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매주 화요일이면 사무실로 출근하지 않고 마을로 직접 나가 이웃을 만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이 무렵 내가 만나는 이웃이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노인, 결손가정, 소년소녀가장 등 주로 어려운 여건의 주민들이다.
그러던 중 지난 2015년 9월 9일 이른 아침, 대곡1리에 거주하는 '이숙'이라는 할머니 댁을 방문하게 됐다. 주위에서 할머니가 혼자 계시는데 누가 와도 좀처럼 만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참 후 문을 노크하니 그 할머니가 문을 열고는 "읍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 기피증이 있어서 문을 열어 드리지 못했습니다"라며 "20년 전 사랑하는 남편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어요. 남편은 한국 굴지의 은행장이셨어요. 남편은 저를 끔찍이도 아껴 주셨는데 남편이 급사하니 눈앞이 캄캄했어요. 우리 부부는 불행하게도 자식이 없어요"라며 사진을 보여주는데 젊은 날 은행장 부부의 화려함과 다정함이 느껴질 정도로 아주 행복해 보였다.
그는 이어 "그 후 저는 여고 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정임이라는 동창생과 친자매처럼 의지하면서 살았지요. 그러던 어느 날 정임이가 사업자금을 빌려달라고 했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나는 여러 차례 사업자금을 빌려주었지요. 그러나 친구는 사업에 실패하고 자살해 버렸어요. 저는 모든 재산을 잃었고 살던 집까지 압류되면서 졸지에 빈털터리가 돼 버렸지요"라며 "가장 사랑했던 남편의 죽음, 친구의 불행, 그 많던 재산을 하루아침에 몽땅 잃어버린 것이 원인이 되어 우울증과 함께 사람 만나기를 싫어하는 대인기피증이 생겼다"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암까지 걸려 투병 중이었다.
이숙 할머니는 한 달에 50만 원 정도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다. 이 중 커피와 생활에 필요한 비용 35만원 정도를 쓰고 나머지 15만원 정도를 본인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쓰고 있었다.
가계부를 들여다 본 그 날 하루 나의 머리는 띵하고 마음은 멍하였다. 한 마디로 감동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왔다.
요즘 우리 사회는 소위 '갑'과 '을'로 나뉜다.
이숙 할머니 같은 분은 '갑'과 '을'은 커녕 '정'과 '병'에도 끼지 못할 정도로 존재가 미약하지만, 그분들도 사회공동체를 구성하고 사회를 지탱하며 묵묵히 살아오고 있었다.
문제를 제기하고 자기의 파이가 작다고 요란하게 외치는 '갑'과 '을'에게만 우리 사회가 관심을 두고 이숙 할머니와 같은 '정'과 '병'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등한시하는 우리 행정도 다시 한 번 자성의 기회를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지난해 가을, 이숙 할머니는 88세에 세상을 떠났다.
인향만리(人香萬里)라고 하였던가…. 나는 할머니의 일기장을 몇 장밖에 넘겨보지 못했지만, 그 몇 장의 일기장 속에서 인간의 향기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우인 가평군 기획감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