과 리듬으로 구현됐다. 이 감독과 인천시향도 솔리스트를 배려하며 세밀하게 서포트했다. 영화음악에도 삽입돼 유명한 2악장에서 채재일은 클라리넷 최저음의 음역대를 충분히 울리면서 풍부한 뉘앙스로 곡에 다채로운 표정을 부여했다. 독주자와 오케스트라가 주고받는 대화에선 인천시향 목관주자들의 밝은 색채가 곡에 아기자기함을 불어넣기도 했다. 3악장에서도 독주자는 상체에 반동을 주면서 여러 방식으로 노래했다. 높고 낮음의 음역에 따라 음색과 표현 또한 바뀌면서 모차르트 목관 음악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알려줬다. 유명한 트럼펫 솔로에 의한 셋 잇단 음으로 말러의 5번 교향곡이 시작됐다. 이 셋 잇단 음은 '운명 교향곡'의 동기와 박자 면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성격은 다르다. '운명'에선 상당히 도전적이지만, 말러의 경우는 단지 체념적이며 비관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이 감독과 인천시향의 시작은 '운명'과 닮아 있었다. 얼마 전부터 해외 지휘자들이 주로 선택하는 '담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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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경기도립국악단 k-오케스트라 챌린지 지면기사
전 세계 작곡가에 '창작곡' 공모여섯 곡 전곡 초연, 새로운 도전하와이대 교수의 가야금 협주등韓전통음악 '완성도+특색' 무대도립국악단 '저력 확인'도 성과경기도립국악단은 지난 17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 여섯 곡 전곡 초연이라는 자칫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완성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전 세계 작곡가를 대상으로 국악관현악 창작곡 공모를 진행하는 획기적인 아이디로 진행되었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경기도립국악단은 선정된 여섯 곡을 하나씩 차분히 초연했다. 2시간을 초집중 연주를 끝낸 연주 단원들은 발그레한 볼과 흥분된 표정으로 빙그레 웃었고, 함께한 동지들만이 느끼는 행복한 기운이 객석으로도 전해졌다. 힘든 고비는 뿌듯한 성취감을 선사한다는 불변의 이치를 확인했다. 이번 음악회의 성과는 크게 둘이다. 먼저 K-POP, K-드라마가 중심이 되는 소비중심의 한류 열풍이 예술 음악으로, 특히 한국전통음악 관현악 음악으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이번 사업으로 세계의 작곡가들이 한국전통음악 오케스트라에 관심을 갖고 한국음악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조만간 서양 현대음악계에도 한국음악의 미학과 매력이 소개될 전초전이 되기 때문에 상당한 의미가 있다. 초연된 여섯 곡의 음악이 모두 특색이 있어서 좋았던 음악회이다. 하와이대학교 교수인 작곡가 Donald Womack(도널드 워맥)과 Thomas Osborne(토마스 오스본)의 한국음악 사랑은 고스란히 음악 속에 담겨있었다. 토마스 오스본의 거문고 협주곡 '환생'은 거문고를 사랑하는 작곡가의 마음을 담은 곡이다. 논리적인 점층적 구조의 관현악 속에서 넘나드는 거문고 연주자 허익수(추계예대 교수)의 연주가 압권이었다. 한국 사람보다 한국음악에 대한 이해가 높은 해외 작곡가 도널드 워맥의 가야금 협주곡 '무노리(Mu Nori)'는 한국의 무속 장단과 에너지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응집된 장단과 에너지의 폭발을 국악관현악과 가야금으로 실현하였다. 가야금 연주자 정길선의 작고 가녀린 왼손은 다소 과하다 싶게 강한 농현으로 모든 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