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열리는 소리만 들려도 떨려요."
"누군가 목소리를 높이면 심장이 쿵쾅거립니다."
"전화벨 소리가 무서울 정도예요."
"며칠동안 밤마다 그날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트라우마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눈빛에는 공포가 묻어나고, 목소리에는 무력감까지 느껴진다. 누구의 이야기일까? 악성 민원에 시달리는 우리 공무원들의 목소리다.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다행일지 모르겠다. 공무원들이 민원에 시달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소식이 전국 각지에서 들려오기 때문이다.
행안부 통계로 작년 민원담당 피해 사례는
4만6079건, 전년比 20%가까이 늘어난 수치
혹자들은 의문을 제기한다. "꿈의 직장을 다니는 공무원들에게 무슨 스트레스가 있겠어", "돈 버는 일도 아니고, 돈 쓰는 집단에 무슨 걱정·근심이 있겠어", "공무원이 아닌 일반 사회생활은 더 힘들고, 어려워."
이러한 이야기가 나오는 배경에는 공무원에 대한 일반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공무원의 근무환경은 정시 출퇴근, 정년보장, 낮은 업무강도 등 이상적인 모습으로 포장돼 있다. 포장지만 보면 공무원의 삶은 트라우마는커녕 스트레스와도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포장지를 뜯어보면 일반적인 이미지와는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민원인들의 모욕적인 언어와 반말은 기본이요, 욕설과 고성이 난무하다.
가족까지 한 데 묶여 인격적인 모독을 받기도 한다. 사무실 책상에 복도에 드러눕기도 하고, 온갖 인맥을 들먹이며 '날려버리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는다.
여성공무원에게는 경우가 더 심하다. 언어폭력을 가하는 민원인은 전체 시민의 일부지만, 그 수가 적지 않다.
이로인해 일부 대인기피·공황장애 등 겪어
'공무원은 하인 아니다 시민의 봉사자 일뿐'
행정안전부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중앙행정기관, 지자체, 교육청 등 소속 민원 담당 공무원의 폭언, 폭행 피해사례는 4만6천79건이었으며, 이는 2019년에 비해 20% 가까이 증가한 수치였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피해사례까지 더하면 정말로 많은 공무원들이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악성 민원으로 공무원들은 대인 기피증이나 공황장애를 겪어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보건소 직원들로부터 그들을 가장 괴롭히는 건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언어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고통이라는 대답을 들었을때 상황의 심각함을 체감하게 된다.
같이 맞서 싸우면 그렇게 아프지도 않을 터다. 공무원들은 어느 상황에서든 시민에게 친절해야 한다는 사회적 어젠다에 상대의 묵직한 펀치를 묵묵히 받아낼 뿐이다.
맷집에 자신 있는 사람도 이러한 상황에서 온전한 정신을 붙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며, 공무원 직업에 대한 회의감마저 들게 한다.
물론, 국가의 권력은 국민에 있고, 우리 시의 주인은 시민이다. 궁극적으로 공무원은 시민을 위한 봉사자이며 시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공무원이 하인은 아니다. 나의 모든 욕구를 충족시켜 줘야 할 대상도 아니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함부로 해도 되는 존재는 더더욱 아니다. 계급적 우월감을 느끼게 해주는 도구도 아니다.
오히려 공무원은 나와 동등한 동료 시민이다. 누군가의 딸이자 아들이고, 어머니이자 아버지이다. 코로나와 경제적 어려움으로 모두 힘든 상황 속에서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 선이 공무원들에게도 적용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정장선 평택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