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수원 군공항에서 훈련 차 전투기를 하루에 몇 대씩 띄우던 곳 근처에 자리잡고 있었다. 수업이 한창 이다가도 비행기가 지나갈 때면 교수건 학생이건 몇 초간 하던 말을 멈추는 것이 일상이었다. 볕이 좋은 날 교정 한편에 자리잡아 학우들과 막걸리를 나눠먹을 때에도 비행기 굉음은 어김없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전쟁이 중단된 지 65년이 지났다지만 아직 우리는 전쟁 속에서 살고 있다.
정권이 누구에게 있건 정전과 북핵 위협이라는 조건 속에서 국방예산은 매년 증액된다. 전쟁을 경험한 자, 남은 전쟁 위에서 살고 있는 자들이 '적'을 상정해야 하는 상황에선 당연한 일이다. 누구에게나 전쟁은 무섭다. 전쟁이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일어나는 순간 일상이 파괴되는 것을 넘어 사람이 사람일 수 없어지기 때문이다. 현대 지상전은 특히 그렇다. 전쟁이 난 것을 인지한 순간은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온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수원 군공항을 화성으로 옮기느냐 마느냐가 중요하지는 않아 보인다.
한국사회는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 뭇 생명이 가치를 인정받는 사회를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 사회는 더 폭넓고 깊은 민주주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민주주의를 축소시켜왔던 해묵은 과거를 청산하려는 노력이 수반되지 않고 큰 변화를 바라는 것은 과욕이다. 상대의 강수를 강수로 응수하는 방식은 대표적인 낡은 방식이다. 안보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논리로 풀 수 없다. 안보는 누구도 다치지 않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수원 군공항이 수원이냐 화성이냐가 아닌 폐쇄논의로써 그 첫걸음을 떼어야 한다.
고교시절 매향리에 대한 기억은 치유였고, 위로였다. 그러나 그곳 또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미군들의 사격장으로 전쟁과 일상이 버무려지는 현장이었다. 매향리 주민들이 생을 바쳐 싸워 지킨 평화를, 일상을 또다시 앗아가려 하는 것은 도의상으로도 어긋나는 일이다. 오히려 그 평화의 사례를 확대하는 폐쇄논의가 더욱 절실한 시기이다.
/이인신 수원환경운동연합 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