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반도체는 단순한 하나의 산업 분야가 아니다. 반도체는 배터리, 디스플레이, 미래 모빌리티, 로봇, 바이오 같은 모든 첨단산업의 필수부품이다. 이것이 반도체가 한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나아가 국제적으로 전략적 비중이 높은 물자로 대접받고 있는 이유다. 우리 정부 역시 지난 7월 '반도체 초강대국 달성 전략'을 발표했다. 앞으로 5년 동안 340조원을 투자해 2030년까지 반도체 혁신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지자체들이 반도체 공장 유치를 선언하며 지역발전의 활로를 찾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지자체의 열정만으로 반도체 공장이 세워지는 건 아니다. 일단 반도체의 세정이나 연마 같은 다양한 공정에 쓰이는 깨끗하고 풍부한 공업용수가 필수다.
다양한 공정 깨끗하고 풍부한 공업용수 필수
여주, SK하이닉스 취수원… 용인서도 요구
여주는 약 40㎞의 한강이 지역의 한가운데를 관통한다. 이천에 있는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공업용수의 취수원도 여주다. 인근의 다른 기업까지 치면 하루 20만t이 넘는 물을 여주에서 가져간다. 최근 용인에 들어서기로 한 용인반도체클러스터에 필요한 공업용수 57만3천t(하루)도 여주시에서 끌어간다는 계획이다.
물은 공공재이므로 당연히 물값은 정부의 몫이다. 남은 것은 여주시의 발밑을 통과하는 수십 ㎞의 용수관로다. 여주에는 설치와 유지 관리 공사가 지속될 것이고, 이 관로가 앞으로 지역개발 사업에 걸림돌이 될 것은 자명하다. 여주의 농민들이 갈수기에 농업용수 부족을 걱정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과 같은 수질과 수변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여주시민들이 견뎌온 40년 동안의 각종 중첩 규제는 아마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수도권 규제가 지향하는 최종 목표는 지역의 균형발전이다. 그러나 전 지역이 자연보전권역으로 설정된 여주는 균형발전의 혜택은커녕 과도한 개발 제한으로 형평성마저 잃고 있다. 여기에 더해 수도권의 식수인 팔당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된 '특별대책지역'이 여주시 전체의 40%다. 쉬운 예로 집이 낡아 새로 고치려 해도 마음대로 고칠 수 없는 곳이 '특별대책지역'이다.
'이용하는 강'이 아니라 '바라보는 강'으로 살아온 세월이 40년이다. 그 새 비슷한 규모였던 비수도권인 원주시의 인구가 35만명으로 늘어난 반면 여주 인구는 여전히 10만명대다. '특별대책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자연보전권역을 성장관리권역으로 조정해달라는 것이 여주시의 오랜 바람이다.
'특별대책지역'외 성장관리권역 조정 숙원
지역경제 산단 조성·도시개발 투자 바랄뿐
누군가의 희생으로 이뤄진 성과에 대한 보상은 보편적인 사회 규약이다. 삼성전자는 텍사스 테일러 시에 들어설 파운드리 공장의 공업용수를 제공할 마일럼 카운티에 태양광발전소 건설을 약속했다. SK는 이미 여주에 천연가스발전소를 짓고 있고, 또 여주를 통과해 이천 SK하이닉스에 쓰일 공업용수를 가져가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 또 용인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공업용수를 요구하고 있다.
여주시는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그 '보상'으로 지역 경제를 위해 허용된 범위의 산업단지 조성과 일정 규모의 도시 개발 사업에 투자를 바란다. 이 정도의 요구가 어떻게 '지역 이기주의'이고 국가기간산업 발전의 '발목잡기'인가.
여주시는 '반도체 초강대국'을 이끌 K-반도체 벨트의 일원으로서 오랫동안 고착된 일방적인 희생에 대해 중앙정부와 대기업과 협상을 통한 상생을 원하는 것이다.
/이충우 여주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