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삶을 유지하는 조건
아들의 '1형 당뇨' 진단… 혈당관리 분투가까이 사는 친정엄마·경제력 뒷받침에감사하며 살지만 왠지 모를 서글픔 생겨'엄마 보호자' 된 8살… 병실서 수발 들어공부시간 빼고 둘이 하나처럼 시간 공유"노래하고 싶어" 내뱉고 밀려오던 원망정보·대체 인력·비용적 여유 '핵심 요소'인식조사 1천명 중 "준비 안돼" 응답 73% 하나라도 없다면 '가족 삶' 송두리째 흔들가족돌봄청년 주당 평균 21.6시간 돌봄'영케어러 삶' 일반 청년보다 2배 불만족사회진출 등 '미래 포기' 정서적 불안감
다음은 김은희(가명·40대 초반)씨, 이정민(가명·20대초반)씨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논픽션'입니다.
■ '시간 빈곤'"엄마, 나 몸이 이상한 거 같아." 2021년, 초등학교 3학년인 준서(가명)의 몸무게가 불과 일주일 사이 10kg이나 빠졌다. 저녁을 준비하는 사이 아이가 쓰러졌다. 의사는 준서에게 '1형 당뇨'를 진단했다.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되지 않는 희귀 난치성 질환, 평생 관리하며 살아가야 하는 병. 내가 흔들리면 준서의 삶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뒷목이 서늘해졌다. 갑자기 찾아온 불행이 내 아들의, 우리 가족의 일상을 무너뜨리게 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아들과 나, 그리고 친정엄마의 시선이 나란히 한 곳에 꽂혔다. 노트북에 펼쳐진 혈당 차트 속 그래프가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5분 마다 업데이트되는 차트를 보며 머릿속으로 모든 경우의 수를 계산했다. "엄마, 여기 잘 봐. 이럴 때는 오렌지 주스야. 내가 카톡으로 '주입' 이렇게 보내면 여기까지 한 칸만 먹이는 거야. 준서도 똑바로 잘 들어. 할머니도 없고 엄마랑 아빠 회사에 가 있을 때 학교에서는 준서가 혼자서 해내야 해."회사 연구실에서 일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5분에 한 번씩 차트를 보며 준서의 혈당을 체크한다. 외출할 때면 풀충전된 배터리, aa 건전지 여유분, 트레시바, 글루카곤, 알코올 스왑 등을 챙긴다.24시간 머릿속에서는 계산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누구나·언젠가' 속절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 장사는 없습니다. 젊은 시절의 건강한 신체는 나이를 먹을수록 쇠약해지고, 질병에 취약한 몸이 됩니다. 신체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누구도 없습니다. 그리고 내 가족도 노쇠할 수밖에 없고 아플 수 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아픈 가족을 간병하는 일의 1차적인 책임은 늘 그 가족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누구나, 언젠가는 가족 간병의 책임을 맡아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이죠. 자녀를 간병하는 1편의 김은희(가명·40대초반)씨와 초등학교 1학년부터 20대가 된 지금까지 어머니를 간병하는 2편의 이정민(가명·20대초반)씨 이야기는 어쩌면 지금 기사를 읽고있는 당신의 '현실'에 잘 와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들을 겪지 않을 확률이 더 높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 3편에 소개한 60대의 최명숙씨와 80대 중반의 김정희씨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대단히 현실로 다가옵니다. 특히 이들 가족간병인은 중장년층·노년층이 노년환자를 돌보는 '노노(老老) 간병'이라는 점에서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시급하게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적절한 태도일 것입니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자료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의 노년층 인구는 2022년 기준 전체의 17.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예상이 맞다면 2025년에는 노년층이 전체 인구의 20.3%를 달성해 대한민국은 초고령사회가 되고 2050년엔 40.1%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이렇게 노년 인구비율이 늘어나면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노노간병 현상은 더욱 일반화될 것입니다. 노노간병은 독특한 특징을 가집니다. 부양부담을 오롯이 홀로 짊어지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로인해 일상이 무너지고 경제적·사회적 고립의 위기에 처해도 누구를 원망하거나 어딘가에 도움을 청할 엄두도 내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난 명숙씨와 정희씨도 직접 간병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무장돼 있었습니다. 피할 생각조차 없어보였습니다. 아마도 명숙씨와 정희씨가
