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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호 동두천시의회 의장
여우가 두루미를 집에 초대했다. 두루미를 반갑게 맞은 여우는 둥글고 납작한 접시에 수프를 담아 왔다. 부리가 길어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던 두루미는 화가 났다. 며칠 후 두루미가 여우를 초대했다. 두루미는 입구가 좁고 긴 호리병에 음식을 담아 왔고, 여우는 호리병 속 음식을 전혀 먹을 수가 없었다. 이솝은 '역지사지' 교훈을 이 우화에 담고 싶었을 테지만, 조금 다르게 본다면 '기왕 대접할 거라면 제대로 대접하라'라는 뜻으로도 읽힌다. 음식(내용)은 그에 알맞은 그릇(형식)에 담겨야만 제 노릇을 할 수 있다. 차라리 초대를 말 것이지, 여우나 두루미나 얼마나 약이 올랐을까?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으로 지방의회 인사권이 독립된 지도 1년이 됐다. 반가웠던 일이다. 지방의회 직원들이 집행부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게 하고, 그를 통해 지방의회의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 권한을 실질화 하자는 취지다. 음식은 아주 훌륭했다. 문제는 그릇이었다. 의장에게 의회 소속 공무원들에 대한 인사권을 부여한 법적 결단은 지극히 바람직했다. 의회 공무원들로서는 도저히 초연해질 수 없는, '시장·군수의 인사권'이라는 보이지 않는 목줄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인사권 독립'이라는 진수성찬을 담은 그릇이 그릇됐다.

독립된 인사권 행사의 원천인 '조직권'은 여전히 집행부의 권한으로 유보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의장이 소속 직원을 승진시키거나 보직을 부여하려 해도 그 전제조건이 되는 '의회 사무기구 정원과 직급, 조직'에 관한 일체 결정권을 계속 쥔 시장·군수의 협조나 승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음식을 입구가 좁고 긴 호리병에 담을지, 둥글고 납작한 접시에 내올지는 여전히 자치단체장의 마음에 달린 것이다. 


의장에 부여된 의회 공무원 '독립된 인사권'
행사 원천 '결정권' 여전히 시장·군수 권한


'반쪽짜리 인사권 독립'이라는 불만과 파열음이 전국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행부에 대한 의회의 견제 권한과 위상을 강화하려 했던 애초 취지가 무색해지고 말았다. 어찌 보면 의회가 집행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구석이 새로 생긴 셈이다. 수프를 먹을 수 있게 그릇을 제대로 바꿔 달라고 청해야 하니 말이다.

헌법에 따라 '자율권'을 보장받는 국회와 견주었을 때 이러한 불합리는 더 뚜렷해진다. 국회는 정부 간섭을 받지 않고 법률·국회규칙에 따라 그 의사와 내부 사항에 관해 스스로 규제·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그 핵심이 바로, 사무기구인 국회사무처를 포함한 국회 내부 조직 자율권이다.

이 지점에서 "국회와 지방의회를 동급에 둘 수는 없다"는 반박은 궁색하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이나 면책특권을 지방의원도 주라는 건 논란의 여지가 있겠으나, 자율적인 조직권은 국회나 지방의회나 그 필요성에 있어 의미 있는 차별화의 논거를 찾기 어렵다. '인사권'은 '조직권'과 개념 필수적으로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마치 짝 잃은 젓가락이나 양말이 아무 소용 없듯.

이런 이유로 지방자치법 전부개정 이후 동두천시의회를 포함한 전국 대다수 지방의회에서 '지방의회법' 제정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각 지방의회가 발표하고 있는 거의 모든 '지방의회법 제정 촉구 결의문'은 다음의 둘을 '지방의회법'에 담으라고 요구한다. 의회 사무기구 자체 조직권. 그리고 의회 예산 자체 편성권이다.

'반쪽짜리' 전국서 불만·파열음 취지 무색
조직권·예산 편성권 담은 지방의회법 촉구


1689년 영국 권리장전은 근대 민주주의의 출발 선언으로 꼽힌다. 그 13개 조항 중 절반에 가까운 6개가 '의회 권한 강화'를 위한다는 사실은 오늘날에도 살아있는 역사의 가르침이다. 의회가 민주주의의 최우선 근본이며 지방자치의 중심이다. 헌법에도 정부보다 국회가 먼저 나오고, 지방자치법에도 지방의회가 단체장보다 앞서 규정되어 있다.

의회가 먼저다. '국회법'이 있듯이 '지방의회법'도 있어야 마땅하다. 그리고 의회 권한과 위상 강화에 불가결한 지방의회의 조직권, 나아가 자체 예산편성권을 거기에 담아야 한다. '지방의회 인사권 독립'이라는 수프가 식기 전에, 그릇된 그릇을 국회가 나서 바꾸기를 바란다. 반쪽짜리 인사권 독립의 나머지 짝을 채워야 한다. 지방의회 위상과 권한의 '제대로 된' 강화는 시대적 소명이다.

/김승호 동두천시의회 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