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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내일이 중복이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기원전에도 복(伏)날이 있었다고 한다. 사료 고증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지만 복날에 개를 잡아 열독(熱毒)을 다스렸다는 것이다. 더위에 지친 육신을 보신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경험적 지혜였을 것이다.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삼복더위를 피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복날의 대표 음식은 삼계탕이다. 물론 보신탕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은 민어, 장어, 오리, 흑염소도 인기다. 그러나 냉방시설도 잘 갖추어져 있고, 특별한 음식으로 영양을 보충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오히려 덜 먹으려는 시대이다. 꼭 먹어야 할 음식이 있는 반면 먹는 것을 금하는 음식도 있다. 건강관리 차원이나 개인의 체질에 따른 차이가 주된 이유다.  


민족 소멸 막으려 이민족 차이 강조
특별한 식생활 철저 신경 동화 예방
결국은 성스러운 백성 정체성 유지


그렇다면 종교적 차원에서 특정 음식을 금기시 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종교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직간접으로 관련한다. 종교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인간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식생활은 인간의 생존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종교가 음식에 대해 관여하는 방식은 금기로부터 시작한다. 이슬람에서 금기하는 음식은 술과 돼지고기 그리고 규율에 따라 도살하지 않은 고기 등이다. 유교에서는 제사상에 비늘 없는 물고기를 올릴 수 없다고 했다. 불교에서도 술과 고기 그리고 오신채 등을 금지한다.

종교마다 식생활에 관해 엄격한 계율이 있지만 주목되는 것은 유대교의 음식율법(Kosher)이다. 유대교의 음식율법은 피의 섭취, 육류와 유제품의 혼합, 돼지 등 오염되었다고 여겨지는 동물의 고기에 대한 금기를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 물론 금기의 유래나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특히 구약성서에서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신의 절대적인 명령으로 말하고 있다. 종교사적 시각에서 보면 음식과 관련된 생각의 차이가 유대교와 기독교가 분리되는 원인 가운데 하나였다. 유대교의 음식율법이 이슬람의 음식율법인 할랄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유대교의 음식율법이 체계화된 것은 바빌론의 포로시대인 기원전 6세기 전후이다. 이때는 유다 왕국이 멸망하고 생존한 유대인들이 바빌론 포로로 살던 시절에 해당한다. 당시 이스라엘 제사장의 의식은 문서화되지 않았다. 단지 제사장들이 행한 신전의 제의적 실천을 통해 전수되었다. 하지만 왕국의 멸망에 따라 정통적 제의가 단절되는 파국적 상황에 직면하자 위기를 극복하고, 전통을 후대까지 보존할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전통적인 제의율법을 중심으로 편집한 제사장 문서 즉, 음식율법이 그것이다.

음식율법이 국가와 땅을 잃고, 종교와 문화 그리고 민족도 다른 땅으로 강제 이주된 바빌론 포로의 시대에 탄생했던 것이다. 유대인이 민족으로서의 자기 동일성을 잃고, 바빌로니아의 문화와 민족에 흡수되어 버릴 위협에 처하자 유대인은 음식이라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일상생활을 율법으로 활용했다. 자신의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민족의 소멸을 막기 위해 이민족과의 차이를 의식적으로 강조했던 것이다. 주변 사람과 같은 것을 먹고 있으면 언젠가 같은 것이 되어 버리지만 특별한 식생활에 철저히 신경을 쓰면 동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왕국 멸망과 포로 생활이라는 극한적인 상황에서 유대인들은 음식율법을 통해 자신들을 주변 세계로부터 분리하고 성스러운 백성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사실 바빌론 포로시대는 약 50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 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민족공동체 재건에 힘썼다. 그러나 이때 확립된 유대인의 음식율법은 또 다른 포로 시대에서 더 큰 힘을 발휘했다. 로마에 의한 유대전쟁 패배의 결과로 예루살렘에서 추방되어 세계를 떠돌아다니던 2천년 동안 음식율법은 유대인의 민족성과 정체성을 유지하는 기적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남북한·재외동포 동질성 음식 뭘까
한국인 특정·상징 전승 체계화 필요


그렇다면 우리민족을 엮어낼 수 있는 음식은 무엇일까. 남북한은 물론 750만 재외동포의 정체성과 동질성을 담보할 음식은 무엇일까. '아리랑과 한글'이 한국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징표가 되었던 역사를 상기할 때다. 더 늦기 전에 한국인을 상징할 수 있는 음식의 특정과 전승 그리고 음식율법의 체계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