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준
박준 김포시 홍보팀장
한때 공동작업을 진행한 적 있는 모 영상업체 감독의 일화다. 강원도 한 군청의 홍보영상을 만들었는데 담당자의 요청사항이 참으로 희한했다고 한다. '무조건 군수님의 얼굴이 많이 나오게 해달라'는 게 핵심이었다. 그래야 결재가 쉽다는 게 이유였다. 해당 군청이 영상 제작비용으로 얼마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영상을 만들어 매체에 올려본들 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심각할 정도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든 영상을 일부러 찾아보는 이들은 없다. 어느 기관이든 홍보내용은 대동소이하고 천편일률적이다.

지금은 '스낵컬처(Snack Culture) 콘텐츠의 시대'다. 간식을 먹는 10~15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즐기는 콘텐츠, 이른바 '스낵 컬처'가 증가하고 있다. 사람들은 출퇴근길 같은 짧은 시간에 콘텐츠를 보고 듣는다. 그 짧은 시간에 '우리는 이런 거 저런 거 다 좋아요'를 나열한 홍보만으로는 시선을 사로잡을 수 없다. 누가 재미도 없는 영상을 데이터요금 써 가면서 보겠는가.

유튜브나 페이스북에서 중앙정부 또는 지자체의 영상 조회 수를 보면 대부분 세 자리를 넘지 않는다. 그래서 최근 중앙정부나 지자체도 기존 방식을 버리고 유행코드에 따라 소위 '병맛', 'B급' 홍보영상을 만드는 곳이 늘고 있다. 인터넷에서 '3대 병맛 지자체 영상'으로 불리는 김포시, 고양시, 성남시의 영상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이를 참고한 수원시의 '수원하자' 홍보영상도 화제를 잇고 있다. 이 지자체들이 기존에 제작했던 영상은 조회 수가 몇백에 불과했지만 최근 새로 만든 영상들은 수십만에 이른다.

'병맛'이라는 단어는 깊은 이해나 획일화된 기성품이 아닌 '직관적 느낌'을 말한다. 영상을 봤을 때 확 끌리는 맛이 바로 병맛이다. '의미를 알 수 없다, 이상하다'는 뜻도 있으나 '웃기다, 재미있다, 흥미롭다'는 긍정적 의미로도 사용된다. '병맛'은 또한 서브컬쳐(Subculture)의 핵심 키워드다. 파급력 또한 상당해서 젊은이들이 누리는 문화 전반의 '병맛'은 열풍에 가깝다.

이런 시대적 흐름에 따라 광고·마케팅계에서는 젊은 층의 지지를 받은 '병맛 트렌드'를 중심으로 '펀(Fun) 마케팅'에 대한 공급과 수요가 활발하다. 예전처럼 점잖게 만든 뒤 '안 보면 말고 식' 홍보영상은 이제 트렌드에 맞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의 흥미를 끈다고 해서 '병맛' 영상만 만들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TV 속 '병맛' 광고가 오래된 브랜드와 젊은 세대를 감성으로 이어주는 것처럼, 중앙정부와 지자체에서도 이 '병맛'을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

더러 '병맛' 광고가 이미지나 브랜드를 훼손한다고 우려하는 의견도 있지만, 광고나 홍보에서 '호감'의 반대말은 '비호감'이 아니라 '무관심'이다. LG경제연구원은 '입소문 강한 기업 만들기' 보고서를 통해 "(광고의) 부정적인 내용이 소비자들의 기억에 더 오래 남고, 영향력도 더 크다"고 했다. '병맛'을 넘어 '비호감'이 기업의 마케팅 전략으로까지 진출한 것이다. 기업체는 이렇게 빠르게 진화하는데 왜 중앙정부나 지자체 광고나 홍보만 '예술'이 돼야 할까.

지자체 광고도 이제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가 있어야 보고, 관심을 받는다. 그리고 그 관심은 또 다른 것들에 대한 궁금증과 애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병맛' 광고를 제대로 하려면 공조직 담당자는 현실상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용기를 내 만든 도내 지자체의 '병맛' 동영상을 다시 한 번 즐겨 보시길 권한다.

/박준 김포시 홍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