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원식 국회의장이 국회 개헌특위를 구성해 조기 대선과 개헌 투표를 함께 진행하자고 제안한 뒤 정국은 ‘개헌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우 의장이 쏘아 올린 개헌론은 조기 대선 일정이 확정되면서 찬반 양론이 더욱 선명해졌다. 6·3 대선과 개헌을 맞추려면 시간이 촉박하다. 대통령 4년 중임제로의 권력구조 개편이 대세이지만,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내란 종식이 우선이라며 부정적이다. 반면 국민의힘 그리고 민주당 비주류 대권 주자들은 일제히 호응하고 있다.
개헌론을 두고 여야 신경전이 치열하지만, 개헌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여야 간 이견이 크지 않아 보인다. 국민 여론도 개헌에 우호적인 분위기다. 국민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후 탄핵되기까지 전 과정을 지켜봤다. 제왕적 대통령제 아래 비상식적 권력 행사가 이뤄진 것을 목도하면서 헌법 개정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의 공감대가 확산됐다. 개헌을 하느냐 마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쟁점은 개헌 추진 시기로 좁혀진다.
우원식 의장이 제안한 개헌 프로세스는 무엇보다 시간이 촉박하다. 이 대표가 조기 대선과 개헌 투표 동시 실시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표명해 국회 개헌특위 구성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개헌특위가 열린다면 개헌안·국민투표안 공고 일정을 감안하면 대선 투표일 38일 전까지 여야 합의안이 도출돼야 한다. 이번 주 중 개헌특위가 구성된다고 해도 2주 정도의 시간만 남아 있다.
개헌에 동의하면서도 뒤로 미루는 이 대표를 겨냥해 여야 대권주자들이 개헌을 합창하며 ‘반(反) 이재명 전선’을 구축하는 흐름이다. 선거공학 측면에서 유효할지 모르지만 개헌의 의미를 희석하는 결과를 낳을까봐 걱정이다. ‘87년 체제’의 극복이라는 개헌의 명분과 이유에서 벗어나 여야가 선거 유불리만 따진다면 개헌 논의는 헛돌게 된다.
노무현,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임기 중 개헌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문재인 정부는 “많은 정치인이 개헌을 말하고 약속했지만, 진심으로 의지를 가지고 노력한 분은 적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노무현 정부는 “이번 개헌을 둘러싼 정치권의 태도를 보면 대의는 간 곳이 없고 오로지 정략과 타산만 있었다”며 한탄했다. 선거 의제용 개헌 논의를 경계해야 한다. 정치권이 개헌을 대선 정략용으로 오용하면, 87년 체제 극복은 요원해진다.
/경인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