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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선 RS에듀컨설팅 대표
미국의 서명(signature) 제도와는 다르게 우리나라는 아직도 인감도장을 활용한 계약을 제도화하고 있다. 하지만 사람보다 도장을 우선시하는 이러한 제도의 맹점을 이용해 자행되는 교묘한 사기사건이 심심치 않게 회자된다. 다음은 최근 지인이 실제 겪은 사건으로 문서와 도장을 이용한 사기행각을 소개하고자 한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A씨는 몇 년 전 주주들과 함께 신규 회사를 설립하기로 하고 발기인 결의 후 주주들의 도장을 모아서 법무사에게 등기하도록 했다. 이때 발기인 중 한 명이 도장을 취합해 법무사에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설립 이후 회사에서 발생하는 주요 의결사항이나 주주총회에서 A씨는 이상하게 계속 배제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자신이 참석하지 않은 주주총회가 몰래 열리고 의사결정이 행해진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 황당했던 A씨는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관련 서류를 확인해 보니 자신이 허가하지도 않은 서류에 자신의 도장이 찍혀있고 자신이 참석하지 않은 총회에 날인이 돼 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사건의 자초지종은 이랬다. 몇 년 전 도장 심부름을 자청한 발기인 B씨는 사기범이었는데 당시 심부름으로 가져간 A씨의 도장을 몰래 빼돌려 백지 종이에 미리 여러 장 날인을 해 놓고 이후 계약이나 의결에 A씨의 동의가 필요할 때 A씨의 날인 위치에 맞춰서 내용을 꾸미고 미리 도장을 찍어놓은 백지를 출력용지로 사용해 교묘하게 위조하는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그리고 원본을 폐기, 분실했다고 하고 복사본으로 권리 행사했는데 이렇게 하면 서로 다른 날짜에 찍은 도장이라도 그 색깔을 구분하기가 어렵고 또 도장은 실제 도장이 맞기 때문에 감정을 하게 되면 진짜로 날인한 것처럼 문서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A씨는 이 사실을 인지하고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해당 날짜와 시간에 특정 장소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 고소했고 B씨는 현재 검찰에서 수사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날인이 찍혀있는 문서가 엄연히 존재하기 때문에 수사와 단죄가 매우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 제도를 악용하게 되면 애들 장난 같은 위와 같은 수법이 장난이 아닌 인생의 재앙이 되어버릴 수 있는데 실제로 경찰과 검찰에 송치되지 않은 드러나지 않는 사건들은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A씨는 평소 사람을 잘 믿고 의심하지 않는 선량한 사람이었고 이러한 사기수법을 처음 겪어보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A씨는 경찰과 검찰에서 여러 차례 조사를 받으면서 의도하지 않은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직접증거인 도장이 찍혀있으니 이 사실이 불법임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고생이 필요했다.

하지만 A씨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만든 건 사건을 조사하는 담당 수사관의 한마디였다고 한다. 그 담당 수사관은 "세상은 착하게 사는 게 정답이 아니라 현명하게 사는 것이 정답이다"라고 했는데 여기서 '착하게 사는 것'은 '다른 사람을 잘 믿고 멍청하게 사는 것'으로, '현명하게 사는 것'은 '불법적으로 이득을 취하더라도 법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 것'이라고 들렸기 때문이다. 설사 이 말이 맞을지는 몰라도 경찰관이 할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자칫 범죄자를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이 말은 '못된 불쾌감'을 남긴다.

/송영선 RS에듀컨설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