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더욱 그렇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사람이 여럿 나왔다. 4년 전 이맘때엔 '남경필' 대 '이재명·전해철'로 선택이 간소했는데, 지금은 굳이 비교하자면 뷔페 수준이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대선에 출마했던 김동연 전 부총리를 비롯해 경기도 터줏대감이자 민주당 5선 중진인 적폐 해결사 안민석 의원과 정책통 조정식 의원, 지방자치 전문가인 염태영 전 수원시장이 파란 점퍼를 입었다. 국민의힘에선 대선 단골 후보인 경제전문가 유승민 전 의원을 비롯해 이재명 저격수로 불리며 윤핵관으로도 인지도를 높인 철의 여인 김은혜 의원, 국회부의장 출신 심재철 전 의원과 정책위의장을 거친 함진규 전 의원도 후보 명함을 팠다. 이밖에 가로세로연구소로 연일 화제(?)인 강용석 변호사와 걸어온 인생이 진보이자 노동운동이 된 송영주 진보당 후보도 있다. 10여 명이 넘는 후보들이 진을 쳤기에 여론조사 기관들도 역대급 애로를 호소할 정도다.
10여명 넘는 다양한 여야후보들 도지사 출마
입장 발표·출마 선언 경기도 아닌 서울서만
눈에 띄는 정책도 없어 기대감 조금씩 줄어
달라진 점은 또 있다. 서른 살이 넘는 지방자치 시대 경기도의 대표를 뽑는 선거인데, 경기도가 실종됐다. 이유를 찾고자 10일 전송된 선거 문자를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
민주당 출마예정자 조정식 의원 측 문자다. 경선룰과 관련해 입장발표를 한다는 안내다. 장소가 서울이다. 안민석 의원도 단일화 제안 등을 도민에게 알리는 회견을 했는데, 역시 장소가 서울이었다.
시계를 돌려 유력 주자들의 출마선언을 되짚어 보자. 경기도와 국회를 찾아 두 차례 출마선언을 하는 게 그동안의 정석이다. 물론 지방선거의 출마를 국회에서 알리는 데에 대한 불편한 시각도 있지만,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다. 그런데 국민의힘 소속 유승민 전 의원과 김은혜 의원은 아예 국회에서만 출마를 선언했다. 이들 의원 측에 이 같은 해괴한 상황을 여쭸더니 '편의상'이었다며 양해를 구한다. 도민의 입장으로서 자존심이 조금 상한다.
4년 전 선거에서는 이런 경우가 없었다. 이재명과 남경필은 경기도 남북을 옮겨가며 치열하게 싸웠다. 8년 전도 12년 전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전 지사는 2017년 성남시장 시절 성남시 중원구 상대원동 오리엔트 시계공장에서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남경필 전 지사도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자 수원 팔달문에서 자신의 정치 행보를 알린 적이 많다.
정치공학 거두고 '경기도에 대한 고민부터'
시대의 변화도 아니다. 유독 이번 경기도만 이렇다. 경기도를 실종시킨 것은 경기도지사 후보들이다. 안민석이 오산천에서, 조정식이 갯골에서 도민들에게 마음과 방향을 밝힐 수 있는 게 지방선거다.
그렇다 보니 경기도지사 후보들의 정책도 눈에 띄는 게 없다. 마음은 경기도지사에 있지만, 몸은 서울로 향하는 후보들에 대한 기대감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차린 건 많은데, 먹을 게 없더라'.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를 바라보는 한 정치인의 평이다. 출마에 대한 고민만큼 경기도를 위한 고민을 했다면, 역대급 경기도지사 선거에 대한 초반 관전평이 이렇진 않았을 것이다. 경기도가 실종신고 됐다. 후보들은 정치공학은 그만 살피고, 경기도에 대한 고민부터 했으면 한다. 경기도를 찾아야 하는 것도, 경기도에 대한 포부를 밝힌 후보들 몫이다.
/김태성 정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