'누구나·언젠가' 누구나 아플 수 있습니다. 또 누구나 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게 '언제'라는 시점조차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일들이 '예고'하고 찾아오지 않기 때문이죠. 갑자기, 불시에,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와 평범하고 평온했던 우리의 일상을 깨버립니다. 그렇기에 가족을 간병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선 사례들처럼 젊은 시절 운좋게 경험하지 않았더라도 결국에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니 나이가 들 것이고, 그래서 아프고 결국엔 죽게 되니까요. 그게 나의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남편이든, 아내든 말입니다. 흔히 '노노(老老)간병'이라 일컬어지는 2명의 가족간병인을 만났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간병의 고통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닙니다. 가족간병은 우리 모두의 문제입니다. 다음은 최명숙(가명·64세)씨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논픽션'입니다. # scene1. 부모님은 참 단란한 부부였다. 어딜가도 늘 '정정하다'는 말을 들었다. 90세가 넘는 나이에도 서로 사랑하고 의지하며 도란도란 사는 모습에 안심했다. 어쩌면 나는 알면서도 몰랐다. 세월의 무게가 부모님만은 비껴갈 것 같았다. 아버지의 기력이 떨어지며 어머니가 아버지를 돌보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했다. 자식이 4명이나 있었지만 무엇도 바라지 않았다. 어머니의 헌신 덕에 우리 4남매는 각자의 삶을 살았다. 연로한 어머니 혼자 아픈 아버지를 간병한다는 게 늘 마음에 걸렸지만, 사는 게 바빠 그러려니 했다. 그만큼 어머니의 존재는 컸다. 어머니 덕에 '나의 일상'이 유지되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 scene2. 2018년, 어머니가 쓰러졌다. 어머니는 '뇌경색'이었다. '좌측 편마비' 증상으로 어머니는 누군가의 돌봄 없이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환자가 됐다. 오랜 시간 아버지를 돌봤던 어머니는 이제 간병의 대상이 됐다. 어머니의 입원과 아버지의 간병이 동시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4남매 중 누군가는 간병을 맡아야 했다. 건강이 좋지 않
# 다음은 이정민(가명·20대 초반)씨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논픽션'입니다. '간병 약자' 사전적인 의미는 '힘이 약한 사람', 사회적인 의미는 '소외된 자'. 남들보다 열악한 위치에 있기에 아무리 노력해서 열심히 달려도 늘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 보입니다. 부당한 상황에 처해도 힘이 약하기에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고, 누구나 누려야할 기본적인 권리에서 소외되기 일쑤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건 이들에게 거리가 먼 일로만 다가옵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간병을 도맡은 '영 케어러' 이정민(가명)씨는 일찌감치 '약자'의 삶을 살아왔습니다. '어머니의 유일한 보호자'라는 타이틀은 정민씨에게 주어진 몫이었습니다. 어머니를 간병해야 하는 정민씨의 삶에서 자유롭게 교육받고 나의 진로를 고민하며 온전히 정체성을 형성할 권리는 주어지기 힘든 것입니다. 간병으로 인해 사회적 고립에 놓인 '간병약자' 정민씨에게 '선택할 자유'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자신의 삶은 없었고, 엄마의 보호자라는 타이틀만 정민씨를 압도했습니다. 그렇게 '간병약자'의 삶을 받아들이며 살아왔던 정민씨. 그랬던 그는 이제 스스로가 선택해 만들어갈 '자신만의 삶'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scene1. 엄마가 쓰러졌다. 초등학교 1학년, 그러니깐 내가 8살 때 갑자기 들이닥친 일이다. 엄마는 담도가 기형이라 담즙을 제대로 배출하지 못해 계속해서 몸속에 염증이 쌓이는 유전병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병상에 누워 있는 엄마에게 말했다. “염증 수치가 높아서 패혈증이 왔어요, 심장 판막 수술을 해야 돼요." 겨우 정신을 차린 엄마는 생사기로에 놓인 위중한 환자였다. 우리 가족은 엄마와 나, 단둘인데…. 초등학교 1학년, 이제 고작 8살인 나는 그날 이후 엄마의 '보호자'가 됐다. 엄마는 수술 후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엄마의 대소변을 받고, 땡땡 부은 팔다리를 주무르고, 밥을 챙겼다. 엄마를 휠체어에 앉히는 것 같이 힘쓰는 일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일을 했다. 엄마는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나를 찾았다.
