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면계곡서 중공군과 2박 3일 전투 '대승'
'명예·기적의 땅' 작은 조약돌까지도 애정
현지서 대한민국·가평군 홍보 '최고 효과'

본인은 1월 15일 호주 태즈매이니아 호바트시 호주군 참전용사 표지석 제막식에 다녀왔다.
지난해에는 영연방국가의 한국전 참전비 제막식을 위해 캐나다 밴쿠버와 위니펙 그리고 호주 멜버른시를 방문했다.
현지에서 만난 한국전 참전비건립추진위원장이나 한인회장, 재향군인회장, 민주평통회장 등은 한결같이 "국회의원이나 시의원, 행정가나 교수, 재향군인회 퇴역장군 등 주류사회 인사들은 대한민국에 관해 이야기할 때 빼놓지 않고 꼭 언급하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가평전투입니다. 우리는 6·25 때 수많은 전투가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특별히 가평전투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없어서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때부터 인터넷도 찾아보고 6·25 전사도 읽으면서 영연방국가의 가평전투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현재 생존해있는 참전용사들은 한국전 참전비를 건립할 때는 꼭 가평석으로 세워달라는 부탁을 해요. 그들이 얼마나 가평전투를 중요시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가평전투는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 1차 춘계공세 때인 1951년 4월23일부터 1951년 4월25일까지 가평군 북면 계곡에서 영연방 제27여단과 중공군 제118사단 간에 치러진 2박 3일간의 전투로 영연방군이 대승한 전투이다.
이 전투로 연합군은 서울로 진격하는 중공군을 저지하여 수도 서울을 사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이 전투에서 호주군 32명, 캐나다군 10명, 뉴질랜드군 2명, 미군 3명이 전사한 반면 중공군은 무려 1천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북으로 퇴각했다.
그 후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가평을 명예의 땅, 기적의 땅으로 부르며 가평의 풀 한 포기 작은 조약돌 하나에도 애정을 갖게 되었는데 참전비 건립 가평석 지원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가평 석을 지원하여 참전비를 건립한 것은 현지에서 대한민국을 알리고 가평군을 홍보하는 최고의 효과로 나타났다.
해외에서 한국의 광역자치단체나 기초자치단체의 지명이 들어간 거리나 공원이 명명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가평군은 호주나 캐나다에 '가평스트리트', '가평공원', '가평부대'가 있고 '가평데이'를 지정하여 대대적인 기념식을 한다.
본인은 해외 한국전 참전비 제막식이 끝나면 참전용사들을 초청하여 기념메달을 걸어드리고 오찬을 베풀고 가평 잣을 증정하며 손을 잡아드린다.
그러면 벽안의 참전용사들은 눈시울을 붉히고 좀처럼 손을 놓지 않는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은혜에 보답하는 나라로 탈바꿈한 것에 대한 감회의 눈물이리라.
또한 현지 교민들도 참전비 제막식 행사를 하면서 영국이나 캐나다 호주나 뉴질랜드 국가에 이민 와서 한국인으로서 진 빚을 갚았다는 안도와 자긍심의 눈물을 글썽인다.
우리 군의 해외 참전비 가평석 지원정책이 보훈분야 정부합동평가 경기도 1위를 차지하여 중앙정부의 최종 심사에 오른 것은 가평군의 보훈정책이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이리라.
/김성기 가평군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