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510010001791_1.jpg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
망종 지나 하지로 가는 절기에 햇볕이 따갑다. 새벽부터 태양이 이글거린다. 비 내리면 좋으련만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비 그친 여름날 구름이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햇빛에 숨을 곳이 없다. 백악산 빗물은 어디로 갈까? 백악산 백악마루에 빗물이 빠르게 스며든다. 빗물이 마르기 전 물길 따라 빠른 걸음으로 내려간다. 백악산 기슭 창덕궁과 창경궁이 보인다. 백악산 물은 창덕궁 금천으로 흐른다. 창덕궁 궁담길 따라 빗물처럼 하염없이 걸어간다.

장미 넝쿨로 우거진 감사원에서 북촌 한옥마을로 가는 길은 고요하다. 600여 년 전 가회방 재동이었다. 도성 안 자랑거리인 재동 백송이 보인다. 백송은 소나무 껍질이 벗겨져 흰빛이 되어 백골송이라 불렸다. 백송은 점점 빛이 난다. 희귀한 소나무로 천연기념물이다. 백송이 있는 이곳은 '열하일기' 박지원의 손자로 북학파와 개화파를 잇은 박규수의 집터다. 홍영식도 백송 아래 살았다. 이곳에서 원각사지십층석탑 주변 백탑파들이 옹기종기 모여 글 쓰고, 그림 그리며 끝없는 토론을 하였다.

천연기념물 백송 등지고 걸으니
창덕궁으로 가는 언덕
흥선대원군 파란만장한 삶 서린
'운현궁 노안당' 슬픈 역사현장
여름 삶의 무게 내려놓고 걸어보자


2023060701000221100009742.jpg
창덕궁 돈화문 지나 금천교 옆 활짝 핀 여름꽃 쉬나무. /최철호 소장 제공

백송을 등지고 걸으니 창덕궁으로 가는 언덕이다. 하늘의 별자리를 측정하는 관상감도 있다. 밤에 걸어야 별도 볼 수 있는데 어느새 창덕궁이다. 돈화문이 열리기 전 창덕궁 궁담길 안과 밖 나무들이 손짓한다. 돈화문 월대 앞에 서니 창덕궁 돈화문 현판 사이로 삼각산 보현봉이 보인다. 돈화문 현판이 말을 걸듯 속삭인다.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2층 누각에 걸려 있는 돈화문(敦化門)에서 힘이 솟는다. 소덕천류(小德川流)요, 대덕돈화(大德敦化)라. '중용'에 나오는 문구다. '작은 덕은 냇물의 흐름과 같고, 큰 덕은 교화를 돈독하고 후덕케 한다' 볼수록 맘에 와닿는다.

창덕궁 안 비 그친 후 새들이 날고, 여름꽃이 피었다. 도성 안 빌딩과 빌딩 숲에 울창한 나무가 빼곡하다. 창덕궁과 운현궁 궁담길 사이 사람이 오가는 문이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있었다. 아무나 다닐 수 없는 문이다. 하나는 창덕궁 주인인 고종이 운현궁으로 가는 경근문(敬覲門)이다. 다른 하나는 운현궁 흥선대원군이 창덕궁으로 가는 공근문(恭覲門)이다. 창덕궁 돈화문 수문장이 있는 곳을 아무런 제지없이 오갔다. 160여 년 전 흥선대원군의 권세를 한눈에 볼 수 있다.

2023060701000221100009741.jpg
궁궐 중 가장 오래된 정문인 창덕궁 돈화문과 월대. /최철호 소장 제공

운현궁은 흥선군의 사저로 고종이 태어나고, 고종이 명성황후 민씨와 가례를 치룬 공간이다. 운니동 사저는 12살 고종이 즉위한 후 23채로 창덕궁에 버금가는 궁이 되었다. 왕의 권위보다 큰 대원위 대감이 있던 공간이었다. 국태공으로 살아 있는 유일한 대원군의 운현궁은 규모가 컸다. 옛 일본문화원과 종로소방서 그리고 덕성여대 평생교육원까지 운현궁 터다. 그러나 지금은 운현궁 노안당과 노락당 그리고 이로당이 운현궁의 흔적이다. 고종이 노닐던 웅장한 소나무도 없고, 이제 경송비만 후원에 홀로 있다.

조선의 끝이자 대한제국의 시작과 함께 흥선대원군도 운현궁 노안당 솟을대문에 갇혔다. 개혁 정치가로 보수적 국수주의자로 운현궁 노안당에서 10년 간 수많은 정책을 쥐락펴락하였다. 대원군은 이곳에서 정치를 시작하고, 정치를 내려놓고, 청나라에 납치된 후 다시 돌아와 운현궁 노안당에서 유폐되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또한 흥선대원군은 부대부인 민씨를 먼저 보낸 후 79세에 생을 마감한다. 흥선대원군 묘는 어디에 있을까?

2023060701000221100009743.jpg
흥선대원군의 집무실이자 고종의 잠저인 운현궁 안 노안당. /최철호 소장 제공

흥선대원군 삶은 분주하고 계획적이었지만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죽은 후에도 그는 분주하고 바쁜 여정이었다. 고종은 흥선대원군 장례식도 못 가고 먼발치에서 상여만 바라보았다. 운현궁은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흥선대원군은 1898년 도성 밖 고양 공덕리 아소당 뒷산에 묻혔다. 1906년 파주 대덕리로 고종이 황제로 있을 때 이장하였다. 그리고 1966년 고종의 손주며느리가 남양주 문안산 모란봉에 국태공원소(國太公園所) 흥원(興園)으로 조성하여 재이장하였다. 석호와 석양 1쌍이 있고 망주석·석마·장명등으로 격을 갖추었다.

백송이 있는 동네, 쉬나무가 있는 창덕궁 그리고 소나무가 있는 운현궁과 흥원에 여름꽃이 피었다. 비 그친 여름 삶의 무게를 살짝 내려놓고, 석파정 별당에서 문안산 모란봉까지 걸어보면 어떨까요.

/최철호 성곽길역사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