'간병 약자' 국가와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차별받아 기본적인 권리조차 누리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사회적 약자가 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신체적인 장애, 경제적 빈곤, 문화적 차이…. 우와 열이 생기는 인간사에서 약자가 생겨나는 건 어찌보면 세상의 자연스러운 이치일지 모르죠. 그럼에도 우리가 사회적 약자를 살펴보고 돌보는 건, 어쩔수 없이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적 약점을 공동체가 함께 고민하고 보완하면 건강한 삶을 다같이 누릴 수 있기 때문이죠. 1편에서 가족 간병과 일상이 서로 공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이야기했습니다. 질병과 지원책에 대한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정보 우위력', 언제든 환자를 돌볼 수 있는 '돌봄 인력', 가감 없이 의료비를 지출할 수 있는 '경제적인 여유' 등 세 가지를 꼽았습니다. 이는 '1형 당뇨'를 앓는 초등학생 자녀를 둔 김은희(가명·40대 초반)씨가 비록 '시간 빈곤'에 처했음에도 최소한의 일상과 간병을 양립할 수 있었던 건 세 조건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반면 우리가 만난 이정민(가명·20대 초반)씨는 가족 간병과 일상의 공존이 불가능한, 즉 '경제적인 여유', '돌봄 인력', '정보 우위력' 이 세 가지를 충족시키지 못한 가족 간병인입니다. 우리는 이정민씨와 같은 가족간병인을 '간병 약자'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가족 간병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가 되고 사회적 고립상태에 놓이기 때문입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 가족간병인은 환자에게 적절한 의료서비스와 간병인 서비스 등을 제공하지 못합니다. 주변에 환자를 함께 돌볼 수 있는 돌봄 인력이 없다면 간병을 도맡은 간병약자는 온전히 환자에게만 자신의 시간을 쏟아내야 합니다. 간병에 시간과 노력을 쏟는 동안 사회경제적 활동은 점저 더 불가능해지고 환자의 상태·간병 등에 대한 정보력도 떨어지게 됩니다. 점점 더 빈곤해지고, 간병으로 인한 스트레스 역시 커집니다. 그야말로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점점 사회로부터 고립됩니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주목받고 있는 가족돌봄청소년·청년(
'시간 빈곤' 누구에게나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인데, 일할 때를 제외하고 온전하게 나를 위한 자유시간을 보내기 어려운 상황을 말합니다. 보통 돈이 있고 없고를 두고 빈곤하거나 풍요로움을 따지는데 시간에도 비슷한 개념을 적용한 것이죠. 모두에게 주어진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시간이 가난할 수도, 부유할 수도 있습니다. 준서의 어머니를 만나며 우리가 깨달은 점은 가족 간병이라는 굴레에서는 중산층도 '시간 빈곤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중산층에게는 '경제적 여유'라는 막강한 조건이 있긴 하나, 시간에 있어선 이들 역시 불평등하게 흘러갑니다. 가족 간병을 하지 않는 보통사람들과 비교해서 말이죠. 준서의 어머니이자 간병자, 김은희(가명·40대 초반)씨가 자신에게 주어진 간병의 조건에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론 막막함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소득이 보장되는 전문직 커리어를 유지하면서 가족 간병과 일상의 공존을 부단히 지켜내고 있지만, 그의 삶은 어딘가 여유가 없고 숨이 차 보였습니다. 지난달 27일 경인일보 취재진은 고양시 일산동구의 김은희씨 자택에 방문했습니다. 언뜻 보기엔 언론 등을 통해 으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족 간병 가정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습니다. 그저 평화로운 중산층 가정집과 다름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준서는 여느 초등학생들의 모습과 똑같았고, 취재진에게 인사를 하러 잠시 나왔다가 다시 영어 공부를 하러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인지 고개가 갸웃거려졌습니다. 하지만 대화가 깊어질수록 차츰 김은희씨의 삶이 고요 속 곧이어 몰아칠 태풍처럼 다가왔습니다. 김은희씨는 인터뷰하는 도중에도 5분에 한 번씩 스마트폰 속 차트를 확인했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멀티태스킹을 하듯 머릿속으로는 무언가를 계산하고 있는 듯 보였습니다. 그러다 심상치 않다 싶으면 서슴없이 준서에게로 가 '무언가'를 먹으라고 말한 뒤 다시 인터뷰 중인 식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무언가는 혈당을 곧바로 높이는 데 탁월한 오렌지 주스였습니다.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가만히 지켜
