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향후 조치 듣고 싶을 뿐인데
가해자에게 받은 건 욕설과 고함
자신만의 기준으로 사는 사람들
보통 생각과 달라 무섭기까지

사고가 난 후 5시간이나 지났는데도 당사자도 보험사에서도 연락 없어 차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 대기를 기다리며 정차되어 있는 내 차를 뒤에서 박았으니 책임은 누가 봐도 100% 상대방에게 있었다.
각자 차에 블랙박스 영상도 있으니 차주에게 향후 조치에 대한 의견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고함을 지르며 욕설을 쏟아내고 맘대로 하라며 전화를 끊어 버리는 것이 아닌가? 당황스러워 잠시 멘붕 상태가 되었다.
내가 지금 무슨 잘못을 했나? 나는 피해자고 단지 어떻게 조치를 해 줄 것인가를 물었을 뿐인데 육두문자에 고함을 지르며 일방적으로 끊어 버린 것이 납득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을 사람이니 법적으로 처리하라는 보험회사 직원의 조언에 따라 관할 경찰서 교통조사계 경찰과 일정을 조율하고 퇴근하려는 순간 가해자 보험회사 측에서 문자 연락이 왔다. 보험처리 접수번호였다.
차주에게 사과를 받지 못해 사고 낸 운전자에게라도 조금 전 벌어진 일련의 상황을 설명하고 최소한의 예의 있는 사과를 받고 싶어 전화를 했다. 하지만 운전자도 차주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더 이상 대화가 될 수 없을 것 같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나는 그저 진정성 있는 사과와 향후 처리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을 뿐이다. 사과는 가해자가 피해자에 해야 할 최소한의 상식적인 행동 아닌가?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상대편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이다. 사회복지에서도 '당사자주의'가 있다. 복지 수혜를 받는 당사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려가 결여된 정책, 사회적 담론, 서비스 등을 비판할 때 이 용어를 많이 사용한다.
그렇다. 사고의 경중을 떠나 나는 일방적으로 사고를 당해 몸이 아프며, 매일 타고 다니는 차를 수리해야 하고, 의료적 진단도 받아봐야 한다. 이런 상황을 가해자들은 모르는 걸까? 아니면 모른 체 하고 싶은 걸까? 내가 무슨 꾀병을 부리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걸까?
설령 이 세 가지가 다 맞다손 치더라도 가해자는 나에게 사고로 인한 사과와 치료, 차 수리에 관한 책임을 다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이고 규범이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아노미(Anomie) 이론'을 이야기하며 아노미를 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규범이 사라지고 가치관이 붕괴되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개인적 불안정 상태라고 정의했다.
우리는 지금 사회 각 영역뿐 아니라 가족, 친구 등 소규모 공동체 안에서도 아노미 현상이 극심해지고 있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폐해로 사회적 기준은 없어지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가 모든 기준이 돼버렸다.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각자가 기준이 될 때 그 기준은 의미가 사라진다. 기준은 하나이며 변하지 않는 가치여야 한다. 체육시간 기준을 외친 친구를 중심으로 양팔 벌리기를 해본 사람은 쉽게 이해할 것이다. 기준이 있어야지 오(伍)와 열(列)이 맞춰지지 않았던가.
요즘 물리치료를 받는 중이다. 교통사고는 후유증이 있다고 하는데 육체적 후유증 보다 마음의 후유증이 더 오래갈까 걱정이다.
근데 정말 궁금하다. 사고 낸 가해자는 왜 사과를 안 했는지 말이다. 보험처리 비용이 아까워서일까? 아니면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가도 될 것 같은데 뭘 따지냐는 것일까? 그냥 기분이 나빠서 일까?
보통의 생각과 너무 다른 그들을 보면 이제는 무섭기까지 한 세상이다.
/조승석 경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