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10월 오부치 게이조 총리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공동선언은 1965년 한일 정상화 이후 두 나라 관계를 한 단계 발전시킨 획기적 선언으로 평가받는다. 한일 정상은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면서 미래를 열어가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공동선언에 따라 당시 우리 정부는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했다. 일부에서는 왜색 문화를 우려했지만 기우였다. 결과적으로 25년여가 흐른 지금 왜색은커녕 오히려 한류가 압도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의 혜안과 결단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다.
韓, 대중문화·IT 등 日에 압도적 우위
민주당 이재명 대표발 친일 프레임
지지층 결집·사법 리스크 은폐 의도
한국이 일본에 앞선 건 대중문화 뿐만 아니다. 반도체와 가전제품, IT, 행정 정보화에서는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최근 다녀온 일본 여행에서도 '국뽕'을 넘어 우리가 일본을 앞질렀구나 하는 확신을 가졌다. 신칸센이나 지하철 검표 시스템은 단적이다. 일본에서 신칸센이나 지하철은 아직도 종이 티켓을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오래 전 사라진 유물이다. 또 KTX에서는 검표도 없다. 반면 일본에서 대면 검표는 여전하다. 행정 정보화는 한참 앞서 있다. 우리는 전국 어디에서든 주민등록 등본과 초본을 뗄 수 있다. 공인 인증서만 있으면 개인PC로도 가능하다. 일본은 주소지에서만 가능하다. 만일 한국 유학생이 일본에서 은행계좌를 개설하려면 한 달여가 필요하지만 한국은 1시간이면 충분하다.
지난주 일본 3대 목조 다리 가운데 하나인 이와쿠니(岩國) 긴타이교(錦帶橋)에 갔을 때다. 승강장과 하강장 두 곳에서 검표원은 플라스틱 바구니에 종이 티켓을 담았다. 수거한 티켓을 일일이 세어 정산하는 모습에서 '이건 뭔가' 싶었다. 또 비록 일부지만 일본을 제친 경제 지표도 있다. 1인당 구매력지수는 대표적이다. OECD와 IMF에 따르면 구매력지수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에서 한국은 2017년 이후 일본을 앞섰다. 구매력지수 기준 국민소득은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실질적 소득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다. 2020년 한국 4만4천292 달러, 일본 4만1천637 달러로 우리가 2천655 달러나 높다.
이런 점에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 발 '친일 국방' 발언은 뜨악하다. 이 대표는 "한미일 훈련은 극단적 친일"(7일) "욱일기가 한반도에 걸릴 수도"(10일) "좌시할 수 없는 안보 자해"(11일)라며 친일 프레임을 내세웠다. 국제적인 경제와 안보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형편없는 인식수준이다. 이 대표가 친일 프레임을 꺼내든 노림수는 따로 있다. 지지층 결집과 '사법 리스크'를 덮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민주당은 지난 정부에서도 '죽창가'를 앞세워 친일 논쟁에서 재미를 본 바 있다. 이번 논란 또한 연장선상에 있음은 불문가지다. '친일 국방' 프레임은 사실관계부터 왜곡됐다. 한미일 연합군사훈련은 2016년부터 시작됐고 문재인 정부 때도 했다. 더구나 2017년 7월 한미일 정상은 역대 최고 수준 안보군사협력강화를 약속한데 이어 3국 이지스 함은 동해상에서 공개 작전을 수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연일 미사일을 쏴대며 우리를 위협하는 북한을 비판하기는커녕 친일 프레임을 꺼내들었으니 한심하다.
안보·경제 급변 한일관계 복원 시급
청년세대 볼모 '친일 타령' 고립 자초
한국과 일본은 2018년 한 해 동안 1천만명이 양국을 오갔다. 일본에 간 한국 관광객은 700만명으로 역대 최고였다. 이 대표와 민주당 논리대로라면 700만명은 죄다 친일파다. 한국 관광객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건 경제력과 자신감의 결과다. 기성지배 세대와 달리 청년세대는 주눅들지 않고 일본을 간다. 급변하는 안보와 경제 환경을 감안할 때 한일관계 복원은 시급하다. 식민지배 시절 피해자 사고에 절어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가르는 정치는 멈춰야 한다. 과잉 민족주의에 기대어 걸핏하면 친일 타령을 늘어놓고 청년세대를 볼모로 삼는다면 민주당은 고립을 피할 수 없다. 친일 몰이는 국민을 우습게 알고 정치를 너무 쉽게 하는 것이다.
/임병식 서울시립대학교 초빙교수(前 국회 부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