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장르인 도시재생의 개념에 대한 결정적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도시재생은 얼핏 보면 종전의 도시재정비나 도시재개발과 유사하게 보이지만 본질이 다르다. 물리적 차원의 도시재정비나 경제적 차원의 도시재개발은 도시의 쇠퇴를 반복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롭게 전개되고 있는 방식이 '사회문화적 차원의 도시재생'이다. 용역회사에 계획을 맡기고 수익을 추구하는 민간자본을 유치해, 단순히 지역의 물리적인 환경을 바꾸는 부동산 개발을 도시재생이라고 포장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포괄적 영역을 다루는 도시재생은 높은 수준의 집중화 된 마스터플랜적 접근이 요구된다. 개별화된 행정구조나 법·제도에 따라 하향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커뮤니티와 지역 문화를 바탕으로 건축·도시, 역사·문화·예술, 경제·사회문제 등에 대한 통합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상향식 계획 체계가 돼야 한다. 전문가나 전문화된 전담조직이 지역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중장기적인 계획 수립과 사업 실행을 주도해야 한다.
문화적 생산과 소비는 도시재생의 중요한 수단이기 때문에 도시가 가지고 있는 문화자산을 보존·복원하거나 새로운 문화자산을 도입해 계속 도시를 지탱하는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유럽지역개발기금(ERDF)은 EU 가입국의 산업유산 보존·복원을 통한 도시재생사업을 지원하고 있으며, 유럽산업유산루트(ERIH)는 유럽 내 도시나 지역에서 총 850개의 문화적 재생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적 도시재생을 강조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낙후된 지역에서 선순환 구조의 산업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은 예술가로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공재 사업인 도시재생은 지방정부의 대규모 재정 투자가 선행돼야 한다. 공공의 제도적·행정적 지원으로 정비구역이 지정되면 민간이 투자하는 종전의 재개발 방식과 달리, 도시재생은 확신과 신뢰를 갖고 민간이 투자할 수 있도록 공공이 선투자해 사업성을 제공해야 한다. 영국의 주거지 도시재생 사례를 보면 낙후된 지역에 떠나간 사람이 다시 돌아오고 창조적 계층이 찾아올 수 있도록 공공이 물리적인 정주환경과 공공교통체계를 매력적으로 재생해 최적의 민간투자 여건을 우선 마련한다. 기존의 재개발과 재건축 등이 민간투자자 측면에서 재무적으로 사업성이 있다면 수많은 정비구역이 지금처럼 방치되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은 예산 범위 내에서 어떻게 집행해야 할 것인지가 아닌, 지역공동체의 가치를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토대로 예산을 마련해 추진해야 한다. 낙후되고 쇠퇴한 곳을 잘 진단해 지역 특성에 맞게 처방하고 완치시켜야 하는데, 좋은 의사라면 단지 치료비 범위 내에서 진단하고 처방·치료하지 않을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은 어떤 도시와 문화를 만들 것인지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중장기적인 전략적 예산 계획을 수립해 치유될 때까지 단계적으로 꾸준하게 추진해야 한다.
/고병욱 인천도시공사 도시재생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