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5 한국전쟁 당시 할아버지는 군 복무가 의무가 아닌데도 가족과 조국의 안정을 위해 참전했다. 당시 9살에 불과했던 아버지는 얼떨결에 한 가정의 가장이 됐다. 작은아버지는 할머니 뱃속에 있어서 할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시다고 한다. 모든 가족이 애타게 기다렸으나 전쟁에 나간 할아버지는 끝내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고 유골 또한 찾을 수 없었다. 가족들은 한참 수소문한 끝에 할아버지가 전쟁터에서 돌아가신 뒤 서울 국립현충원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2남2녀 중 장남인 아버지는 어린 나이에 세 명의 동생과 어머니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 때문에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당시 상황을 정확히 기억은 못하시지만 훈련과 전쟁 모두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사람 키보다 더 높은 풀이 모두 말라 있을 정도로 독했던 고엽제를 맞아 온몸에 후유증이 남았다. 작은아버지, 사촌 동생 그리고 나 또한 국가의 부름을 받고 최전방 등에서 국방의 의무를 다했다. 병역의무를 마친 뒤 각자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다.
매년 아버지는 자손들을 데리고 할아버지 산소를 찾는다.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 자랑스러운 분이라며 옛날이야기 등을 들려주신다. 국방의 의무는 매우 중요하며 미래 멋진 군인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다. 아이들도 친구들에게 자신있게 할아버지를 자랑한다.
우리 가문은 할아버지대부터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조국을 지키기 위해 적극 나섰으며 앞으로도 자랑스러운 병역명문가로서 나라사랑정신을 대대손손 이어가며 살 것이다.
/이근철 병역명문가 선정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