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은 연출가다. 그가 연출한 ‘푸르른 날에’는, 5월이면 만날 수 있다. 5년이나 계속되고 있다. 해마다 5·18 즈음이면, 더욱더 많은 사람의 ‘심금(心琴)을 울린다’. 이렇게 신파적인 표현을 쓰는 게 옳다. 고선웅의 작품들은 신파적인 내용과 신파적인 연기로 채워진다. 푸르른 날에’의 주인공 여산과 정혜가 그렇다. 광주민주화운동이란 역사적 사실을 지워버린다면, 그들의 사랑은 통속극에서 많이 본 사랑이다. 고선웅이 연출한 ‘홍도’는 ‘화류비련극’을 표방한다. 더 이상 신파적이고, 통속적인 사랑이 또 어디 있으랴!

이런 신파와 통속 사이에서, 고선웅의 연출적 미덕은 다음 두 가지를 통해 빛난다. 첫째, 개인적 사랑이 시대적 아픔과 잘 연결된다. ‘푸르른 날에’도 그렇고 ‘홍도’도 그렇다. 그들은 결국 시대의 희생양처럼 다가온다. 둘째, 고선웅은 음악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다. 연극 ‘푸르른 날에’의 테마곡인 ‘푸르른 날’(1983)은 노래다. 서정주의 시에 송창식이 곡을 붙였다. 이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듣는 ‘푸르른 날에’는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린다. 서정주시인 하면 친일만을 연결하면서 사람들도, 이 작품의 ‘푸르른 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5·18 하면 ‘민중가요’만을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음악을 통한 의식적 기반을 넓혀주었다.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5·18 당시 광주 시민군 음악으로 거듭날 줄 누가 알았으랴! 폴 앵카의 ‘Diana’를 어설프게 부르면서 놀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서, 가슴 저려오는 연민을 느끼게 될 줄 어찌 알았으랴! 이런 노래들은 배우들이 목청껏 소리 지르며 낭독하는 ‘학살 2’와 함께, 뼈저리게 한다. 이런 고선웅이 뮤지컬 ‘아리랑’을 연출한다고 한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을 바탕으로, 뮤지컬 극작까지 연출한다.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앞으로 지구상에서 없어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나라란 얘기를 들었는가? 국가의 인구가 점차 급격히 감소하는 것과 강대국의 세력다툼에 놓여 있는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서 그렇단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탠다면, 대한민국만의 ‘토종’이 점차 없어진다는 걸 덧붙여야 하리라.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은 영원하리라고 믿는다. ‘아리랑’이 있는 한 그렇다. 그러하기에 뮤지컬 ‘아리랑’에 기대하는 바 크다. 지금까지 아리랑과 관련된 콘텐츠는 참 많았다. 그러나 대개 민족과 역사, 그 시류에 편승한 작품이었다. 차라리 ‘통속적’이었다면 국민들의 가슴에라도 심금을 울렸을 것을, 어설피 ‘민족적’으로 만들어진 작품이기에 그저 행사성 내지 일회성에 묻혀 버렸다.

연극 ‘푸르른 날에’는 올해 공연을 끝으로, 내년부터는 새로운 배우가 참여한단다. 그럼에도 ‘푸르른 날에’의 음악은 변함없을 것이다. 고선웅이 연출하는 뮤지컬 ‘아리랑’을 기대한다. 고선웅이 연출한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는 창극의 공연사에서 전회매진이라는 흥행기록을 수립해 나가고 있다. 누구는 흥행성, 누구는 작품성을 논하지만, 나는 이 연출가가 ‘창극’ 곧 ‘판소리’를 존중하고 잘 살리는 연출가라는 점을 크게 바라보고 있다. 뮤지컬 ‘아리랑’에서도 전통적인 노래가 잘 살아 숨쉬길 기대한다. 창극배우 이소연이 나오고, 국악을 아는 작곡가 김대성이 참여한다. 이 작품 속에서 모두 그들의 역량이 발휘되길 바란다. 뮤지컬이 급성장하는 대한민국에서, 뮤지컬 ‘아리랑’이 명실상부한 ‘토종’ 뮤지컬의 기반이 되길 바란다.

/윤중강 평론가·연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