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주년 맞은 '세계 인권선언'

유치원 CCTV, 아동보호 vs 노동권

성중립 화장실, 여성 안전과 배치도
대학 첫 설치 성공회대 '학내 갈등'
초기 우려와 달리 학생들 긍정 반응

2023121101000180100011582
성중립 화장실 표지판. /도서문화재단씨앗 제공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다."

1948년 12월 10일 유엔 총회에서 세계인권선언이 채택된 지 75년이 지났다. 이 선언의 내용처럼 모든 인간은 존엄과 권리에 있어 동등하지만, 이런 권리를 가진 주체 간의 갈등은 여전히 지역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김포시에 사는 노모(28)씨는 4살 아들의 아빠다. 노씨는 며칠 전 얼굴이 긁혀서 온 아이를 보고 어린이집 교사에게 어쩐 일이냐고 묻자 교사는 아이가 친구와 놀다가 생긴 상처라고 답했다. 노씨는 어린이집 교사의 부주의 혹은 학대까지도 의심이 들어 추후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어린이집에 찾아가 정식으로 수업 진행 상황이 찍힌 녹화본을 요구할 생각이다.

'어린이집 CCTV 의무화'는 노씨와 같은 부모들이 어린이집에서 일어나는 아동 학대, 방임 등의 범죄를 관리 감독하기 위한 제도다. 2015년 어린이집 내 CCTV 설치가 의무화되자 어린이집 교사들은 사생활 및 노동권이 침해된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나섰다. 같은 이유로 유치원 CCTV 의무화 논의도 나오며 유치원 교사들 사이에도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동이 안전할 권리와 교사의 사생활 보호권이 충돌한 것이다.

2020년 1월 성남시의 한 유치원은 CCTV 설치 의무 대상이 아니지만 교사들 간의 논의를 거쳐 교실 내에 CCTV를 설치하기로 했다. 처음엔 몇몇 교사들이 이를 불편하게 생각했지만 3년이 지난 요즘에는 달리 생각하는 교사들도 많아졌다.

해당 유치원에서 근무하는 한 교사는 "CCTV 설치 이후 학부모들의 민원으로부터 일부 자유로워졌다"며 "교실 내에서 발생하는 상황에서 교사의 대처 등을 증명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여전히 CCTV 설치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서영숙 명예교수는 "CCTV 설치가 아동과 교사 모두를 보호할 수도 있지만 명확하지 않은 영상이 유포돼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채 교사의 명예가 훼손되는 일도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모(32)씨는 아침에 출근하면 최대한 물을 마시지 않으려 한다. 직업 특성상 전화 응대를 많이 하다 보니 목이 타는 경우도 있지만 물을 마시면 그만큼 화장실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한씨는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스스로를 여성으로 생각하는 성정체성이 확고한 트랜스젠더다.

아직 주민등록상 성별정정 과정이 끝나지 않은 한씨는 작년 남자 화장실에서 직장 상사에게 "남자답게 어깨를 펴고 다니라"는 말을 들었다. 모욕감을 느낀 한씨는 그날 이후로 직장에서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다.

성중립 화장실은 한씨와 같은 성소수자들이 주변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에서 탄생했다.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논의는 곧장 세간의 화두로 떠올랐다. 일부 여성단체에서는 성중립 화장실이 여성의 안전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성소수자와 여성의 권리가 충돌하게 된 것이다.

7
성남 중원구의 한 도서관에 있는 모두의 화장실. /도서문화재단씨앗 제공

2021년 8월 성남시 중원구의 한 도서관은 설립 과정에서 성중립 화장실을 만들기로 했다. 만든지 2년 째인 이 도서관의 성중립 화장실은 처음엔 이용객들이 많이 낯설어했다. 그러나 지속적인 도서관 측의 설명과 교육을 통해 이용객들은 점차 익숙해지는 모습을 보였다. 도서관 관계자는 "성중립 화장실은 1인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모두가 변기에 앉아서 사용해야 하는 등의 공동규칙을 만들어 이용객들에게 안내하고 있다"고 밝혔다.

2022년 3월 국내 대학 최초로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한 성공회대학교는 설치 당시 학내 구성원 간의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많은 논의 끝에 설치된 지 2년 후 학생들의 반응은 설립 초기 우려와 달리 긍정적인 입장이다.

성공회대 총학생회는 여성의 안전권 또한 보장하기 위해 매달 주기적으로 불법촬영탐지를 실시하고 있으며 비상벨 등을 두어 범죄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한 성공회대 재학생은 "모두의 화장실의 존재 자체로 다양한 학내 구성원들이 포용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이주희 교수는 "어느 한 쪽이 옳다고 할 수 없는 상황들이 현대 사회에서 많이 발생하고 있다"며 "권리 간의 갈등이 발생할 땐 공개적이고 차별 없는 논의를 통해 원칙을 세우고 합의하는 과정이 법 제도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전했다.

/김지원기자 zone@kyeongi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