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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산 소악루에서 바라본 해 뜨는 한강 하류. /최철호 소장

최철호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봄기운이 완연하다. 산에 눈이 녹고, 강에 얼음이 풀려 아지랑이 춤을 춘다. 한강 하류 버드나무도 어느새 새싹이 움트고 있다. 파릇파릇한 쑥과 냉이가 방긋 웃는 듯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다. 춘분을 향해가는 절기에 쑥 향과 냉이 향이 나는 곳은 어디나 봄이다. 양화진을 나서는 순간 강 건너 공암 나루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양천도 예전엔 경기였다. 도성을 지킨 성곽이 한강 하류 양쪽에 있었다.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교하는 물길이 어우러져 오늘도 힘차게 흐른다.

호수와 같은 행호를 사이에 두고 행주산과 궁산이 있다. 궁산에 성곽을 쌓으니 이름도 낯선 궁산성이다. 궁산성은 한강을 끼고 행주산성과 임진강에 오두산성이 일직선상에 있다. 서해로 향하는 한강과 임진강 따라 높지 않은 산에 성곽이 3개나 있었다. 양천과 행주 그리고 파주에 강 따라 산 정상에 성곽의 흔적이 있다. 삼국시대부터 분단된 현재까지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다. 권율 장군과 수많은 의병들이 행주산성과 궁산성에서 승전보를 울린 조강이 눈앞에 보이는 행주나루터다.

궁산성 남쪽은 안양천이 흘러 한강에 모이고, 북쪽은 창릉천이 한강에 모여 행주산성을 감쌌다. 한반도의 목구멍에 위치한 행주산성과 궁산성이 한강 하류에 수문장처럼 우뚝 서 있었다. 궁산 정상에 오르면 군사를 지휘하던 장대 터도 있다. 개화산과 서해 그리고 문수산 너머 강화와 개성까지 보이는 천혜의 요새다. 개화산 정상 2개의 봉수대는 중요한 통신 역할을 하였다. 한강 너머 도성 밖 안산과 인왕산 뒤 삼각산도 한눈에 보인다. 300여 년 전 이곳에 과연 누가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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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산에서 바라본 임진강 하류. /최철호 소장

삼국시대부터 여전히 군사 요충지
권율장군, 행주·궁산성서 승전보
궁산 중턱 해 뜨는 풍경은 '절경'
양천·통진향교, 뱃길 위치 최적
역사·문화·생태 살아 숨쉬는 곳


겸재 정선은 65세에 양천 현령으로 5년간 한강 풍경을 그림 속에 담았다. 양화진 건너 궁산 아래 양천향교와 관아 터가 그날의 흔적이다. 궁산 중턱에 앉으면 목멱산 해 뜨는 풍경은 절경이다. 목멱산에 떠오르는 태양처럼 '목멱조돈(木覓朝暾)' 그림을 그려 경희궁 안 영조에게 사진처럼 보여줬다. 양천현 관아 뒤 한강이 보이는 모든 곳이 겸재 정선의 그림터다. 높지 않은 산에 작은 정자가 소악루다. 한강에 해 뜨는 모습과 햇살이 비추는 양천에 온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소악루에 올라 밀려오는 바닷물을 바라본다. 성산 너머 안산·인왕산·백악산 뒤 삼각산과 목멱산 옆 한강 건너 청계산·관악산이 병풍처럼 이어져 있다. 서울과 경기는 마치 한 폭의 그림 같다. 드넓은 한강에 선유도와 밤섬이 떠 있는 듯하다. 해지면 궁산에서 강 건너 안산 봉수대 불빛도 보인다. 겸재 정선의 50년 지기 사천 이병연은 '안현석봉(鞍峴夕烽)' 그림에 시를 담았다. 한점 별 같은 불꽃을 보며 양천 궁산과 행호에 머물렀다. 달 뜨면 '소악후월(小岳候月)' 달 뜨는 풍경도 그렸으니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교하에서 밤이 기다려진다.

강화와 김포 문수산성을 가는 길목이 양천과 행주다. 양천 허씨와 양천 최씨 관향인 양천에 김포향교와 통진향교처럼 양천향교도 오래전부터 있었다. 도성 안 성균관에 명륜당과 대성전이 있듯, 도성 밖 양천과 김포 및 통진에 향교가 있었다. 한강 하류에 향교를 세우고, 교육과 함께 성현들께 인사했다. 인·의·예·지·신 오상을 실행하며, 매년 봄·가을 석존제를 지냈다. 향교가 있는 도시를 새로운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부모와 함께하는 공간, 친구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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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에 펼쳐진 강과 바다가 만나는 조강. /최철호 소장

한강과 임진강이 배움의 장으로 바뀌면 좋겠다. 봄·가을뿐 아니라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가족과 함께 걸으며 소통하는 시간도 있으면 한다. 향교는 한강과 임진강에 가장 중요한 강학 공간이었다. 향교가 도시와 소통하며 지방의 교육과 문화도 담당하였다. 양천향교와 통진향교는 서해와 한강 사이 뱃길에 있는 최적의 학교였다. 234개 향교 중 한강과 임진강에 가깝게 있는 향교를 역사·문화공간으로 만들면 좋겠다.

천년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터전이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교하 그리고 서해를 접하는 조강(祖江)에서 시작하였다. 강화 갑곶과 김포 월곶을 지켰던 역사의 현장이 조강 따라 문수산성에 있다. 염하에서 조강 건너 예성강 뱃길까지 육지의 끝이자 바다의 시작이 조강이다. 역사와 문화 그리고 생태가 살아 숨 쉬는 곳이 바로 조강이다. 한강과 임진강이 어우러져 서해로 흐르듯, 예성강의 물길도 조강에서 새로운 시작을 이제 기대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