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대 대선은 주지하다시피 역대 최고 비호감 대선이다. 아직도 30% 가까운 중도층은 선뜻 마음을 열고 있지 않다. 이재명과 윤석열은 지지층에서조차 온전한 지지를 얻지 못하는 상태다. 민주당 이재명 지지율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보다 낮고,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또한 정권교체 응답률을 밑돌고 있다. 둘 다 도덕적 흠결이 작지 않은데다 부인 리스크까지 더해진 탓이다. 이재명과 윤석열,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TV토론회와 거리유세에서 상대 후보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선거라는 게 올오어나싱 게임이라고는 하지만 이번 대선처럼 극단적인 때가 있었던가 싶을 만큼 격렬하다. 선거 후유증을 염려하는 건 이 때문이다.
이재명·윤석열, 드러난 흠결 덮고
존경받는 지도자 거듭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이재명 후보가 입에 올린 국민통합 메시지는 다행스럽다. 그는 진영과 지역주의, 이념, 산업화와 민주화를 뛰어넘어 국민만 바라보고 실용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지지율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것일지라도 입 밖으로 천명했다는 건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국민에게 도움되는 것이라면 뭐든지 하겠다”는 말이 정치적 수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 윤석열 또한 국민통합 의지를 밝히고 국민들 앞에 약속해야 한다. 증오와 보복이 아닌 포용과 관용은 국가 지도자로서 중요한 덕목이다. 물론 칼을 겨눴던 경쟁 상대를 포용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수없이 자기최면을 걸고 표명해야 한다.
김대중, 넬슨 만델라,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은 공통점이 있다. 세 사람 모두 이전 정권에서 극심한 탄압을 받았지만 증오와 보복을 내려놓았다. 대신 포용과 관용으로 국민화합을 이뤘고, 이를 바탕으로 나라를 정상화시키고 경제발전에도 성공했다. 세 사람은 고문과 납치, 수감 심지어 사형선고까지 처절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상대를 포용했다. 국민통합을 밑거름 삼아 갈등을 봉합하고 경제회복을 주도했다. 호남 출신 김대중은 집권하자 영남 인사를 발탁했고, 자신에게 사형을 언도했던 전두환과 노태우를 초청해 화합의 메시지를 보냈다. 덕분에 DJ정부는 국가부도 사태를 조기에 마무리 짓고 국제사회로 복귀했다.
넬슨 만델라는 27년간 감옥에서 보냈다. 석방된 1990년, 남아공은 위기가 감돌았다. 50년 동안 백인정권 아래서 억눌렸던 흑인들은 보복에 나설 기세였다. 만델라는 화해를 호소했고, 흑백갈등을 봉합했다. 혼란을 극복한 남아공은 경제성장을 이뤘다. 2010월드컵도 성공적으로 치렀다. 만약 증오와 보복을 반복했다면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없다. 우루과이 호세 무히카 대통령 또한 군사정권에 항거하다 12년간 독방에서 옥살이를 했다. 그는 취임한 뒤 국민통합을 이끌었다. 집권 당시 우루과이 1인당 국민소득은 남미 최고 수준이었다. 무히카는 취임 때보다 높은 지지율을 얻고 행복한 농부로 돌아갔다. 포용과 관용의 힘은 이렇게 세다.
김대중·만델라·무히카 모습처럼
넉넉하고 인자한 표정 지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할 문제
증오와 보복 정치로 인한 결과는 빤하다. 국론분열, 민생불안, 경기침체, 국제사회 신인도 하락 등 헤아릴 수 없다. 두 갈래 길에서 취해야할 스탠스는 분명하다. 관용과 포용으로 나라를 이끈다면 이재명과 윤석열은 선거기간 중 드러난 흠결을 덮고, 존경받는 정치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다. 김대중, 만델라, 무히카 세 지도자에게 보이는 또 다른 공통점은 넉넉하며 인자한 얼굴 표정이다.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도 그런 표정을 지니려면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할 지점이다. 무히카는 “수십 년간 내 정원에는 증오를 심지 않았다. 증오는 어리석은 짓”이라고 했다. 우리 지도자들에게도 관용을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