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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덕 남양주시 부시장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애국가 2절이다. 사시사철 푸르름으로 민족의 기상을 보여주는 소나무를 노래한 것이다. 우리 민족의 시원과 장구한 역사를 늘 함께 해 온 그 소나무가 지금 매우 큰 위험에 처해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애국가의 소나무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앞설 정도다. 바로, 소나무재선충병 탓이다.

일제 강점기 온갖 수탈에 시달린 우리 국토는 6·25전쟁까지 거치며 피폐해졌다. 벌거숭이 민둥산은 큰비가 올 때마다 산사태를 일으켜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왔다.

하지만, 지난 40여 년간 국가 주도의 산림녹화사업으로 지금 우리 산하는 매우 울창해졌다. 다양한 수종과 화초는 산·들·날 짐승을 다시 불러들였고 요즘은 멧돼지와 고라니 등 야생동물이 작물을 파헤치고 도시까지 출몰하는 게 일상화됐다.

그러나 그렇게 잘 가꾼 숲이 지금 큰 위험에 봉착하고 있다. 지난 70∼80년대 솔잎혹파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소나무 불치병으로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이 바로 그것이다.

재선충이란 크기가 1㎜도 안되는 선충으로 기하급수적인 증식을 통해 나무를 말라죽게 하는 병으로 일단 걸리면 100% 죽는다고 봐야 한다. 이 재선충은 북방수염하늘소라는 매개충을 통해 확산되고 있는데, 특히 남부에서 주로 소나무를 공격하는 솔수염하늘소와 달리 잣나무도 공격하는 게 특징이다. 지난 88년 일본에서 부산을 통해 처음 유입된 이래 동남부 지역뿐 아니라 수도권까지 광범위하게 전파되고 있다. 산림이 약 68%를 차지하는 우리 남양주의 경우 특히 잣나무가 많아 그 피해가 점점 늘고 있어 여간 걱정스럽지 않다.

이른 아침 AI 회의가 끝난 뒤 바로 소나무재선충 작업 현장으로 출발했다. 가장 피해가 심각한 지역을 직접 살펴보고 관계자들과 대책을 논의했다. 산주도 함께 의견을 교환했다.

재선충병을 막기 위해 정부는 그동안 감염된 나무를 베어낸 뒤 약품을 뿌리고 밀봉해 보관하는 이른바 훈증처리를 해왔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이동이 금지됨에 따라 시간이 흐르면서 관리가 소홀해졌고 무단으로 가져다 재활용하는 바람에 전파를 조장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따라서 지금은 감염된 나무를 중심으로 권역을 정해 '모두베기'를 한 뒤 한데 모아 1.5㎝이하로 잘게 분쇄해 팰릿, 합성목재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현장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십년을 길러온 아름드리 잣나무를 베어내기도 했다. 계곡에 널부러진 토막나무와 아직 푸른 가지에서 진한 향이 베어나오고 있었다.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파왔다. 산 나무까지 예방 차원에서 '살처분'하고 있는 게 아닌가.

작업상황도 매우 열악했다. 비탈길과 계곡, 울창한 숲 속에서 나무 하나 하나 일일이 점검해 감염 여부를 확인한 뒤 표시하고 베어낸 후 한곳으로 끌어모으는 일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게다가 잦은 눈으로 작업은 매우 더딜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방제작업이 북방수염하늘소의 산란기가 시작되는 3월까지는 모두 끝나야 한다는 것이다. 관련 인력과 장비, 그리고 예산을 집중 투입해야 하는데, 자금을 집행하는 우리 내부 절차는 너무나 더디기만 하다. 실기를 한다면 상황이 더욱 악화가 될텐데, AI에 가려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소나무와 잣나무는 민족의 굳센 기상과 얼을 상징하는 나무다. 김정희 선생의 '세한도' 역시 송백(松柏), 즉 소나무와 잣나무가 그 대상이 아닌가. 왕릉을 비롯한 국토 전역에 분포하고 있는 수많은 아름드리 소나무와 잣나무의 미래는 어찌될 것인지….

우리는 지금 치르고 있는 두 개의 전쟁, 즉 AI와 소나무재선충과의 전쟁에서 모두 이겨야 한다. 당장 먹고 사는 일 뿐 아니라 우리 산하를 제대로 보전하는 일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재선충병으로 초토화되다시피 한 일본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는 결국 우리에게 달려 있다.

/최현덕 남양주시 부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