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일가족 전세사기’ 피해가 확산했던 배경에 금융권의 손쉬운 대출 절차를 노렸다는 비판(10월 19일 7면 보도)이 나오면서 일부 은행을 중심으로 전세자금 대출 기준을 강화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가뜩이나 얼어 붙은 소규모 다세대주택 전세 수요가 더 줄어들면서 피해 세입자들의 미반환 상태가 이어지는 등의 부작용 우려도 이어지고 있다.


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경기지역 일부 은행에서 최근 내부적으로 일부 지역과 주택 유형에 대한 전세자금 대출 심사기준을 높이는 방침이 공지된 것으로 확인됐다. 전세보증금 미반환 피해 사례가 집중적으로 나타났던 수원시와 화성시 소재 주택의 전세대출 승인 기준을 높이고, 올해까지는 연립다세대 주택과 오피스텔 전세 대출을 승인하지 말라는 등의 내용이 골자다. 기준을 상향하지 않더라도 대출 심사를 보수적으로 보고 있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이는 최근 700억대 전세사기 혐의로 구속된 정모씨 등 일가족의 범행 수법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분석된다. 앞서 일부 은행들은 정씨 일가족이 소유한 일부 주택을 대상으로 과도하게 높은 근저당 규모로 주택담보 대출을 제공하거나, 세입자들에게 근저당 규모를 축소해 알릴 위험이 있는 ‘쪼개기 대출’ 수법에 손 놓은 정황 등으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정작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일부 세입자들을 중심으로 우려가 퍼지고 있다. 이미 전세사기 사태 여파로 빌라나 오피스텔 등의 전세거래가 크게 줄은 마당에, 은행권의 규제 강화가 겹치면 시장이 더 얼어붙을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당장 다음 세입자가 구해져야 보증금을 보전받을 수 있는 입장이다.


실제 화성시 한 오피스텔 전세계약 만료 이후 두 달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A씨는 “다음 세입자가 구해지지 않아 조금만 더 살아줄 수 없냐는 집주인의 전화를 받았다”면서 “이런 상황이 길어지면 보증금을 받지 못할 거란 걱정도 든다”고 했다. 이 밖에도 정씨로부터 피해를 입은 세입자들이 모인 SNS 연락망에서도 “전세대출 기준이 상향돼 다른 전세집을 구하지도 못한다”는 취지의 의견들이 다수 올라왔다.


이에 금융권은 제도적인 예방 조치가 명확하게 나오기 전까지는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경기지역 은행권 관계자는 “해당 지역의 전세 대출을 아예 금지한 것이 아니”라며 “전세 대출의 명확한 심사 기준을 확립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방침”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장기적으로 전세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서라도 금융권이 규제를 높이는 등 경각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동안 무분별하게 제공해 온 전세대출 규모를 줄이는 과정에서 새로운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는 있을 수 있으나, 검증의 문턱을 다시 낮추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임대인 스스로 보증금을 인하하는 등의 흐름이 이어져야 전세시장이 정상화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