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84세인 성범영 원장은 평생을 이곳에서 나무와 돌, 바람과 함께했다. 그 시간이 무려 55년이다. 그는 황무지에 돌을 쌓고, 흙을 퍼 나르고, 나무를 심어 세계적인 분재 정원을 만들었다. 정원을 방문한 5일에도 땀을 쏟으며 뙤약볕 아래서 나무를 돌보고 있었다.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로마 바티칸 성당에서 꼭 봐야 하는 그림이다. 미켈란젤로는 두 작품을 각각 4년, 8년에 걸쳐 그렸다. 사람들은 그 앞에서 '스탕달 신드롬'을 경험하기도 한다. 미켈란젤로가 혼신을 다해 걸작을 남겼다면 성 원장은 일생을 바쳐 삽과 가위로 정원을 창조했다.
84세 성범영 원장 일생 바쳐 창조
中·日·유럽 고위층들 마음 빼앗겨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지지 보내
'생각하는 정원'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이는 중국 장쩌민 주석이었다. 장쩌민은 1995년 이곳에서 분재 철학과 한 농부가 보여준 의지에 감동했다. 그는 중국에 돌아간 뒤 "'생각하는 정원'에 가서 배워라. 정부 지원도 없이 농부 한 사람이 일군 역사를 본받으라"고 했다. 이후 후진타오 부주석을 비롯해 6만 여명에 달하는 중국 지도자들이 다녀갔다. 성 원장 이야기는 중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렸고, 정원은 중국 관광객이라면 예외 없이 들르는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수상과 북한 최고위층도 다녀갔다. 분재 문화가 생소한 유럽인들 또한 이곳에 마음을 빼앗겼다.
중국에서는 성 원장을 우공(愚公)으로 부른다. 지극한 일념으로 산을 옮긴 '우공이산(愚公移山)'에 빗댄 긍정적 호칭이다. 실상은 '미친 놈'이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그림 한 점을 그리는데 4~8년을 쏟은 미켈란젤로, 산을 옮기겠다고 나선 우공, 정원 조성에 평생을 바친 성 원장 모두 제 정신이 아니다. '미치지 않고는 이를 수 없다(不狂不及)'는 듯 성 원장은 나무와 돌에 미친 끝에 명품 정원을 만들었다. 그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중국 소주(蘇州) '졸정원'처럼 '생각하는 정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할 생각이다.
정원을 다녀간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지지했다. 한 유럽인은 "세계유산에 등재된 정원과 공원을 모두 다녀봤지만 생각하는 정원만 못하다. 유럽~제주 직항로만 개설된다면 한 해 1천만~2천만명은 문제없다"고 격찬했다. 폴란드 바르샤바 구 시가지는 198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바르샤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85%가 파괴됐다. 전쟁이 끝난 뒤 시민들은 기억과 자료를 토대로 완벽에 가까울 만큼 되살렸다. 복원된 도시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 처음이자 유일하다. 유네스코는 도시보다는 시민들의 의지와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 한 농부의 일생이 녹아든 '생각하는 정원' 또한 유네스코 등재에 충분하다.
한국 먹여 살릴 역사·박물관 계획
정부·지자체·정치권 '관심 절실'
성 원장은 두 가지를 계획하고 있다. 하나는 황무지를 일궈 옥토로 만든 역사를 청년세대에게 알릴 역사관이다. 다른 하나는 한중예술박물관이다. 중국 지도자들에게 받은 그림과 글씨, 선물 등 3천여점을 전시할 공간이다. 성 원장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수 있다. 내가 못하면 아들이 한다. 역사관과 박물관 건립에 정부와 지자체 관심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한데 무관심하다. 정부 부처 관계자는커녕 제주도지사, 지역 국회의원조차 관심 밖이다. 손안에 보물을 쥐고도 파랑새를 찾겠다며 밖으로만 도는 꼴이다. '생각하는 정원'을 5차례나 다녀간 중국 리자오싱 외교부장(장관)과 비교된다.
문화예술 수준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철학과 소양을 갖춘 이들이 국제사회를 주도한다. 또 부를 창출한다. 스티브잡스는 인문학을 바탕으로 애플을 만들었다. 성 원장이 들려준 프랑스 청년 이야기는 의미심장하다. 사흘 내내 정원에서 시간을 보낸 청년에게 뭘 봤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돌아온 답은 "아직 다 못봤다"였다. 사흘을 보고도 미처 보지 못했다는 청년은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우리 정부와 제주도가 풀어야 할 숙제다.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