'10년' 초등학교 5학년, 부모님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할머니를 집에 모셔와 간병을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시작된 가족의 간병은 20대 성인이 돼서야 끝이 날 수 있었습니다. 간병은 가족의 시간과 연동돼 모두의 삶을 뒤바꿨습니다. 부모님의 일상은 할머니를 중심으로 돌아갔습니다. 할머니 곁에 항상 누군가 있어야 했고 잠깐 외출하더라도 집을 오래 비우지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가 치매까지 앓자 간병은 더욱 고됐습니다. 기저귀를 갈고, 씻기고, 식사를 챙기고, 때마다 병원을 모셔야 하는 모든 일이 어린 눈에도 버거웠습니다. 할머니를 향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시작한 간병이지만 지난한 돌봄에 부모님은 지쳐갔습니다. 일과 간병에 자녀 양육까지,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쉴새없이 들이닥쳤습니다. 만성적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였지만 해소할 처지가 되지 못했습니다. 결국 가족의 몸과 마음이 모두 소진되고 나서야, 어쩔 수 없이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습니다. 그렇게 10년을 간병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할머니를 잘 모시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가집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간병=가족', 우리 사회에 통용하는 이 당연한 명제에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삶이 파괴될 만큼의 무거운 책임을 감내하는 게 당연한가, 간병과 일상은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가. 마음 속 오래 품었던 그 의문의 해답을 찾기 위해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답을 찾는 여정에서 우리는 여러 연령, 다양한 상황에 놓인 가족간병인을 만났고 심층 인터뷰를 통해 '시간빈곤' '간병약자' '언젠가·누구나' '선택할 자유' 라는 공통의 주제를 찾았습니다. 모든 인터뷰를 1인칭 시점에 담은 건 언젠가 가족은 아플 것이고, 당신도 가족간병인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의 일'이라는 공감 아래, 기자들의 기억법 '밀려난 삶의 반: 가족간병과 나'를 시작합니다. #'반추'. 다음은 김은희(가명·40대 초반)씨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논픽션'입니다. '빈곤' 돈이 없다는 이유로 꿈을 포기하게 만드는 비참한 사회적
2018년 5월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출발해 목포신항으로 향하는 관광버스 안은 적막감만 감돌았다. 고요한 버스의 탑승자는 안산 고잔동 주민들과 세월호 유가족 등 20여명이다. 이들은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 선체를 보기 위해 함께 기행을 떠나는 길이었다. 4시간 내내 함께 타고 가면서도 누구 하나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조용히 각자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거나 눈을 감았다.지난해 7월, 5년 전처럼 버스는 안산에서 출발해 목포신항으로 달리고 있다. 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출발지인 화랑유원지 주차장에서부터 유가족과 주민들은 서로를 반기며 인사를 나눴다. 버스 안에서도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물으며 웃었다. 고잔동의 마을행사 일정이나 복지센터 프로그램 내용을 공유하기도 했다.
동네 곳곳에서 이뤄진 유가족과 주민들의 만남
이들의 버스 여행은 ‘목포기행’. 주민들과 유가족 사이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 여행을 통해 주민들은 세월호를 두 눈으로 보고, 유가족들의 이야기도 직접 들었다. ‘봉안시설에는 가족이 아닌 희생당한 아이들의 유해만 들어온다는 것’, ‘4·16생명안전공원 부지는 화랑유원지 전체가 아닌 일부라는 것’. 주민들은 소문으로 듣고 마음 속에 품었던 의문들이 대부분 오해라는 것을 확인했다.
