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령 이슬람교에서는 왜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게 하였는가. 돼지는 먼 거리를 이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유목 생활에 적합하지 않다. 잡식성 동물인 까닭에 같은 먹이를 두고 인간과 경쟁 관계를 형성하기도 한다. 젖과 털까지 제공하는 다른 동물과는 달리 돼지가 제공하는 것은 오로지 고기밖에 없다. 더군다나 돼지는 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한다. 따라서 돼지 사육에는 상당한 비용이 지출될 수밖에 없다. 중동의 고온건조한 날씨 속에서 돼지가 견딜 수 있도록 시설을 마련하고, 날마다 돼지에게 먹이를 제공하는 한편, 한 장소에 정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고가의 사치품인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부류는 크게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심각한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을 차단하는 방편이 이슬람교의 돼지고기 섭식 금지라는 것이 마빈 해리스의 분석이다.
한 문화권 가치를 절대 기준 삼으면
다른 문화권 관습 비하·조롱 위험
'문명 상대주의' 나아갈 필요성 긴요
아마 초등학생 시절 읽었던 '아이반호'의 한 장면일 터이다. 이슬람인들이 마상창경기 관람석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의 자리를 빼앗는 방식은 칼에 돼지고기를 꿰어 그들의 얼굴 앞에 갖다대는 것이었다. 어째서 이슬람인들이 허겁지겁 자리를 피하는지 알 수 없었던 까닭에 기억하게 된 장면인데, 훗날 대학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작가의 재치인 양 그려진 저 대목에는 유럽 백인 중심주의가 무섭게 작동하고 있구나. 아무런 반성 없이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어느새 작가의 이념에 동화되고 만다. 기존 세계문학의 정전(canon) 목록을 해체하고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는 이와 같은 유럽 백인(남성) 중심주의가 문제되기 때문이다.
하나의 문화권에서 통용되는 가치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을 경우, 다른 문화권에서 발견되는 낯선 관습은 비하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릴 위험이 농후하다. 문화 상대주의가 요구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문화 상대주의를 확장시켜 '문명 상대주의'로 나아갈 필요성도 긴요해 보인다. 우리가 살고 있는 소비자본주의에서는 "보다 많이 소유하라", "소비의 씀씀이를 통하여 너의 존재를 증명하라"라고 독려한다. 지금껏 존재했던 어떤 문명, 어떤 문화권에서도 이와 같은 방식의 삶을 권장하지 않았다. 정반대로 안빈낙도, 청빈, 자발적 가난, 무소유 등 표현을 달리 써가면서 물욕을 비우라고 독려하였다. 생활의 실제가 그러하지 못하는 것은 시끄럽게 과시할 일이 아니었다. 천박함과 교양 없음을 기꺼이 감수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대한민국 종교 가진 이들 줄고 있어
위대한 종교, 공동체 통합 근거 마련
대한민국에서 종교를 가진 이들은 꾸준히 줄고 있으며, 각각의 종교 신자 숫자 또한 마찬가지다. 이는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개인의 구원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하고, 공동체 통합을 위한 비전도 마련하지 못한 채, '종교로서의 자본주의'의 하부 조직 역할에 충실한 것이 현 종교계의 실태이기 때문이다. '종교로서의 자본주의'와 맞서서 그 너머를 이야기하지 못하는 종교는 결코 소비자본주의 체제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종교로서의 자본주의' 속에 녹아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천국이든 극락이든 뭐라도 좋다. 현실 종교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세계의 가치를 앞세워서 소비자본주의 체제 바깥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내장하고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위대한 종교는 각 지역의 조건에 맞춰 공동체가 통합을 이뤄낼 근거를 마련하였고, 그 안에서 개인이 구원/해탈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였다. 마빈 해리스를 읽다보면 위대한 종교가 품은 그와 같은 사명감을 확인하게 된다. 이것이 학생들에게 마빈 해리스를 추천하는 이유이다.
/홍기돈 문학평론가·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