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대손손 피고 졌다는 역사 기록
단점 인정하고 보완하면서
선조들이 우리 가슴속에 남겨준
소중한 정신 가꾸며 계승해야

우리나라 전체 천연기념물 457개 중 무궁화는 두 그루. 그중에서 백령도 연화리 무궁화가 고사 위기에 처한 것이다. 무궁화의 수명이 보통 40~50년인데 반해, 강릉 방동리 무궁화의 수령은 110년으로 추정하고, 백령도 연화리 무궁화는 90~100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 두 무궁화는 자연스레 고사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수령이다. 무엇보다도 '나라꽃'인 무궁화는 여러 지역, 여러 장소에서 자라고 다양한 법에 의해 보호받아야 마땅할 나무임에도, 가까운 미래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무궁화는 한 그루만 남게 될 지경이다. 조만간 고사할 수 있다는 백령도 연화리 무궁화의 현실이 바로 '나라꽃'인 무궁화가 처한 바로미터 아닐까.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그 어떤 왕이나 대통령도 '무궁화를 국화(國花)로 정한다'고 선언한 적은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우리나라 국화가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때 '무궁화'라고 대답할 것이다. 무궁화는 언제부터 나라꽃으로 인식되었을까? 한반도와 무궁화의 연관성은 중국과 일본의 고서에서 발견된다. 첫 번째로 중국 춘추전국시대에서 한나라까지 쓴 총 18권의 '산해경(山海經)'에서 알 수 있다. 이 책은 중국의 신화와 주위 나라들의 지리에 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책에서 '군자국에는 무궁화가 아침에 피고 저녁에 진다(君子國 有薰花草 朝生暮死)'라는 문장이 발견된다. 여기서 군자국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는 것이며, 훈화초(薰花草)는 무궁화의 옛 이름이다.
두 번째는 '구당서(舊唐書)'라는 중국 당나라의 정사다. 구당서 199권 신라전(新羅傳) 737년(성덕왕 36) 기사에 "신라가 보낸 국서에 그 나라를 일컬어 근화향(槿花鄕),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돼 있다. 특히, 신라 효공왕이 문장가 최치원에게 작성토록 해 당나라에 보낸 국서(國書) 가운데 "근화향(무궁화의 나라, 신라를 일컬음)은 겸양하고 자중하지만, 호시국(호시를 생산하는 나라, 즉 발해)은 강폭함이 날로 더해간다"고 한 내용이 전해진다.
이 밖에도 일본의 왜기(倭記)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무궁화는 조선의 대표적인 꽃으로서 무려 2천100여 년 전 지나(일본이 중국을 불렀던 명칭)에서도 인정된 문헌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전 국민으로부터 열광적 사랑을 받았으며, 문학적·의학적으로 진중한 대우를 받았다. 일본의 벚꽃, 영국의 장미와 같이 국화로 되어 있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왕실화가 배꽃으로 정해지면서 무궁화는 점차로 세력을 잃고 조선 민족으로부터 소원해졌던 것이다. 20세기의 문명이 조선에 들어옴에 유지들은 민족사상의 고취와 국민정신의 통일 진작에 노력하여, 붓과 말로 천자만홍(千紫萬紅)의 모든 꽃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로되 무궁화는 여름과 가을에 걸쳐 3~4개월을 연속해 핀다고 하여, 그 고결함과 위인적(偉人的) 자용(姿容)을 찬미하였다. 따라서 무궁화 강산 운운은 자존된 조선의 별칭인데…" 이와 같이 우리나라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웃 나라 문헌을 통해 우리나라에 대대손손 무궁화가 피고 졌다는 역사를 알 수 있다.
적어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설사 무궁화에 단점이 있더라도 단점은 단점대로 인정하고 보완하면서 보듬고 가꿔 우리 가슴 속에 선조들이 남겨준 소중한 무궁화를 가꾸고, 무궁화에 담긴 정신을 계승해야 하지 않을까.
/한광식 김포대 CIT융합학부 교수·(세종특별자치시 무궁화도시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