기행에 참가했던 조은정 학생의 엄마 박정화씨는 “생명안전공원을 무조건 반대했던 주민들이 막상 세월호 선체를 보고 대화를 나누면 우리의 심정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았다”고 기행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줄 알았으면 화랑유원지 들어온다고 할 때 반대하지 말 걸 그랬다. - 목포기행에 참가했던 한 주민
목포기행을 기획한 건 단원고등학교 정문에서 30m 떨어진 곳에 있는 ‘고잔문화복지센터’다. 센터는 이름을 하나 더 갖고 있다. 힐링센터 0416쉼과힘. 2014년 9월, 명성교회와 연세대 대학원 상담코칭센터, 선부사회복지관이 협업해 문을 열었다. 세 기관이 힘을 합한 데는 이유가 있다. ‘공동체 회복’. 세월호 참사의 가장 가까운 목격자이자 간접적 피해자인 지역 주민을
안산주민·유가족 목포기행 동행
"공원 반대하지 말걸" 오해 확인인천선 생존자 참여 작품 전시회"도움 보답해야" 봉사활동 지속
2018년 5월 안산 화랑유원지에서 출발해 목포신항으로 향하는 관광버스 안은 적막감만 감돌았다. 고요한 버스의 탑승자는 안산 고잔동 주민들과 세월호 유가족 등 20여명이다. 이들은 뭍으로 올라온 세월호 선체를 보기 위해 함께 기행을 떠나는 길이었다. 4시간 내내 함께 타고 가면서도 누구 하나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 조용히 각자 자리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거나 눈을 감았다.지난해 7월, 5년 전처럼 버스는 안산에서 출발해 목포신항으로 달리고 있다.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출발지인 화랑유원지 주차장에서부터 유가족과 주민들은 서로를 반기며 인사를 나눴다. 버스 안에서도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안부를 물으며 웃었다. 고잔동의 마을행사 일정이나 복지센터 프로그램 내용을 공유하기도 했다.이들의 버스 여행은 '목포기행'. 주민들과 유가족 사이의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기획됐다. 이 여행을 통해 주민들은 세월호를 두 눈으로 보고, 유가족들의 이야기도 직접 들었다. "봉안시설에는 가족이 아닌 희생학생의 유해만 들어온다"거나 "4·16생명안전공원 부지는 화랑유원지 전체가 아닌 일부에 들어선다"는 설명이다. 주민들은 소문으로 듣고 마음 속에 품었던 의문 대부분이 오해라는 것을 확인했다. 기행에 참가했던 한 주민은 "이런 줄 알았으면 화랑유원지 들어온다고 할 때 반대하지 말 걸 그랬다"라고 뒤늦은 마음을 표했다.
일반인 희생자가 중심인 인천도 분위기는 비슷하다. 올해 2월 1일부터 15일까지 부평아트센터 갤러리꽃누리에서는 '그날의 사람들, 오늘의 이야기' 전시회가 열렸다.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이하·추모관)이 주최한 세월호 참사 10주기 기념전시회였다.세월호 생존자인 김병규씨를 포함한 제주시 생존자 7명, 경기도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희생자 가족 14명이 만든 작품 63점이 전시됐다.추모관은 개관 이후 지역사회와 호흡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했다. 안전포
고잔문화복지센터 '목포기행' 기획
명성교회·연세대·선부복지관 협력유가족-주민 안정 프로그램 다양예산문제 어려움에도 필요성 제기목포기행을 기획한 건 단원고등학교 정문에서 30m 떨어진 곳에 있는 '고잔문화복지센터'다. 2014년 9월, 명성교회와 연세대 대학원 상담코칭센터, 선부사회복지관이 협업해 문을 열었다. 세 기관이 힘을 합한 데는 이유가 있다. '공동체 회복'. 세월호 참사의 가장 가까운 목격자이자 간접적 피해자인 지역 주민을 돕기 위해서다. 더 깊게 들어가면, 유가족과 지역주민 사이에 생겨난 갈등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다.이렇게 유가족과 지역주민들 간 접점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안산 곳곳서 일어났다. 상록구 반월동에 거주하는 이연우씨는 참사 1년 후 지역아동센터서 열린 유가족 간담회에서 마르고 기력 없는 모습의 유가족을 만난 후 마음이 바뀌었다. 반월동에 사는 '엄마'들과 함께 매달 한번씩 분향소에 밥을 지어 보냈다. 또 마을 축제, 자치회 행사마다 유가족을 위한 부스를 마련했다. 마을에서 공방 수업을 열면 416공방에 부탁해 유가족들을 강사로 초청했다.고잔동에는 마을걷기 프로그램 '같이걷자'가 운영 중이다. 시민들은 마을해설사와 함께 고잔복지센터·원고잔공원·단원고등학교·화랑유원지 등 고잔동 곳곳을 돌며 세월호참사로 인해 달라진 마을에 대해 듣는다. 눈에 띄는 건 마을 해설사다. 참사 직후 단원고에서 6개월 동안 급식봉사를 한 향미씨와 참사로 아이를 잃고 또 아이가 생존한 지인을 모두 아는 용정씨 등 고잔동 주민 6명이 마을해설사로 나섰다.■ 공동체 회복 시급한데 줄어드는 예산유가족과 주민들이 스스로 관계개선에 노력한 건 피해자 보상, 기억교실 이전 등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지역사회의 갈등이 격화되며 공동체 회복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안산시민의 심리안정과 공동체 회복을 국가의 책임으로 의무화한 '세월호피해자지원법'을 제정했고 안산시도 2017년부터 '공동체회복 프로그램(희망마을사업)'을 본격 시행했다.이런 노력 덕에 안산 내 마을공동체 사업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